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박범신)을 읽고
늘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모두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이 되었다. 이 녀석들에게도 어느 날 첫사랑이 다가오겠지? 그렇다면 나에게는 언제 첫사랑이 왔었던가?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고, 별로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지나간 시간을 되새김질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쯤 그 사람도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 거라는 생각을 할 뿐,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곤 생각한다. 내 첫사랑보다는 내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첫사랑을 경험하는 날이 올 것이고, 그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겠지? 하는 기대감.. 근데 내리사랑이라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가슴 설레고 기대하게 되지만, 내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의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든, 중매에 의한 약속이든 태어날 때부터 나의 엄마 아빠였기에 사랑을 생각할 수 없었다. 어쩜 '부부는 의리'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했기 때문일까? 그런 나에게 어르신의 사랑은 생소하고, 거북함을 느낀다. 생소함과 거북함의 기저에는 아마도 늙어서 주책이야..라는 마음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한다. 어르신의 사랑이 지금 현재이든, 미래이든, 혹 그게 과거이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의 풍파에도, 세상의 질긴 고달픔에도 사람들에게 사랑은... 그 시대를 이겨낼 힘이지 않았을까?
박범신 작가의 책. 노인과 소녀의 사랑을 이야기하더니 이번에는 일흔이 넘은 내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어르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엔 어르신의 현재 사랑은 아닐까 상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진짜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일흔여덟의 윤희옥은 자신의 남편이 죽자 집 마당 매화나무 밑에 묻는다. 그리고 윤희옥은 경찰서를 찾아 남편이 실종되었다고 신고를 한다. 한평생 부인 윤희옥과 딸 주인혜에게 헌신하며 살아온 남편이자 아버지인 주호백. 그는 2009년 두 차례의 뇌출혈로 예상하지 못한 인생 말년을 맞이한다. 아내와 딸에게 늘 자애롭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 왔던 주호백은 치매와 파킨슨병, 당뇨, 고혈압으로 지금까지 보여 왔던 모습과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거칠고 생급스러운 남편의 모습에 윤희옥은 과거 그를 만났던 때를 떠올린다. 윤희옥보다 어린 나이에, 코흘리개 소년. 작은 덩치에 늘 윤희옥을 바라보던 소년. 그 소년은 윤희옥과 함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 그 당시 윤희옥은 주호백보다 먼저 대학에 갔고,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 남자(김가인)는 혁명을 위해 시위를 하고, 나라를 위해 거침없이 행동한다. 그 남자에게 사랑은 윤희옥이 아니라 나라였는지 모른다. 그런 남자의 아이를 윤희옥이 가졌다. 당시엔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이 커다란 흠이었고, 그런 윤희옥을 주호백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살아가던 시절 고문으로 망가진 채 세상에 나온 김가인을 만나러 윤희옥이 집을 나가고 두 달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모진 행동을 모두 묵묵하게 받아들인 주호백.. 하지만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주호백은 과거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거칠게 내뱉기 시작하는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혹 집착일까? 아님 꾹꾹 눌러 담은 광기 일까? 지고지순할 수 있는 이 사랑을 견디고 지키기 위해 주호백은 얼마나 참고 또 참고 참았을까? 나는 사랑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랑만큼 힘들고 아픈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사랑이, 사람들의 삶이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 법. 그렇기에 이렇게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했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호백이 치매로 자신의 감정을 내뱉기 시작하면서 윤희옥은 생각한다. 자신이 주호백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렇기 때문에 힘들다는 치매 환자를 정성으로 돌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생각해 본다. 그게 정말 사랑일까? 죽어가는 주호백을 보면서 미안함이 사랑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공평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154)
늘 불공평한 사랑을 했던 주호백.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다. 더 사랑했기에 주호백은 참았고 사랑했으며 지키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그녀가 알아주기를 기다리며..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줬을 때 주호백은 치매에 걸려버렸다. 과거 아픈 시간만을 간진하게 된 채. 그래도 알았을까? 결국 윤희옥이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을? 나는 한 번도 내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치열했던 시국 상황이, 그들을 사랑으로 내 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신념에 의해 움직였던 그와 그녀는 그 속에서 사랑하고 이별했으며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혁명적 시위와 희생으로 우리는 보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른들의 사랑은 희미하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내공의 사랑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이런 사랑을 지키기 위한 주호백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당신 가슴속인데 당신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지어서 미안해요. 미웠던 적은 있었지만 당신과 헤어지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소. 그런 점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참 아무것도 후회하진 말아요. 후회하면 당신 가슴속에 지은 내 집이 무거워질 거요.”(267) 세월이 흘러 나도 내 남편에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까? 남편이 첫사랑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친 듯이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도 아니다.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의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랑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신발을 신었고, 서로의 걸음 폭에 맞춰 서로를 마주 보며 걸어간다. 불편하지 않고 차분하며 따스한 시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랑과 정을 가지고..
어떤 사랑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하고 이뤄나가는 거니까. 하지만 생각한다. 우리의 부모님, 어르신들도 한때는 20대의 시절이 30대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에 미친 듯이 사랑했던 연인도 있었을 거라는 것. 생의 마지막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게 될까? 사랑했던 사람을, 아니 현재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기억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