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의사의 자기고백
Do
No
Harm
해치지 마라......
어떤 심리학 연구 결과에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가장 믿을 만한 경로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성공적인 수술로 많은 환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반면 끔찍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신경외과 의사의 인생에는 어쩔 수 없이 사이사이에 깊은 절망의 마침표들이 찍히게 된다.
이성적인 환자라면 외과 의사에게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내 동의를 구하는 이런 수술을 얼마나 많이 해 보았느냐고. 그러나 내 경험으로 이런 환자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의 환자는 나를 담당하는 외과 의사가 수준 미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해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의사를 신뢰하는 쉬운 방법을 택한다. 나를 수술하는 의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것이다.
"아마도 2~3개월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는 또 그렇지. 죽음이라는 결과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잖아. 빠른 죽음이 느린 죽음보다 오히려 더 나을 때도 있어."
온전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다면 과연 수술로 목숨만 살려 놓는 것이 그 환자를 위한 길인지 의문이 점점 커진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삶을 살 바에는 평화롭게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째서 삶에 그토록 간절히 매달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텐데. 희망 없는 삶은 가뭇없이 힘든 법이지만 생애 끝에서는 희망이 너무도 쉽게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데.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은 점차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내 얼굴을 나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요소를 잃게 되면서 얼굴의 곡선이 닳아 없어져 두개골의 윤곽만 남는 것이다. 수련의로 일할 때 이른 시간에 불려 가 길고 텅 빈 병원 복도에서 사망을 확인하곤 했던 비쩍 마른 노인들 얼굴이 그랬다. 그들의 얼굴은 다 똑같았다. 죽음에 가까운 만인의 얼굴, 기독교 교회의 장례 미술에서 나올 법한 말라비틀어진 얼굴이었다.
돌아가실 무렵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척해지고 앙상해졌다.
'B 교수님은 정말로 엄청난 사람이지만, 예전 레지던트들이 그분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세요? 도살자라고 불렀어요. 도살자! 어려운 수술을 하면서 자기 시술을 연마하는 동안 너무도 많은 환자를 버려놨기 때문이죠. 그 환자들은 아직도 끔찍한 합병증에 시달리거든요. 그분은 그다지 괴로워하지 않는 것 같지만."
레지던트가 말했다. 신경외과에 관한 아픈 진실 가운데 하나는, 정말로 어려운 수술을 잘하게 되는 유일한 조건이란 수술하면서 실수를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평생의 상처를 입은 환자를 내 뒤에 줄줄이 남긴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를 계속하려면 약간은 사이코패스이거나, 적어도 상당히 두꺼운 낯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착한 의사라면 아마 진작 포기하고 대자연이 갈 길을 정하도록 둔 채 더 간단한 수술만 고수할 것이다. 정말 착했던 나의 옛 상사도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어차피 환자가 해를 입을 거라면 나 대신 신이 하도록 두겠어."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환자. 신경외과 의사에게만 주어지는 유일무이한 경험이자 거의 모든 신경외과 의사가 겪는 익숙한 경험이다. 다른 외과 전공의들의 환자는 대체로 죽거나 회복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몇 달 동안 병동에서 목숨을 부지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을 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경외과 의사들의 느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불쌍한 남자는 지금도 여전히 혼수상태다.
