잘 산다는 것의 의미

'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249) 오늘 나는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보낸다고 버둥거리지만, 시간이 흘러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내 지난날을 뒤돌아 봤을 때, 아련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 삶이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가 버렸다고... 도대체 삶이란 어떤 것일까? 무엇을 얻고자 노력하며, 무엇을 얻고자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일까?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는 우리에게.. 진정 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명정은 아내와 사별한 후 낡고 가난한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은 외국에 살고 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발신자가 아들인 택배 상자가 명정에게 도착한다. 상자를 열자 거기엔 17살가량의 소년 로봇이 있다. 이렇게 명정과 소년 로봇이 만나게 되고 과거 둘째가 아이가 생기면 지어 부르려 했던 이름 ‘은결’을 로봇에게 붙여 준다. 이 로봇은 중앙 컴퓨터가 원격 제어하는 게 아니라 외부 자극에 의해 스스로 데이터베이스 화하며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인간형 로봇이다. 명정은 은결에게 세탁소 일을 돕게 하고 은결은 동네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가난한 동네의 전형적인(?) 가정환경의 시호, 준교, 그리고 세주의 삶과 은결의 삶이 교차돼 듯 보여주고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네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이 타이밍에서는 울어야 하니 준비하고 계세요’. 이렇게 티 나는 슬픈 장면을 나는 싫어한다. 나이를 먹으니 슬픔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진다. 슬픔이란 녀석이 ‘대 놓고 슬퍼하세요’라고 하면 나는 어깃장을 놓는다. 그래? 내가 어디 우나 봐. 절대 울지 않을 거야. 하는 심술을 부린다. 하지만 슬픈 장면은 아닌데 슬픔을 암시하는 대사나 분위기가 더 아프다는 건 알게 된다. 어릴 때는 대 놓고 울어도 창피하지 않지만, 나이 먹고 대성통곡하는 건 좀 창피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서 일까? 아무튼.. 나는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고 잘 울지 않는데,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재미있게 혹은 유쾌하게 느끼고 있는 책이 그 어디에도 슬픈 구석이나 낱말이 없음에도, 문장 하나를 읽고 나서 벅차오르는 슬픔이 찾아와 눈물을 또르르 흘릴 때. 나에게도 이런 점이 있었어? 하고 놀란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책. 맨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인생은 한 스푼의 시간인 것일까?


아내와 아들을 앞서 보낸 명정에게 로봇 은결은 아들과 같은 존재다. 그런 은결을 혼자 두고 죽어야 하는 명정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런 명정을 보내야 하는 로봇 은결은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비록 데이터베이스화 시키며 대충 인간의 마음을 유추할 수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런 은결이 명정이 죽고 나자 행한 행동은 아프다. 은결을 살려내고 또 시간 앞에 추억을 만들어가는 로봇 은결이라는 존재가 인간보다 더 인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한 통의 거대한 세탁기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젖은 면직물 더미처럼 엉켰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닳아간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 (29)

그는 이름을 붙여준 것을 떠나보내는 방법에 아직도 익숙지 않다. (192)


준교, 시호는 은결보다 어린 나이에 만나 어른이 되어 가지만 로봇인 은결은 그대로다. 준교, 시호의 어른 되는 과정은 어느 누구도 순탄치 않았다. 아프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어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은결. 은결은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프로그래밍했을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지만 은결은 자신의 프로그램에 맞게 모든 상황을 일일이 대조하고 재배열하며 상황을 조금씩 데이터화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은결은 인간이 가진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인간보다 더 따스한 로봇으로. 결코 슬픈 내용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책장을 덮고 찾아온 눈물 때문에 놀라웠다. 어느 타이밍인지는 몰라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눈물이 찾아왔으니까.


사춘기가 지난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이 죽일 놈의 사춘기는 언제쯤 지나가나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조금씩 사람 구실(?)을 하려는지 성장하고 자라고 있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많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또 일어서길 바란다. 울고 싶을 때엔 남자라고 참지 말고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울고 나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 평탄하면 어디 그게 인생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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