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발견(최광현)
그래도 세상에서 내 편이 되어 줄 거라 믿게 되는 사람들. 그들을 가족이라 말하지만 실제 우리는 가족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고 한다. 편하다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한 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랑이라는 이름. 내 뿌리의 기본이 되는 가족이 바로 서야 모두가 편안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된다고 말하는 그 가족. 혹 그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금도 그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젠 그 무게를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가족의 두 얼굴을 쓴 가족 심리치유 전문가 최광현 작가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왜 우리는 가족에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지 심리학자의 눈으로 진짜 나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착한 사람, 상처받는 가족, 가족의 발견, 나와 가족을 보듬다. 이렇게 이뤄진 구성 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1부 착한 사람’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이길 강요받는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을 칭찬할 때 구체적인 행동으로 칭찬하기보다 ‘아이 착하네’라는 말로 칭찬을 대신한다. 그 착하다는 말의 감옥에 갇힌 아이들은 착하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진짜 마음에 다가가지 못한다. 착한 아이란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조금이라도 착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부모가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된다.
나는 1남 3녀의 셋째였는데 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빠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부당하다 생각해 “왜 엄마는 오빠만 사랑하고 좋아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던 집안 분위기에서 나의 이런 발언은 엄마를 화나게 했고, 버릇없고, 착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였다. 여자아이는 순종적이고, 엄마의 말씀에 반발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 했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따져야 했으니 엄마 입장에서 나는 정말이지 착하지 않은 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착하지 않은 것을 택했기에 부당하다 생각한 것을 행하지 않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언제나 내가 버거웠다고 말한다. 한 번도 고분고분했던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4형제 중에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언니나 오빠 그리고 동생은 언제나 착한 딸과 아들이었다. ‘착한’ 타이틀을 달고 사는 언니와 오빠, 동생은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지언정 정말 하고 싶은 건 하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안타깝다 말할 수 있다. 착함이라는 테두리 때문에 내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았을지 모를 많은 사람들. 이젠 그 무거운 짐에서 빠져나오면 좋겠다.
부모가 되어 나 역시 공평하게 사랑을 주려한다. 하지만 내가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다름을 알게 된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하려고 하는데 작은 아이는 늘 불평이다. ‘엄마는 언제나 형만 사랑해.’ 글쎄. 누구보다 누구를 더 사랑하지는 않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작은 아이가 더 혼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작은 아이는 그게 늘 억울하다. 잘 설명하지만, 아이는 ‘혼나는 것’ 하나만 집중하게 되니까.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가족의 평화란 어느 한쪽이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얼마 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처음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없었다면 지금 가족의 행복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너무 고맙고 감사해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도 우리 엄마와 아빠 같은 부모님은 없다며 같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난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쟁쟁한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도 아니다. 회사를 그만둘 때 많이 속상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그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따스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 기억하자. 성격 차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도구는 ‘공감’이라는 것을 (128)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와 아픔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 많은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 부분. 바로 공감. 오늘 우리 가족을 보며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그 사랑이 고스란히 나에게 부메랑 되어 돌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