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읽고
재수를 하고 있는 큰아이에게 대학이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이란 것에 스트레스 주면서 키우지는 않았다. 내가 남들과 다르게 조금 늦게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말 하고 싶은 공부라면 본인이 알아서 늦게라도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아이 자체가 시험을 위해 공부하기보다 호기심으로 공부하는 아이였기에 책상에 앉아 오로지 수능을 위해 기계처럼 공부하는 걸 힘들어했다. 뭐.. 그래서 재수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우리나라에서 대학이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란 생각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 공부하고 싶은 과를 위해 공부하면 좋겠는데... 이것도 잘 모르겠다. 아이는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과 같으니까. 그런데 정말 대학은 무엇일까? 대학은 무엇이기에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까? 대학을 나온다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대학을 나왔다고 인간성 좋은 멋진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그 대학을 양춘단 할머니가 가게 되었다. 물론 대학생이 아닌 청소원이긴 하지만. ^^ 양춘단 할머니는 송정리 시골 마을에서 서울 아들 집으로 남편과 함께 올라왔다. 어린 시절 집안 사정상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늘 배우고 싶었던 춘단. 춘단 할머니는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 오갔는데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여자를 만났다. 그녀가 춘단 할머니를 대학 청소부로 취직시켜준다. ‘대학’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작정 대학 청소 일을 시작한 춘단 할머니. 하지만 백으로 들어왔다며 다른 청소원으로부터 배척당한다. 환경미화원들의 휴게실인 네 평 남짓한 컨테이너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급조된 가건물로 이곳도 세상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춘단 할머니는 청소를 하며 도둑 강의를 듣기도 하고, 대학 내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소노동자 투쟁이 시작된다.
실제 2011년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모티브로 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청소 일을 하면서도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지 않으면 화장실은, 강의실은 더러워진다. 하지만 우린 그분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무렇지 않게 임금을 깎고, 아무렇지 않게 해고당한다. 사회의 마지막 동아줄이라 생각하며 일하는 그분들을. 강압적인 소장은 이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 청소 일을 한다고 해서 그분들의 인생이 무시당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더러운 화장실은 싫어하면서 청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래서 청소를 하겠다고 온 건데, 이제는 청소하러 온 사람을 더럽다고 싫어하는 꼴이잖아. (236~237)
버려진 것, 더러운 것, 쓸 수 없는 것들은 강한 생명력이 있었다. 죽이고 죽여도 깨끗한 것들에게서 생명력을 얻어 수를 늘려갔다. 학교는 전쟁터였다. (249)
다닐 필요도 없는 아이들이 대학을 너무 많이 다니고 있다. 나 역시 그렇지 않은가, 요즘 들어 늦은 후회가 부쩍 많이 든다. (300)
대학은, 대학이 가진 힘은 신성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때문에 뒤늦게 대학을 가겠다고 미친 듯이 공부했었는지 모른다. 그곳에 가면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지금보다 나은 생활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대학만큼 다양한 비리와 불륜들, 그리고 비정상적인 애정이 난무하는 곳이 또 있을까? 대학 내 성폭력과 성희롱, 교수 임용에 대한 비리, 그리고 재단의 비리, 교수들의 갑질 등. 신성하지 못한 일이 터지고 있다. 무엇을 위해 대학을 가는 건지, 대학이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대학을 가겠다고 재수를 하고 있다. 엄마는 대학을 가봤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자신은 대학 근처도 가지 않았기에 가봐야 한다고.
어마어마한 전형료와 등록금, 수시가 끝날 때마다 대학 내 건물이 하나씩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대학들은 아니라고 할 테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코로나 19로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도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지 않는 대학들. 하지만 교수들 유흥업소 출입을 법인카드로 결제하는가 하면, 자녀로 하여금 교수 자신의 수업을 듣게 해 고학점을 줬고, 지인 교수의 딸을 입학시키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그것도 배웠다는 사람들이.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나아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살던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게 욕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