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의 공포, 지옥

모르는 척(안보윤)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자동차 보험 사기로 몇 억의 돈을 받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씩 뉴스에 나온다. 외제차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교통사고를 내거나, 접촉사고를 내는 사람들. 보험 사기를 떼로 몰려다니며, 체계적으로 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렇게 체계적인 사람이 아닌, 우리의 곁에 사는, 누군가의 이웃이, 선한 얼굴을 하고 어디에선가 걷다가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의 첫 장면은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부터 시작 된다. 큰 아들 조인근. 그가 어머니 변계숙의 머리를 15파운드짜리 볼링공으로 내려치면서.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던 평범한 네 식구.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 온 것은 세무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돌연사 하면서 부터. 아버지가 죽고 회사 공금을 횡령한 사건에 휘말려 남은 가족은 재산을 날리고 P시로 야반도주 하듯 쫓겨 온다. 이곳은 이모이자 보험설계사 변인숙이 사는 곳. 두 형제는 이모의 소개로 정법사라는 법당을 찾아가고 이곳에서 형 조인근은 보험 사기의 늪에 발을 들인다. 늘 아픈 형. 그리고 늘 학교에 빠지는 형. 그 형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생과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형의 희생은 당연하게 생각되어지고,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리듬은 깨지기 시작하는데...


가족이라는 이름. 따스하고 포근해야 할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지옥이라는 말과 같은 뜻일 때가 있다. 아무도 자신을 품어주지 못하는 곳. 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 그러면서도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곳. 그게 조인근에게는 가족이 아니었을까? 처음엔 아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깝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을 어머니. 하지만 그 어머니는 조인근이 뛰어내려 다친 몸으로 받은 보험료로 생활한다. 집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처음에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그게 한 번이 세 번으로, 세 번에서 열 번으로 늘어나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돈이 떨어질 때쯤엔 넌지시 암시까지 준다. 모르는 척 받아들이는 것으로..


책을 읽으면서 설마설마 했다. 엄마가 모르는 것이겠지 하면서... 하지만 뒤로 갈수록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침묵하고 모르는 척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에게도 아들이 있다. 이 책에서처럼 두 명의 아들. 첫째이기 때문에 혹은 아버지를 너무 닮아서 그 아이가 삶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내가 더 움직이고 더 악착같이 생활해서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해주고 싶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첫째에게 떠맡긴 것 같다. 아들의 몸이 작살나는 것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요구하고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손가락 하나 없다고 사는 데 지장 없다 말하는 것이 제정신 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악함이 소름끼친다. 맨 앞에서 첫째 아들이 말한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서글퍼지고 쓸쓸해졌다. 노래가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 아니 가족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주어온 자식도 아니면서... 엄마의 이기적인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은 강요한적 없고, 아이 스스로 그런 일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누구 하나 희생해서 작은 아이가 대학엘 가고 졸업하면 그걸로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다고 그칠까? 취업할 때까지, 혹은 결혼할 때까지, 결혼하고 나서 힘들 때마다 손을 벌리면 그때 마다 형이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포 그리고 살기가 조용히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혼자서 아파했을 인근이가 불쌍해서.. 아무것도 모른 척 그 혜택을 받은 인호가 얄미워서. 사건만 놓고 보면 인근은 패륜아고 나쁜 놈이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죽이기 전에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차라리 놓았다면, 그 테두리 안에서 뛰어나왔다면 좋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죽이는 용기로,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뭐든 당연하기까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내가 당연하게 받은 것 중 감사해야 할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혹 누군가의 희생으로 받은 눈물의 다이아몬드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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