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행사

제주 두달살이 2

by 운고

퇴직 일 년 차는 여전히 새벽에 눈을 뜨고 출근 루틴에 반응한다. 그리고는 느긋해도 되는 아침이라는 자각이 드는 순간 몇 겹의 행복감을 영접한다. 무엇보다 느슨한 아침이 퇴직의 가장 큰 기쁨이지 싶다. 넉넉한 시간을 갈아 넣어 건강하고 풍성하게 차린 브런치를 앞에 두고 일정을 살핀다. 오늘은 제주 이틀째, 숙소 근처 절물 휴양림을 걷는다.



절물 오름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다. 거리는 짧은데 나름 산이라고 허세를 부리는가 싶게 경사가 꽤 가파르다. 동행의 안위를 살피려 뒤를 돌아보니 웬걸 눈물을 훔친다. 멋진 풍광을 보니 남편 생각이 난단다. 순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불과 두 달 전에 남편을 떠나보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생사를 달리하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죽음은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꾸는 삶의 여정에서 뛰어내려 과거의 기억이 되는 일이다. 지난 역에서 내렸던 승객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기차는 무심히 달리고 누군가는 오르고 누군가는 내린다. 나는 죽음이 이러하기를 바란다. 그 누군가가 나의 가족이나 이웃이라면 무심해지기 쉽지 않겠지만 순리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절과 물이 있어 절물휴양림이라 명명했다는 해설사의 설명에도 죽음을 놓아주지 못하고 허우적대다 이어지는 동식물의 식생 등 유익한 이야기를 다 놓쳤다.


생각이 이끈 발길인지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세월호 기억관'을 만났다. '기억하자 0416' 슬로건을 내 걸고 낼모레 기억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 제주에서 굳이 기억관을 운영할까 궁금했는데 그들의 목적지가 제주였다는 답을 주셨다. 부산한 손길들 사이에 고인들의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왔다. 4월 태생인 고인들의 면면들이 담겨있었다. 아찔하고 아득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제삿날을 언제로 해야 할지 몰라서 생일을 기념한다는 말씀에 착안해 매월 생일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노란 리본을 주셨지만 사양했다. 그날 그 아픔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애써 눌러 둔 기억의 부활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부모님 중에서도 기억관 전시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내 사진이 성장을 멈춘 모습으로 11년 동안이나 어느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면 나는 행복할까, 생각이 복잡했다. 무엇을 위해 이들은 아직도 전국 곳곳에 사진을 걸어야 하는 걸까. 사건의 원인 규명과 추모는 조금 다른 의미라는 생각이다. 남은 자의 싸움은 남은 자들끼리 당당하게 하고 이들은 훨훨 날아가게 놓아주었으면.


소풍처럼 다녀갔으려니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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