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을 읽고
이제는 청년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내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나'라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꽤 오래전 작은 녀석이 밥을 먹다 밑도 끝도 없이 한 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엄마, 우리 집이 화목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갑자기 웬 화목? 다른 집도 우리 집만큼 화목하겠지.” 했더니 아니란다.
수업시간에 집안 분위기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한 이야기가 작은 녀석에게는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가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집도 많고요, 뭔가를 던지는 집도 있데요. 자면서도 싸우는 소리는 다 들린 데요. 근데 우리 집은 엄마랑 아빠랑 안 싸우잖아요. 그럼 우리 집은 화목한 거지요?”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큰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싸우지 않는다고 화목한 것일까? 과연 화목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래서 나는,
“어느 집이든 싸우지 않는 집은 없어. 생각이 달라 화를 낼 수도 있고. 그게 싸움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지 미워서 싸우는 건 아닐 거야." 이렇게 말해 준 기억이 나지만, 아이는 그 말을 이해했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느낀다. 아이는 온몸으로 집안 분위기를 감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를 보게 된다. '눈치가 없다'는 말은 '눈치 볼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던가.
인왕산 아래, 산동네에 살고 있는 동구에게 6살 터울의 동생이 생긴다. 동구는 침착하고 순수하고, 사려 깊은 아이지만 3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한다. 독자로 태어났지만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대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자라고 있다. 또한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의 고부 갈등이 심해 그 대립각 속에서 어쩔 줄 모른다. 반면 늦둥이로 태어난 동생 영주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총명한 아이다. 세 돌이 되기 전에 한글을 줄줄 읽으면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3학년 담임이 된 박영은 선생님은 그런 동구를 유심히 살피고 동구에게 난독증이 있음을 알게 된다. 동구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한글 공부를 시작하고 차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되지만, 뜻하지 않게 10. 26, 12. 12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주리 삼촌과 박영은 선생님을 통해 역사의 격변을 맞이하고, 아이의 눈으로 사회의 혼란함을 본다. 이후 5. 18로 박영은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혼란함 속에서 동구는 동생 영주를 잃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동생의 죽음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동구는 그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이 책은 지인의 선물로 읽게 된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책을 함부로 내려놓지 못했다. 한 권의 책 안에서 동구가 느꼈을 아픔을 생각하니 아이를 키우는 어미 입장에서 안타깝고 아프고 눈물이 났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그렇게 시집살이를 했고, 그렇게 참고 살았으며, 그렇게 아이들을 교육시켰다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아팠을 동구의 마음을 선생님 말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았다니... 그랬기 때문에 동구에게 난독증이 온 게 아닐까?
나도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의 고부 갈등은 없다. 욕을 하신 적도 없고, 아이 앞에서 나의 흉을 보신 적도 없다. 그래서 이 책에 나와 있는 동구 할머니의 그악스러운 모습이 무섭기까지 하다. 잘한 일은 당신 아들이 잘나 그렇게 된 것이고, 안 된 일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하는 동구 할머니를 보면서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참고 살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쓴웃음이 나온다. 어머니의 편도, 아내의 편도 들 수 없는 우유부단한 동구 아버지의 모습도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어린 동구는 그런 가족들 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아파했을까? 똑똑한 동생에게 모든 사랑이 돌아가고, 표현하지 못하는 동구는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동구의 외로운 마음과 함께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이 그래서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결코 희망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동구의 생활과 동구의 마음. 그리고 동구의 동생 영주의 죽음으로 치닫는 광기까지. 그 당시 우리나라의 광기 어린 모습과 오버랩되어 아픔을 남긴다.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아버지는 자신이 중앙에 서 있는지 밀려났는지 그것부터 염려한다. 사실 아버지가 중심을 지키기만 했어도 엄마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가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엄마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당신은 못 배웠어, 당신도 잘한 거 없어, 자식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 라며 엄마의 입을 틀어막기에만 급급했다. 내가 엄마라도 미쳐버렸을 것이다.’ (287)
한 가정도, 한 나라도 그 가족을, 그 구성원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결국 한꺼번에 터지고 만다. 강하게 터지고 나면 그것을 수습하는 게 쉽지 않다.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과 빗대어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다. 이제 아이는 자랐고 청년이 되었다. 아이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 청년이 된 내 아이들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 나는 아이들 앞에 괜찮은 부모이기는 한 것일까? 아이들은 부모를 성장하게 한다. 아이와 함께 읽으며 같이 성장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