서문에서 그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초연함과 연민 사이에서, 그리고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외과 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것이다. 뇌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고 내 실패담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 책으로 의사와 환자가 만날 때 서로가 느끼는 인간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이 책을 집필한 소회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무서웠고 끔찍했고 우울했다. 실패한 수술로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유령인간이 된 환자들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아 화가 났고, 이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제대로 된 의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의견에 반론을 달 수 없어 또 화가 났다. 나를 살려 주리라 믿었던 의사가 후배나 제자의 수술 경험 폭을 넓히고자 그들에게 나를 내어 놓다면, 그리하여 그 수술을 끝으로 얇은 끈처럼 가늘고 긴 목숨을 헐떡이게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분노가 치미는 일이다. 나 또한 신입교사로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가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의 경험으로 남은 교직 인생을 꾸려냈었다. 그럼에도 신경줄 한 가닥으로 삶의 질을 판가름하는 의사에게는 시행착오 자체가 어불성설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기적인 생각을 해 본다. 인간적인 어려움을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고 해도 평생 웅크린 채 느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사 또한 사람을 키우는 일이기에 시행착오는 위험하다. 이것이 의사나 교사에게 인간적인 이해 너머 특별한 소명의식을 기대하고 바라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송과체종, 동맥류, 현관모세포종, 삼차신경통, 수막종, 맥락총유두종, 뇌실막세포종, 아교모세포종, 경색, 수모세포종, 뇌하수체선종, 축농, 무동무언증, 광시증, 성상세포종, 희소돌기아교세포종, 무감각통증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 이 모든 단어들이 인간을 괴롭히는 병명이라니 참. 이름의 희소성만큼이나 그 치료 또한 남다른 접근이어야 할 것만 같다. 머리를 열고 그 안의 혈관과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병원만을 제거하는 일,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 모든 외과 의사는 마음 한구석에 공동묘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이다. 누구라도 '멋진 삶이었어.'라는 말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멋진 삶 괜찮은 죽음을 기도하고 소망한다. 나의 삶이 이 책의 어느 예시와도 연관되지 않는 참 괜찮은 죽음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작가도 이야기한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외과 수술은 여전히 위험하다. 결국 수술은 의사의 손끝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사의 솜씨와 경험이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에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도 의사의 역할이다. 병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고 아예 수술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후의 환자 상태는 운에 맡겨야 한다. 경험이 늘어날수록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운칠기삼, 요즘은 운칠기삼 정도가 아니라 운구 기일 같다. 살아내는 것 자체가 내 운이 좋았던 거다.
교직을 내려놓겠다는 생각을 하며
35년여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뱉어내는 한마디도 '나 진짜 운이 좋았구나!'이다. 최선을 다해 매진한 현장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울퉁불퉁한 일들이 적잖았다. 내 경험이 미숙해서 가르침이 왜곡되기도 하고 내 판단이 서툴러서 관계가 뒤틀리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난감한 상황들이었는데 그 순간들을 무사히 이겨내고 이 긴 시간을 선생님으로 살아남았다. 운 좋게도 학부모는 인내심을 발휘해 주었고 학생들은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참 괜찮은 죽음'처럼 교육 현장의 '참 괜찮은 배움'에 일조했을까. 부끄러움이 크다. 고해성사를 하자면 책 한 권이 부족할 것이다. 의사가 서툰 의술로 죄를 짓는다면 교사는 입으로 짓는 죄가 많다. 가르침을 위해 날린 화살들이 배움의 과녁을 벗어나면 그건 독이 된다. 힘을 북돋는다고 던진 응원이 칼이 되어 날아가기도 했을 것이고 잘못을 바로잡는다며 건넨 말이 그들의 가슴을 난도질했을 수 있다. 간혹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아이들의 입에서 나의 언어들이 복기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들로 힘을 얻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나의 말을 상처로 껴안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거워지기도 한다. 말에 베인 상처도 매스에 잘린 신경줄만큼이나 온몸을 웅크리게 하고 삶을 나락으로 빠지게 할 수 있음을 안다. 행여라도 그런 학생은 없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없다.
이 책은 내게 건강한 삶의 소중함과 더불어 지난 35년간의 교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부족한 교사인 내가 운 좋게도 괜찮은 선생님인 양 35년을 근무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남은 인생은 운에 가려진 나의 지난 잘못 들을 반추하며 나로 인해 상처받는 이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살아야겠다. 내 말과 행동에 상처받은 이들의 가슴에 내 기도가 닿아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바람으로 가져본다.
살아내고 보니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는 날들이었다. 매 순간이 연습 아닌 실전, '시행착오'는 안 되는 거였다. 한순간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은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신경줄처럼 얽히는 인생사, 내가 쉬이 살면 그 누군가가 그만큼 더 힘겨웠다.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해 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는, 이 단순한 문장이 이제야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Do
No
Harm
해치지 마라......
'해치지 않는 삶'을 가슴에 새기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