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였던 그녀들이 멀쩡한 우리를 향해 던지는 위로

풍년식당 레시피(서성란)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친한 언니가 있었다. 첫아이를 낳고 한동안 생기지 않았던 둘째가 생겼을 때 언니는 무엇이나 좋아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렵게 갖게 된 둘째의 출산 날. 언니는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이의 몸도 심하게 아팠지만, 아이의 얼굴이 평범한 아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의학적으로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였다.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언니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언니도 아이도 그렇게 아파하는 사이. 아이는 짧은 삶을 마감해버렸다. 심장에 이상이 있었는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아픈 상태에서 나왔는지 병원에서도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 아이. 시간이 지나 그 언니는 아이를 보낸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주변에서도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아프면서도 슬픈, 하지만 따스한 소설을 만났다. 읽어 내려가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랑이 있음을 발견하고 마음이 따스해진다. 풍년 식당엔 승복이 있다. 우리 세상 어딘가에 있을 많은 승복이.. 그 여자는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옆으로 삐진 작은 눈을 갖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여자가 있다. 그녀 역시 짧은 팔과 어색하게 비대한 몸을 갖고 있다. 두 여자는 모녀지간처럼 닮았지만 생물학적인 모녀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두 여자는 같은 질환을 앓는, 그래서 닮은 외모를 지녔다. 우리는 이런 질환을 다운증후군이라고 하지만 책에선 이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 아무도 반기지 않는 탄생. 그런 승복이는 집에서도 대접받지 못한다. 사람들로부터 괴물이라 불리고 어두운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녀가 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엄마는 승복을 데리고 시설에 간다. 그리고 승복을 그곳에 버려둔다. 이후 시설에 불이 나자 생존하게 된 승복은 다시 자신을 무시하는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승복은 집안에서 귀신처럼, 괴물처럼,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냈지만 할머니한테 음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승복을 미워하고 무시하던 언니와 오빠는 모두 집을 떠났지만 승복은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산다. 그리고 승복과 똑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가 풍년식당에 버려지면서 그 아이 선희는 승복의 딸처럼 키워진다. 이후 승복은 세상으로부터 자신과 똑같은 아이 선희를 지키기 위해 단절을 선택한다. 하지만 선희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진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게 된다. 승복과 선희.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모든 것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아무리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 우리나라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질환이 있는 부모는 늘 남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그 친한 언니가 생각났었다. 아이의 탄생을 축복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현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현실. 어떻게 키울까부터 시작해 가장 근본적인 것을 걱정해야 했던 시간들. 그때는 결혼 전이라 몰랐는데 만약 그 입장이 나라면... 나 역시 그 언니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동네 아이들로부터 괴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언니와 오빠에게 손가락질과 욕을 들어야 했던 승복. 그런 승복에게 삶의 위로와 위안은 바로 할머니의 음식 아니었을까? 그리고 음식과 만나는 동안에는 승복 역시 행복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과 단절하기로 마음먹었던 승복이지만 자신과 똑같은 선희를 자식처럼 키우면서 그녀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 한 없이 우울하고 한 없이 아픈 이야기 일 수 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또한 많이 아팠고 서글펐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에서 희망을, 그리고 소통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녀들의 식당에서 팥죽을 먹고 희망을 찾고, 위안을 찾고, 삶의 의지를 찾는다. 아무도 그녀들이 정상적인(?) 사람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레시피로 몸뚱이만 멀쩡한 우리들을 위로한다. 몸뚱이만 멀쩡하고 마음은 병든 사람보다는 몸은 아플지 모르지만 세상을 향해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그녀들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날마다 먹어도 물리지 않는 팥죽 맛의 비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말한다. “팥을 넣지요. 보여 줄까요? 주방에 엄청 많이 있어요.” (322) 요행을 부리지 않고 요령도 부리지 않는 그녀들이 만든 팥죽은 그래서 맛 좋은 것이 아닐까? 상처투성이였던 그녀들이 멀쩡한 우리를 향해 던지는 따스한 사랑의 레시피. 오늘은 그녀들이 만든 팥죽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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