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딘가도 손 내밀어 주길 바라는 아이들이 있을 것

세 모양의 마음(설재인)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걔는 아직 열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이미 세상의 어떤 것도 달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107)

자기 생의 첫 어른이자 가장 큰 어른에게 상처받은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142)

집은 지옥이지만 익숙한 지옥이지. 행여나 더 작고 더 얕은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낯선 것이라면 위험을 감수해 볼 용기조차 낼 수 없어서 나는 해내지 못할 거야. (179)

타인보다 못한 사람들이 쥔 올가미를 부르는 이름이 뭔 줄 알아? 혈연. 핏줄. 내 새끼. 어떻게 자아를 가진 대상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핏줄이란 이름의 환상은 굴레를 만드는 것일까? (222~223)


가족이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보다 더한 떨어지지 않는 끈끈이 같은 것인가 보다. 아이를 낳았지만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고, 매일 싸우면서 결정적인 순간 (돈이 오가는 순간)이 오면 누구보다 똘똘 뭉쳐 가족이라, 핏줄이라 칭하는 사람들. 누군가는 가족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행복, 충만, 사랑 같은 걸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음을 안다. 나 역시도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버거웠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왜 내가 이 집에 태어나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는지, 원망하는 마음이 컸었다.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 그 두 마음을 다 알고 나니 가족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열다섯 소녀 두 명과 한 명의 여자 이야기다. 유주와 상미는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유주와 상미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가게 된 동네 도서관에서 두 사람은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유주와 상미에게 삼십 대 후반의 여자 진영이 밥을 사주겠다며 접근한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배가 너무 고파서 진영과 식사를 하게 된 세 사람은 가까워진다. 유주는 다섯 살 때 물에 빠졌다가 누군가에 의해 구해진다. 이후 그 사람은 돌연사했다고 한다. 이후 유주는 발뒤꿈치가 아파 다리를 절게 된다. 상미는 어린 시절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아줌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자식을 낳았지만 돌보지 않는 부모. 상미는 생각한다. 그때 그 아줌마를 따라갔다면 자신에게 다른 인생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방학이 끝나도 여전히 만나게 된 세 사람.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고 진영의 비밀이 밝혀진다. 각자의 시선에서 보는 진실. 그 진실 앞에 세 사람은 분열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소설을 읽으면 소위 ‘기’가 빨린다. 세 사람 모두 힘든 인생이기에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트라우마가 있지만 치료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진영이나, 지금 현재 자신의 삶이 미치도록 힘든 아이들. 가정에서 보살핌 받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똑같은 걸까? 은근슬쩍 ‘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그래서 더 힘들다. 차라리 제대로 반항하고 집을 뛰쳐나가면 될 텐데 그 정도의 용기도 없다. 열다섯의 아이들은, 돈이 없는 아이들은 정말 갈 곳이 없다. 배가 고파도 참을 수밖에 없고,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다. 그 누구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그들만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린다.


뉴스를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난리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들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면서 낳으라고만 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고, 내가 진짜 괜찮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도 방황하는 일이다. 부모 자격증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힘든 것이 바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아이의 인생을, 나도 내 인생을 어쩌지 못하는데,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유주나 상미 같은 아이들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디에도 손 내밀지 못하고 지옥 같은 집에서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없다고, 어른인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 무거운 소설이고 읽는 내내 목에 가시가 낀 것처럼 답답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그것에 무관심한 학교. 이런 우울한 환경에 무방비로 방치된 아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서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을까?


지금 어딘가에도 손 내밀어 주길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 듯 손을 잡을 수 없는 이유는 지속적인 관심을 주지 않으면,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들 또한 이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네 이웃이자 우리 아이들의 친구일지도 모르니까. 꼭 아이와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유주와 상미의 마음을 듣고 싶어 지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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