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가 있던 자리 (오소희)
나에게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었던가? 아직 나는 피를 토할 만큼, 살이 찢길 만큼 슬펐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아직 슬픔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없었다. 앞으로도 처절한 슬픔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 나는 슬픔 앞에 얼마나 나를 내놓을 수 있을까?
주인공 해나는 매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을 묘사한다. 그날은 해나의 하나뿐인 가족, 그녀의 아들 재인이 세상을 떠난 날. 재인이 세상을 떠나고 해나는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자살 충동에 휩싸인다. 그렇게 피폐한 삶을 살던 중 그녀는 여행을 결심한다. 준비 없이 떠난 그녀가 다다른 곳은 적도 인근의 한 나라. 그곳에서 해나는 다리를 잃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이클 선수 레오와 한 때 잘 나가던 패션 디자이너였던 마리,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남자의 삶을 선택한 스낵바 주인 이디와 그 남편 라울 그리고 해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마디를 만나게 되는 것까지.. 해나는 점점 슬픔을 표현하고 이기는 방법을 알아 간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현재의 삶, 살아있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해답도 얻게 되는데...
“모든 고통은 절대적인 것으로 시작해 상대적인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아마 당신은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고통을 흔적 없이 지워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간직하기 편한 형태로 변모시켜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104)
고통을, 슬픔을 우리는 잊으려 노력한다. 왜 이런 종류의 슬픔이 나한테만 오는 것인지 주변을 원망하고 노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몰랐다. 슬픔이, 고통이 간직하기 편한 형태로 변해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기에 해나의 슬픔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인데. 그 아이가 없다는 것. 아마도 해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죽은 것도, 아이 없이 혼자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미혼모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해나는 그래서 세상과 단절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그러나 해나는 슬픔에서 이겨내는 법을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번도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았던 남자, 아이의 아빠를 찾아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아이가 죽었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했으며, 이제라도... 아이를 뿌린 그곳을 찾아가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해주라고..
“살아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다 축복이란다.” (277)
그리고 깨닫게 된다. 살아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축복이란 사실을. 솔직히 살아서 벌어지는 일들 모두가 축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이기에 나 역시도 크고 작은 굴곡진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힘들 때엔 세상을 향해 원망을 쏟아냈고, 행복할 때엔 살아갈 만하다고 웃기도 했던 나. 하지만 생각 보니 어떤 것이든 다 축복일 수 있다. 생각하는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서는. 해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들의 죽음을 처음 만나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 자체를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고 난 후 해나는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누군가를 향해 웃을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에겐 슬픔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지, 나 역시도 어느 날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찾아오면 해나처럼 어디든 떠날지도 모른다.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길 것인지 고민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전에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여태까지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 사람은 결국 산다는 것. 누군가 대신 아파할 수 없듯, 슬픔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결국 내가 내 의지대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 읽는 내내 아팠고, 눈물이 났으며, 우울했지만, 해나 덕분에 다시 밝은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해나가 예전의 해나로 돌아온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큰 슬픔과 고통이 올진 잘 모른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면 많이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후회하지 않도록.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