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할 것인가, 다시 취업을 할 것인가?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지 1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간 쉬면서, 아이를 돌보면서 많은 차원에서 다양한 고민을 했다. 창업과 취업 사이의 고민,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사이의 고민, 앱과 웹 사이의 고민, 데이터 시각화와 ML 사이의 고민,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고민 등 앞으로 어떤 사람, 어떤 개발자, 어떤 창작자가 될 것 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정리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자연스럽게 현재의 나에 대한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간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나열하고 정리 하여 몇몇 LinkedIn과 Wanted 등의 서비스 프로필에 게시해 두었다.
고맙게도 여러 헤드헌터들과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서 CTO로서 공동 창업자로서 다양한 역할로서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주었다. 사실 육아나 나이 등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로 취업보다 창업을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회사들이 내건 조건은 다시 나를 취업으로 살짝 끌어 당겼다.
선택의 기로에서 만약 다시 취업을 한다면 회사를 선택할 기준이 필요하다. 창업을 하려는 이유는 더 나은 삶과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 그 만큼의 위험 또한 감수하려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절충안, 그런 위험부담을 덜어 주면서도 좀 더 나의 삶을 누릴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들의 제안에 응답을 해주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일정에 치여 병원도, 은행도, 관공서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생긴다. 처리해야 하는 사적인 일을 며칠씩 몇 주씩 미루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음으로 일로 소모된 자아를 채우고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다. 아직 두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아이가 아프거나 무언가 일이 있을 때 아이를 위해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무작정 사생활을 우선순위에 두고 내 멋대로 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먼저 처리 할 수 있는 주도권이 내게 있었으면 한다.
외부의 요인으로 내부의 일정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가?
개인들의 삶을 중요시 하는 문화인가?
구체적으로는 필요 시 자유로운 연차의 행사와 유연근무와 원격근무가 가능한가?
첫번째 조건이 현실에 대한 조건이라면 두번째는 미래를 위한 조건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하는 개발이라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은퇴 없이 가능하다면 평생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정년을 둔다. 심지어는 그 정년을 보장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채용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엔지니어로서 재미있는 기술들을 계속해서 학습하고 즐기겠지만, 결국 채용의 주도권은 내가 아닌 상대방인, 회사에게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도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창업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채용이 되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담보가 있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담보는 연봉이다. 연봉이 충분한가?
회사가 성공 했을 때 구성원들도 함께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스톡옵션이 주어지는가?
이 후 창업을 한다면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가?
세번째 부터는 구체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조건들이다. 내가 갖고 있는 어떤 부분들을 조직에서 원하고 그 부분이 내 지향점과 부합하는가? 지난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적으로는 기계에 가까운 백엔드 보다는 사람에 가까운 프론트 엔드/UI/UX와 데이터 시각화와 분석으로 커리어 방향을 잡고 있다. 방향의 중심을 잡고 있을 뿐이지 다른 스택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술 외적으로 4명 단위의 규모가 작은 파트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하면서 함께 서로의 장단점을 이야기 하며 체계를 잡아 나가고 불필요한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 시키는 등 팀과 프로세스를 체계화 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내 특성을 원하는 팀이라면 가장 좋을 것이다.
나의 어떤 개발 스킬을 필요로 하는가?
팀이나 파트 운영은 어떤 체계를 갖고 있고, 함께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팀인가?
개발 프로세스 개선에 의지가 있는 조직인가?
과업이 주어지면 책임지고 마일스톤을 달성하기 위해 정신력과 체력을 소진하여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개입하여 개인의 생각만으로 진행 방향을 전환하고 성과를 독식하는 등 권한을 가로채는 행위를 한다면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신력의 소모가 급격히 증가하고 의욕이 저하 된다. 또 일을 진행하면서 이슈가 있어 결정이 필요 할 때 마다 누군가의 허락을 득해야 한다면 그 만큼의 지연도 발생한다. 이 일을 나의 것이라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한 충분한 권한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업무지시를 받아 일 하는 문화인가? 스스로 일 하는 문화인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회사라는 조직의 특성상 의견의 충돌은 발생 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중요하게 작용 하는 것이 구성원 간의 인식의 차이다. 구성원들이 회사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비전과 가치관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 만큼 다툼의 폭도 넓어진다. 필요한 정보를 구성원들에게 전파하고 서로의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갈등과 그에 따른 업무 스트레스의 감소를 위해 중요하다. 또한, 영문도 모른 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
추구하는 가치관을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한 어떤 장치들이 있는가?
실제 일을 하기 위해서 아이템이 동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최상이다. 개발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 아이템이 나의 흥미와 다르다 하더라도 일을 즐겁게 하는데는 사실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 아이템 자체가 나의 생활에 직접 관련되어 나와 내 주변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킨다면 그 만한 동기 부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수익을 보장하는 아이템이지만 어떤 생태계를 방해하고 교란시키는 것을 수익 모델로 하고 있다면 나와는 맞지 않는다.
개발 아이템이 나에게 어떤 흥미를 일으켜 주는가?
비즈니스 모델이 도덕적인가?
다 적고 보니 '저 조건들을 다 충족 시킬 수 있는 회사를 찾을 수는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아마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이 조건들을 다 만족하는 회사를 찾자!' 보다는, 내가 창업을 하지 않고 취직을 한다면 어떤 부분(나의 경우에는 첫번째, 두번째)을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봐야 할지에 대한 생각의 정리다. 나아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각자 회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지, 면접에 가게 된다면 어떤 것을 기준으로 회사에 역면접을 보고 질문 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