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이승우 작가)를 읽어보렴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지금의 나는 음 ‘연애 세포가, 사랑 세포가 모두 죽어서 사랑이 뭐예요?’라고 되묻게 될 걸? ㅋㅋ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은 나에게, 그리고 사랑한다고 착각(?)해서 결혼한 나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난 시간 들을 뒤돌아 사랑하던 그 순간을 떠올려 봐도 난 여전히 몰랐을 것 같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사랑이 무르익던 순간, 그리고 이별의 기미가 보이던 순간과 이별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오만가지의 전쟁들. 그 변화들에 하나하나 정의를 내리지 못했고, 그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으니까. 어쩜 나란 사람은 내 감정에 정직하기보다 삶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긴 채 앞만 보고 산 사람인지 모르겠다. 때문에 이승우 작가가 말하는 사랑은 어떤 색인지 궁금했다. 사랑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미세하게 세분하고 감정을 투영하는 일. 책을 읽으며 그때의 감정들을 떠올렸다. 맞아.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 한 번도 내 감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사랑에 대해서는.
3년 전 학교 후배 선희에게 고백받았던 형배. 형배는 시간이 지난 뒤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형배에게 상처 받았던 선희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생활을 한다. 그런 선희에게 형배는 뒤늦게 사랑을 고백한다. 일로 만나 얼굴만 알았던 영석에게 형배 대역으로 선희는 자신의 등단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랑해요 나도’라는 말을 해달라고 한다. 이 말과 함께 정말 선희를 사랑하게 된 영석. 이 세 사람에게 일어난 일. 사랑은 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향했던 걸까? 이들은 진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걸까?
많이 배운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없거나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도 오게 되는 사랑. 평등하게 오면 참 좋겠지만 사랑은 묘하게 평등하지 않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에 시큰둥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장담하지 말라고 했던가? 상대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이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 또한 사랑이니까. 평소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지만 큐핏의 화살을 받은 사람은 그게 누구든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니까. 사람을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마음속 전쟁들이 글로 표현되는 것. 그 즐거움이 이 책 안에 있다.
당사자들이 아니고는 그들 사이의 사연의 골과 감정의 주름들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60)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긴장,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것을 체험할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떨림, 그것이 연애가 제공하는 진짜 기쁨이라는 것이다. (74)
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요구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권력이 아니고 권력이 될 수 없고 권력이 되어서도 안 된다. (98)
사랑한다는 말은 실제로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을 더 움직인다. (132)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기이한 일, 즉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163)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228)
질투는 한 일을 향하지 않고, 한 것으로 상상된 일을 향한다. 한 일을 향한다면 하지 않은 사실을 밝히거나 증명하면 멈출 수 있다. (250)
대상이 다르면 사랑의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90)
이젠 나이를 먹으니 사랑이 오는 게 겁이 난다. 아니 오는 것을 거부해야 하나? 나는 결혼한 사람이니까. ^^ 그래서 사랑에 대한 기대가 없다. 사랑했던 기억마저도 사라지고 있으니, 내 인생도 참 씁쓸하구나. 다만 이제는 내 아이들이 어떤 사랑할지 그게 궁금하고, 그게 설렌다. 나의 20대처럼 사랑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갈 것인지, 그 과정에서 좀 더 멋진 성숙한 남자로 변할지, 상상하는 것으로도 웃음이 난다. 아파도 좋으니 사랑할 수 있을 때 미치도록 사랑하고, 후회 없이 사랑하면 좋겠다.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혹은 짝사랑을 하고 있다면, 질투에 눈이 멀어 미칠 것 같다면, 사랑이 오지 않아 서글프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사랑을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도 섬세하고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혹 그중 내 마음과 동일하다면 위로받도록. 사랑을 글로 만나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