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를 읽고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그래서 반 백 정도는 아직 살날이 많은 거라고, 건강을 챙기며 살면 된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도 죽음은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작년 복막염 수술을 하고 난 뒤 죽음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복막염 수술이라는 게 별거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부작용이 심했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고생을 했다. 지금은 수술 전보다 체력이나 건강이 좋아졌지만 가끔은 내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 앞에서 하면 요 녀석들은 기겁을 한다. 아마도 엄마가 없는 상황 자체를 상상 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겠지. 그럼에도 나는 가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명 치료하지 말고,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나 스스로에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혹 내가 의사표현을 못할 정도라면, 생명을 지속시키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말고 평소 엄마 성격대로, 엄마가 말했던 대로 그렇게 해주면 되는 거라고. 그런 상황이 불효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아이들과 남편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기 두 명의 의사가 있다. 한 사람은 환자를 살릴 가능성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후쿠하라 마사카즈이고 또 한 사람은 병원에서 사신이라 불리는 키리코 슈지다. 키리코는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환자에게 권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말라고 말한다. 병원 입장에선, 환자 가족 입장에선 키리코는 이상한 사람이지만 불치병에 걸린 환자 입장에서 키리코의 조언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술과 고통 그리고 엄청난 병원비를 남길 바에 주어진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인간답게 보내라고 말한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백혈병에 걸려 손을 쓸 수 없는 남자, 의대에 입학했지만 병에 걸린 소녀, 후쿠하라와 키리코의 친구이자 앞날이 창창하던 의사. 이들은 예상하지 못한 질병에 절망하고 두려워하지만 결국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환자와 환자 가족, 의사.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람은 죽음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00) 내 죽음에는 냉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부모님이나 아이라면 냉정할 수 있을까? 그게 무엇이든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든 부모님이든 아이든.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람이 죽음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 앞에 그 누구도 승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죽음 앞에 당당해질 수 있도록 오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건 안다.
이루지 못하는 희망을 버릴 때 새로운 희망을 찾아낼 준비가 갖춰지는 거야. (203)
빚을 내서까지 회복할 가망도 없는 인형을 살려 놓는 의미가 과연 있을까? (277)
사실을 알려줘야 해. 환자와 그 가족은 때때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니까. 그럴 때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눈앞에 들이밀어 주는 것도 의사가 할 일이야. (278)
어떻게든 파이팅 하자는 의사(후쿠하라)가 있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의사(키리코)가 있다. 만약 내가 환자라면 어떤 사람이 좋을까? 환자 입장에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사가 더 좋을까?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까? 아직 젊은 편이고 죽음이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냉정한 키리코 의사 스타일이 맞다고 생각되지만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생에, 그리고 삶에 더 욕심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나는 죽음만큼은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싶어 진다. 그게 내가 지킬 수 있는 자존심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