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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리지 않다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를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나는 문화센터에서 하는 인문학 수업에 참가했었다. 햇수로 10년이 넘은, 그래서 아는 사람들만 공부하는 인문학 수업 시간에 우리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때 우리가 펼친 열띤 토론은 청소년 소설의 비극은 어디까지여야 할까 였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그런지 무조건 희망적인 메시지보다는 비극도 서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소설도 장르를 다양화해야 하고,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편에선 어차피 어른이 되면 겪게 될 다양한 아픔들을 왜 청소년 아이들 책에 넣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성향과 교육 방식에 따라 긍정적인 것만 읽히는 부모가 있을 것이고 다양한 것을 읽게 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만약 아이와 부모의 성향이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은 조금 거북할지 모르겠다. 지나치리 만큼 잔인하고 아픈 민낯과 만나야 할지 모르니까.


어머니가 자살로 죽은 뒤 재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 의붓 여동생과 살게 된 열여섯 살의 주인공 소년. 새어머니와 은근한 갈등으로 힘들어하던 소년은 여동생 무희를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쓰자 쫓기듯 도망쳐 나온다. 집을 나온 주인공은 동네 평범한 빵집인 ‘위저드 베이커리’에 몸을 숨긴다. 이곳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주문에 따라 마법의 빵을 만들고, 그 빵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행태를 목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서 빵을 사간 고객이 이 빵집에 대한 의문을 품고 경찰 수사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제 슬슬 현실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많다고. 하지만 요즈음 잔인하고 무서운 사건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배운 부모님과 금전적으로 힘들지 않은 가정환경. 그런 가정에서 혹은 그것보다 더 잘 사는 집의 아이들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다. 그게 과연 사회적 문제인지 아님 집안의 문제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 선생이라는 새엄마와 주인공 소년의 입장을 모두 생각한다. 사춘기 소년에게 새어머니의 출현과 여동생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무뚝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새어머니 입장에서도 사춘기 남자아이가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딸아이와는 사뭇 다른 남자아이. 그 아이와 어떻게 친해져야 하고 어떻게 가까워져야 하는지 몰랐을 새어머니. 이런 일을 만든 아버지라는 사람, 남편이라는 사람은 방관자 역할만 할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함께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알지 못한다. 겉으로는 중산층의 다복한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속한 아버지, 새어머니, 소년, 여동생 무희는 행복하지 않다.


이런 민낯을 드러낸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나 한창 꿈을 키워야 할 청소년들이 이런 책을 읽는 게 싫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안다. 사춘기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리지 않다는 것을. 부모가 하라는 것만 하는 그래서 혹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를 아이들은 나름의 생각이 있고, 집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라는 것 아닐까?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거기다 지극히 비관적이고 우울한 소설이기는 하지만 우리네 가정을 뒤돌아 보게 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완벽하고 행복한 가정이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이 혹 누군가 만들어 놓은 환상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한창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 아이들. 그 아이들 머릿속은 늘 다양한 전쟁들이 터지고 있다지? 다시 한번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진정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걸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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