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쥐고 돈을 주무르고 그걸 세습해온 대한민국 성골

적, 너는 나의 용기(우태현)를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책이란 묘한 매력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설을 읽으면 그 여운 때문에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데 얼마나 기여한 사람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침묵한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세대는,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반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공산당은 나쁜 놈, 공산당이 싫어요'로 배웠으니까. 하지만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이런 식의 편 가르기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편(?)이 아닌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고 그들이 모두 적은 아니다. 정치를 잘 모르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이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예전보다 편해만 졌지, 결코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정치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는 하는 것일까?


전 청와대 대변인이자, 시사 토론의 진행자였던 진보 성향의 여성 정치인 이지선이 어느 날 시체로 떠오른다. 그녀의 열 손가락은 불에 굽히고, 입술은 꿰매진 채 처참한 몰골이다. 그녀의 시체를 부검하던 중 그녀의 입안에서 그림과 메모가 발견된다. 그녀를 시작으로 전 정권의 대북통인 정치인 안용수, 학생 운동을 돕던 출판사 광해사 사장 최용철, 광해사에서 원고를 집필하던 대학교수 유강재가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범행 현장에는 이지선의 입 속에서 발견된 필체의 그림과 메모가 남겨져 있다. 범인을 쫓던 영등포서 강력반장 형균은 이 사건의 희생자들이 과거 학생운동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형 성재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위남청이라는 단어. 이 단어는 무슨 뜻일까?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달려갈 것 같지만 번번이 윗선에 의해 방해를 받지만 형균은 점점 진실에 다가간다. 형의 대학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 ‘파스큘라’와 ‘카프문학연구회’. 이 단체들은 사건의 실마리가 되고 형균과 더불어 법의학자 영도, 그녀의 제자 프로 파일러 인경은 범인을 자극하기 위해 덫을 높기 시작하는데....


부모가 되고 보니 요즈음 젊은이들은 힘들겠구나 싶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직이 힘들고 그러니 결혼이나 아이를 낳은 건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부모 찬스가 아니면 하늘의 별따기고, 부모 찬스를 쓰는 청춘 또한 많지 않다. 그럼에도 주변엔 돈 많고 학벌 좋은(?) 사람이 많아 보이니.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모든 사회의 이슈가 자본이나 돈이 가장 우선시 되어 보이지만, 우리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정치의 주류가 되고 있는 바로 386세대. 국가의 독재와 폭력 앞에 쓰러져갔지만 그들은 국가의 총 칼 앞에 민주주의를 위해 격렬하게 싸웠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죽어갔지만, 누군가는 그 죽음으로 인해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했다. 소설의 처음 내용은 잔인한 연쇄 살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내용은 중반으로 갈수록 70~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그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전향이냐 변절이냐. 한국의 역사에서 전향과 변절은 스톡홀름 신드롬인 것 같아요. 인질과 인질범, 피학자와 가학자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유대감. (중략) 고문받는 이가 고문하는 이에게 매달릴 수 에 없는 비극이죠. 물 샐 틈 없는 권력의 네트워크에 저항한 대가로 돌아온 엄청난 폭력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들에게 순응하고 동화하며 같은 행동을 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길 뿐이었겠죠. (502~503) 같이 학생운동을 한 친구들이 잡혔다. 뭐든 같이 행동할 것 같은 그들에게 분열이 일어난 것은 고문 때문이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고문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자백하는 것. 그것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죽어가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다시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한다. 그리고 자신은 전향을 했을 뿐이지 변절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치에 입문해 보니, 욕심이 생긴다. 수 십 년 전부터 권력을 쥐고 돈을 주무르고 그걸 세습해온 대한민국 성골(230) 중의 성골들. 그들에 편입하기 위해 반역도 하지만 그들은 받아주지 않는다. 한 번 반역한 사람들을 성골 중에 성골은 받아 주지 않는다. 반역도, 변심도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울 수 있으니까.


처음엔 그저 가벼운 추리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엔 학생 운동이 끝물에 가까웠다. IMF가 터지면서 당장의 취직이, 지금 당장 먹고사는 게 더 중한 시점이 되었다. 이념을 가지고, 생각을 가지고 충동한다는 것 자체가 할 일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본다. 학생 운동을 하던 시절 자신이 가졌던 이념을 배신하면서까지 정치적 성골이 되는 게 중요한지, 힘든 노동현장에서 그 시절 그 이념 그대로 이 사회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한지... 이것 역시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개인이 이익을 위한 것인지 나라를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참 어렵다. 어떤 입장도 취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위남청 (위대한 수령 동지의 남조선 청년동맹)의 뜻. 계급이 없고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그런 세상. (424)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 조직. 그 당시 그들은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이들 역시 알게 된다. 그 고민 사이에 누군가는 전향을 하고 전향을 한 사람을 보고 변절했다고 말하는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 이들 입장에선 서로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그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 달라져 버렸으니까.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 책이 주는 다양한 의문에 머리가 아프다.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고, 어떤 것도 정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며 살았을 테니까. 심지어 고문관이었던 사람조차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며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우리 사회가 바로 자리를 잡을 수는 있는 것일까? 정치적 이념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일까?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고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꽃피고 있는 게 맞을까? 한때는 격렬히 민주주의를 위해 운동했던 그들. 하지만 기존의 기성세대를 밀어내고 다시 기성세대가 된 그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든 것일까? 지금 그 기성세대의 아이들은, 그 청춘들의 인생은 편안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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