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람을 다 아는 척, 위로하지 말기

유원 (백 온유 작가)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만약 지구 종말이 오면 살아남는 게 좋을까, 아니면 사람들과 같이 죽는 게 좋을까? 재난 영화를 보면 나는 말한다. 나는 살아남아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걸 택하겠다고. 살아남는 것. 그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남은 것. 그게 과연 축복이긴 할까? 만약 살아남은 당사자라면,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 예요,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해요. 그게 살아남은 자의 숙명이니까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 유원은 열여덟 살. 그녀는 12년 전 화재 사고가 일어난 아파트에서 살아남은 아이다. 위층 할아버지는 자신이 피우던 담배꽁초를 버렸는데 그 꽁초가 아래층에 옮겨붙는다. 밑에는 어린 유원과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물에 적신 이불로 여섯 살 유원을 감싸 아래층으로 던져 유원을 살리고 자신은 죽었다. 언니의 생일날에는 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온다. 유원은 언니가 자신을 살리고 죽었다는 죄책감과 부담감으로 힘들다. 이런 유원을 힘들게 하는 존재는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11층에서 떨어진 유원을 받아 낸 사람. 그 사람도 유원의 집을 찾는다. 아저씨가 집에 오면 분위기는 이상해진다. 돈을 요구하는 그는 한때 유원을 살렸다는 이유로 용감한 시민 혹은 시민 영웅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마냥 부담스럽다. 어딜 가나 유원은 ‘이불 아기’로 유명하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려 한다. 하지만 유원은 그런 모든 것들이 학습된 배려 같아 싫다. 그래서 유원은 학교 옥상에 올라가 혼자 있다. 혼자의 시간. 어느 날 그곳에 오는 수현을 만나고, 그녀와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수현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적당히 행복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두 배나 행복하게 살라는 거야. (113)


함부로 위로하지 말라고 말한다. 또한, 함부로 괜찮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예전에 읽었던 고 박지리 작가의 ‘번외’가 생각났다. 번외라는 책은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소년에 관한 이야기였다.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소년을 사람들은 예외로 취급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관대하다. 그리고 소년에게 잘살아야 한다고, 친절을 베풀고, 뭐든 관대하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과연 당사자에게 좋았을까?


유원도 살아남은 자의 버거움이 존재한다. 언니가 가진 스펙(?). 언니에 관한 기억. 만약 그게 진짜라면 그게 사람일까? 신이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아쉬운 사람일수록 더 기억은 부풀기 마련. 뭐든 잘하는 언니 대신 자신이 살았지만, 자신은 언니만큼 대단하지 않다. 자신이 죽고 언니가 살았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과 부담감. 12년이 지났지만 언니를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다. 그건 언니가 짧은 시간 동안 너무도 잘 살았다는 증거는 아닐까? 자신의 인생은 없고, 언니의 인생만 자신의 인생을 따라다니는 것 같은. 그리고 불쑥 찾아오는 시민 영웅. 아저씨는 자신을 살린 대신 한쪽 다리를 다쳤다. 그걸 빌미로 부모를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그걸 거절하지 못하는 부모님.


내 안의 나를, 글로 표현한다는 것, 내 안의 나를 말로 표현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사춘기 소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건 어렵다. 그 길에 좋은 친구가, 진한 우정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건 다행한 일 아닐까? 사는 게 힘들다.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게 좋다고도 말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사는 게 정말 좋은 건지. 특히나 유원의 입장이라면. 두 배는 더 잘 살아한다는 부담감. 두 배는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두 배는 재미있게 살아야 하고 두 배는 더 행복해야 하고, 두 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적당히 살기도 힘든데 뭐든 두 배가 되어야 하는 삶이 결코 유원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부담감을 이기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투명한 막을 깬 유원을 응원하고 싶다. 함부로 위로하지 말고, 함부로 그 사람을 다 아는 척, 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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