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역 (김혜진)을 읽고
서울역을 지날 때(지금은 또 어떤지 모르겠다. 서울역에 갈 일이 많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냄새나고 더러운 몸이 내 곁을 훑고 지날까 온몸에 긴장을 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싫고, 그들끼리 싸우는 지저분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외면했다. 그들의 모습은 이 사회가 말하는 루저들의 인생이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에 입성(?)했는지 나름의 사연이 있을 테지만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것일까? 소설의 소재로 눈이 돌아갈 만큼 참신하거나 획기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난하고 비릿한 사람들의 인생을 살핀다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편안하지 않다.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거슬 거리고 까끌거린다. 늦은 시간 거리를 배회해 본 적 없고, 돌아갈 어딘가가 없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들의 시선이 친절 할리 없지만 이 책의 문장에 매료되고 가슴에 찬바람이 분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간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나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젊은 남자가 역 광장에 들어선다. 그는 이제 갓, 거리의 생활에 편입된 노숙자다. 거리에 있는 그에게 시간은 차고 넘친다. 흘러가지 않는 시간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그뿐인 것 같다. 거리의 생활은 젊은 그에게 버겁고 힘들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병들고 늙은 여자가 다가온다. 거리의 쥐가 무섭고 추운 그녀는 남자의 곁에서 잠들어버린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뜬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캐리어를 들고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가방을 찾기 위해 난리를 치지만 그가 그리워한 것은 여자의 살결이다. 얼마 후 여자를 발견하고 가방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치지만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탐하는 연인이 되어 있다. 밤에는 애인이었다가 낮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들. 이들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내 시간의 일부를 떼어 팔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한다. 하루라는 시간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길다. 더 길어지고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그런 끔찍한 가정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32) 책에는 그가 어떤 사연으로 이 역에 정착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나이가 몇 살이고 그의 이름은 무엇이고, 왜 이곳에 왔는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젊은 남자에게 시간은 미치도록 길다. 잠을 편안하게 잘 수도 없고 자고 나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이 그들에겐 정지된 흐름일 뿐이다. 젊은 남자가 아닌 조금은 늙고 아픈 남자였다면 시간의 흐름이 보다 빠르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 우연히 약속이 펑크나 붕 떠버린 시간. 그런 시간에 역에 가서 앉아 있다 보면 느끼게 된다. 시간이란 이렇게 거북이처럼 느릴 수도 있구나.. 돌아다녀보고, 멍하니 앉아 있어 보고, 떠드는 텔레비전을 쳐다봐도 시간은 묘하게도 느리다. 기다리는 나의 마음까지 잡아 가둘 정도로. 처음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노숙은. 시간과의 전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그들은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시간이 힘들 것 같다. 왜 이곳에 누워있어야 하는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견딜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들 수 있으므로...
흔히 많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젊은 네가 뭐라도 일을 하면 지금의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온다고 한다. 이게 젤 밑바닥인 거 같지? 아냐. 바닥 같은 건 없어.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려 (161) 밑바닥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더 내려갈 바닥이 있다는 게 충격이다. 얼마나 더 아프고 힘들어야 그들은 그 삶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그 삶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수치심 혹은 분노가 어디까지 가야 다시 솟아날 힘을 가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게을러서 그런 거야라고 치부하기에 그들의 인생이 아프다. 이 사회가 그들을 그곳으로 내 몬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노숙자들을 이용해 철거민들과 대치하게 하고, 아무것도 지킬 것 없는 노숙자들은 그래서 조금이라도 지킬 것이 있는 철거민들과 싸우게 된다.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들을 이용해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한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는 걸 알면서도...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난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이 눈에 밟힌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한 이유가 있다고 혹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 세상엔 가난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렇고 살고 싶었던 사람도 없다. 남의 이야기이고 남의 인생이라고 무시했던 그들의 삶이 차갑고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오버일까?
젊은 남자는 아픈 여자를 위해 일을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처음엔 그녀가 떠날까 두렵지만 나중엔 그녀가 정말 자신의 곁에 있을까 두렵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남자의 이 말이 비정하고 야속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난 왜 그 말에 안도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어디 하나 친절하지 않고 다정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이 감정을 절제하고 감정이 더 나가지 않게 잡아준다. 그들의 삶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소설의 말미에는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여운을 남기는 듯 한 말미도 좋다. 그는 여전히 거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 순간 나름의 희망을 느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