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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Jun 20. 2019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던 걸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1살 즈음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다툼이 어느 순간 잦아지더니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머리칼을 잡힌 채 거실 바닥을 끌려다니며 울부짖던 어머니, 분을 참지 못해 어머니가 휘두른 골프채, 휘두른 골프채가 부러지며 드러난 날카로운 단면에 베인 아버지의 손, 베인 상처에서 흘러나와 온 거실을 적셨던 붉은 액체까지. 속옷만 입은 채 쫓겨나신 어머니를 따라나선, 아파트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떨던 나. 그런 저를 꼭 안아주셨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저와 제 동생을 앉혀두고 아버지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엄마, 아빠 중에 선택해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겠다.”라고. 저와 제 동생은 어머니를 택했고, 그렇게 제 인생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산지 2년쯤 지난 시점에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친척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 며칠을 숨죽여 울었습니다. ‘이혼’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잘 모르면서요. 수업시간 내내 터져 나오는 울음 덕에 수시로 책상에 얼굴을 파묻어야 했습니다. 왜 그렇게 울었을까요. 언젠가는 부모님의 관계가 회복되어 예전처럼 함께 살길 소원했던 막연한 바람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때문이었을까요.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 외엔 제 심정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 어린 시절의 나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전 우주적 존재 타노스가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절반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후속편인 ‘어벤저스 : 엔드게임’은 남은 자들의 고군분투 덕에 소멸된 존재들이 살아나고 모든 일의 원흉인 타노스를 다시 무찌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엔드게임’에서 스파이더맨을 잊지 못하는 아이언맨(이하 토니)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타노스가 저지른 일을 돌이키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수집하던 과정에서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데, 돌아간 과거에서 우연히 그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이하 하워드)를 만나게 됩니다. 생전의 하워드는 청년 토니의 행동거지가 맘에 들지 않아 쌀쌀맞은 태도를 자주 보였고, 그 덕에 토니와 하워드 사이 깊은 감정의 골이 생기게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풀고 이해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았으련만, 갑작스러운 하워드의 죽음으로 제대로 된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두 사람. 토니는 하워드가 하이드라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그렇게 떠나보낸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는 토니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자리 잡습니다.     


 그런 하워드가 비슷한 연배가 되어 만나게 된 토니에게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속내를 털어놓는데, 토니는 ‘자기도 서툰 아빠라 배우면서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토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부모가 되고 나서야 듣게 된 부모의 속마음. 부모가 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 부모의 부족함. 부모가 되었기에 용서하게 된 부모의 나약함. 이제는 이해할 수 있고, 이제는 용서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대면한 토니. 그런 하워드와 이별하며 토니는 ‘최선을 다하신 거예요.’라며 아버지를 꼭 앉아줍니다.   
   

 이후 인피니티 건틀렛의 힘으로 살아난 스파이더맨(이하 피터)이 토니 앞에 나타납니다. 머나먼 우주 행성 타이탄에서 타노스와 싸우다 갑작스레 자신의 몸이 소멸된 순간부터, 다시금 살아나 닥터 스트레인지의 포털로 돌아오게 되는 순간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야기를 쏟아내는 피터. 그런 피터를 글썽이는 눈으로 목이 메어 뭐라 말도 못 한 채 그저 끌어안는 토니. 저는 이 장면 앞에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상처 받은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만 바라보며 살아온 과거를 딛고 일어나 누군가의 상처를 가슴으로 품게 되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게서 사라진 아빠’와 ‘아빠 되어진, 아빠로 살아가야 하는 나’가 끊임없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먹먹했습니다.      


  단어의 개념조차 정의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이혼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혼은 아빠와 엄마가 이룬 가정이라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세상의 절반이 사라지는 ‘타노스의 핑거스냅’ 같은 사건일 겁니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사건 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딛고 있던 세상의 절반을 잃어버린 아이. 그저 주저앉아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울고 또 울었던 아이.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현장에서 제발 멈춰 달라 소리 지르다 생각이 멎어버린, 사고를 멈추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아이.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된 지금에서야 어린 시절 멈춰버린 사고의 시간 속에 갇혀있는 저를 봅니다. 찢어진 가슴 부여잡고 무너지지 않으려 25년을 애써온 상처 가득한 아이. 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능력이 죄책감이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저를 다시금 직면해 봅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란 존재. ‘타노스의 핑거스냅’처럼 내가 딛고 있던 부모라는 세상의 절반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참 가정적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깨어진 가정이 아이들에게 주는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일까요. 어린 시절 떠나가 버린 아버지의 빈자리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나 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너무나도 든든한 세상에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돈보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아빠로서는 쉽게 결정하기 힘든 육아휴직을 결정한 것도, 결코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님에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 까지는 외벌이를 하자며 아내를 설득한 것도 모두 제 과거의 경험 덕 일 겁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황금이 있어도 1초의 시간도 살 수 없다” 
 토니 스타크, 어벤저스:엔드게임 中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늘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경제력도 없고, 인성도 형편없어 차라리 없는 게 훨씬 낫다고, 매일 봐야만 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면서요. 물론 지금은 그 친구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져 예전만큼 힘들어하진 않습니다만, 한 땐 정말 힘들어했지요.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는 것이 나에겐 복인 것일까.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덕에 지금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데. 모든 사건은 해석하기 나름이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가장 중요하기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는 복도 저주도 아닐 거라 믿고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부재를 생각할 때마다 아려오는 마음 한켠이 회복되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더 걸리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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