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有終)의 미(美)라는 말이 있다. 끝이 좋아야 다시 편히 만날 수 있다. 재회(再會)라는 말의 어감을 다시금 되씹어보면 나도 모르는 이유 모를 ‘심쿵’함이 툭하고 터진다. 반발할 수 없다. 이처럼 바라던 바라지 않던, 우리는 새로운 만남보다 헤어짐에 있어 늘 그러하듯… 새로이 서툴다. 헤어질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라고 푸념하지만 만남 또한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걸 떠올려보면 준비되지 않았음은 한낮 변명에 불과하다. 언제라도 만남이 있을 수 있고, 또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다. 사랑의 인연이 그렇고, 생명의 탄생과 죽음 또한 준비의 시간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음은 그 많은 것은 대변한다. ‘잘’ 헤어지기 위함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 속에서 후회 없는 관계가 전제되어야 함을 이렇게 교육받는 느낌이다.
헤어졌던 누군가와 다시 만날 때 고개를 외면한 적을 떠올려보자. 그 이유를 꺼내보라. 무엇이었든 간에 재회의 순간을 염두하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그 사람과의 헤어짐에 내뱉었던 무관심 전부인 막말이 이유일 수 있고, 여러 예비 거래처 중에 탈락된 업체 직원이 된 내가, 전화를 미처 받지 벌어진 해프닝이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다. 흡사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먼저 가신 부모와의 재회는 어떤가? 애써 외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이 뭐 그리 숨길 것이 많은 건지……. 사랑도, 사람도, 그리고 인연의 연(然) 또한 그리 처량하기 그지없다. 끝은 그렇듯 슬프다.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세상이다. 불과 몇 명만 거치면 그 누구도 친구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다. “어, OOO의 페친이셨어요?” SNS는 늘 나에게 묻고, 나도 그에게 또 심심찮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간혹, 불미스러운 관계였던 친구의 친구를 만날라치면 속이 뜨끔하기도 하다. 간혹, 친구와의 헤어질 시점을 회상하며 ‘좀 더 좋게 헤어질걸…’이라며 후회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면 때는 늘 늦다. SNS가 있기에 만남보다 헤어짐의 미학이 더 요구되기는 할지라도 때는 이미 늘 그렇듯 늦기 일쑤다.
반대로 뒤집어 보자. 이 세상이 반가운 것은 늘 새로운 것이었나? 첫인상의 멋스러움이 나의 이별을 치유해줬는지를 되새겨본다면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세상이 나는 반갑다. 웃을 수밖에 없는 환희(歡喜)지만 나는 그 어떤 첫인상보다 그녀의 ‘뒷’ 모습이 하염없이 반갑다. 헤어짐의 아련함에 발길이 떼지 질 않고, 그 뒷모습만큼 애틋함이 새록새록하다. 헤어짐에 후회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당신에게 전이된다. 그렇듯 같이 커가는 세상이고 싶다.
‘욕심(欲心)’. 당신을 잘 이해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지만 늘 옆에 있다. 보이지도 않지만 그림자보다 더 잘 따라다닌다. 엄마 잃은 고아가 젖 달라며 징징대듯 욕심은 그렇게 나의 고아(孤兒)가 된다. 욕심은 나를 만나듯, 당신의 마음을 느끼고, 당신은 저 살기 위함의 이유가 된다. 모두가 욕심으로 시작돼 번민과 외로움으로 하나가 된다. 참으로 기구(崎嶇)하고 힘들다.
힘들지 말자. 욕심 없이 이별할 줄 아는 나를 만들자. 헤어질 때 슬픔도 부리지 않을 만큼 호기를 부리고, 다독거림이 멋쩍을 만큼 당당해 보자. 그것이 쉽지는 않겠으나 욕심을 버린 만큼 배우는 그 무엇이 있지 않겠는가. 사람의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을. 세상 이치는 뿌린 씨앗이 터 오르는 만큼인 것을……. 다시 또 재회의 심쿵이 머지않음을 그렇게 한 시절 또다시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