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0일 생 (김서진)을 읽고
존재는 하나 존재를 증명하기 쉽지 않은 날.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2월 30일 생이 존재 가능해?’ 하는 생각을 했다. 검색을 해 보니 2월 30일 생은 존재하기도 하고 양력 날짜를 계산해 생일을 챙기기도 한다고 한다. 4년에 한 번 온다는 2월 29일 생일도 신기한데 2월 30일 생이라니. 만약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신의 탄생을 극적이고 신비하다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재수 없는 징조라고 생각하게 될까? 나는 긍정적인 편이라 생일 날짜의 희귀성 때문에 존재 자체를 귀하게 생각하게 될 것도 같은데... 모두 나와 같지는 않겠지?
현재라는 청년은 2월 30일 생,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날에 태어난 혜린을 사랑했고, 어느 날 그녀를 잃었다. 그녀가 죽게 된 원인을 찾다 보니 숨겨진 자신의 가족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방송국 PD로 일하는 현재는 헤어진 전 애인을 고향 동네에서 만나게 된다. 현재는 그녀를 다그치며 서울로 올라갈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이 있다며 그의 말을 거부하고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현재는 혹 자신이 그녀를 죽인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 인근 부랑자가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자백하며 현재는 혐의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무마시킨 인물이 현재의 할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술로 인해 필름이 끊긴 현재는 진범을 알고 싶어 하고 그렇게 시작된 진실은 과거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까지 파헤치게 되는데...
가끔 일본 문학을 읽다 보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신분 세탁을 하는 사람들이 곧잘 나오곤 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실시간 검색이나 동영상이 촬영되지 못한 시절. 그나마 돈 좀 있다는 사람 몇이 사진을 찍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묻고 새로운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오지에 있는 마을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머슴으로 살던 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좋고 욕심이 가득했다. 이것이 기회라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분을 세탁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이 자신에게 왔을 때 그는 잡았을 뿐.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음과 동시에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 자신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눈치채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걸 그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현재,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단단한 성을 깨부수려 하는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현재를 잘 살아야 미래가 밝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현재만이 해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과거의 시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교훈 삼아야 할지 생각한 사람이 현재도, 미래도 알차게 살아간다. 3자들이 봤을 때는 단단한 성이고 오를 수 없는 견고한 성일 지도 모르는 그들의 리그. 하지만 그 리그에 살고 있는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무너져가기 일보 직전의 땅에 성을 올려놨으니 흔들리고, 금이 가는 건 어쩜 당연한 처사 아닐까?
나는 전쟁 세대도 아니고, 이념 때문에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미는 세대도 아니다. 집을 놔두고 피난을 떠난 세대도 아니고, 머슴과 양반이 있던 세대를 산 사람도 아니다. 지금이야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해방되기 전까지는 분명 머슴이 있었고, 주인집 아가씨와 도련님이 있었다.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능력은 갈렸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리와 이념 사이에 갈등했다. 우린 그 시대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근대화를 이뤘고, 그 과정에서 줄을 잘 탄 사람의 경우 출세할 수 있었다. 줄을 잘 탄 그 사람들에게 과거는 결코 반가운 기억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을 없애고 싶어 한다. 지금 현재의 안정된 기반이 무너지기를 원치 않으니까. 때문에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2월 30일 생처럼 그들을 묘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없는 사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선 살인도 불사하는 무서운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할아버지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손자의 입장을 ‘현재’라는 이름으로 배치시킨 작가의 센스가 놀랍다. 시대의 흐름을 타 끊임없이 변신한 할아버지와 세상의 흐름에 변화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혹자는 잊고 싶은 과거가 있을지언정 지금 현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면 그까짓 손가락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재산 반환 청구 소송을 하는 것 아닐까? 그에 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은 현재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 이것만 한 모순도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라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내 배만 부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시간. 그리고 감추고 싶은 사람들.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친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