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김동섭/미래의 창
10시간을 날아 LAX인터내셔널공항에 내렸다. 익숙한 풍경, 몸체만 한 캐리어를 이끌고 입국수속을 위한 긴 줄에 서있는 사람들, 그들 속에 한 점으로 서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구경한다. 저 멀리 제복으로 성역을 표시하는 입국심사관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든 아저씨, 어쩌면 나와 같은 영어공포증일지도. 어느새 내 차례, 새가슴 부들부들 여권을 내미니 며칠 묵을 거냐, 왜 왔느냐, 묵을 곳은 어디냐, 묻는다. 어찌어찌 옹알거려 통과 사인을 받았다. 대견 대견, 그동안 영어에 돈 쓴 것이 마냥 헛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듣고 답을 했으니 ㅋ.
현재 영어를 법적인 공용어로 지정한 주는 30개에 이른다. 다시 말해 20개 주는 영어를 공용어로 헌법에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이 연방 정부 차원에서 공용어를 지정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에는 많은 민족과 언어들이 공존하고 있으므로,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62쪽>
서인도 제도를 발견하고 플로리다에 첫발을 내디딘 스페인,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 상륙한 프랑스 그리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주에 닻을 내린 영국의 청교도들, 이들은 자신들의 상륙한 곳을 전진기지로 삼아 내륙으로 진출하며 식민지를 건설했다. 플로리다에 상륙한 스페인은 서북쪽으로 진출했고, 캐나다 동부에 정학한 프랑스인들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미국 중부 지방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동부 해안 지방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서부로 식민지를 확장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므로 이 세나라는 미국의 어느 한 지점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부 지방의 루이지애나를 영유하고 있던 프랑스는 영국이 식민지를 서부로 활 장한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유럽에서 패권을 놓고 자주 충돌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북미 대륙에서도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그 치열한 패권 싸움의 결과는 오늘 미국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영어인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략-
사실 미국이 이만큼 부상하게 된 데는 막강한 국력 이외에도 다른 행운도 있었다. 미국은 대영제국이 확보했던 영어의 지배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영국이 하차한 기차에 무임승차하여 대영제국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인수받은 것이다.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8쪽>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아닌 프랑스가 승리했더라면 나의 배움의 여정은 프랑스어로 채워졌으리라. 색다른 인종과 곳곳의 영어 안내판들, 알아들을 수 없는 안내 방송, 긴 여정 끝에 드디어 LA에 안착!
효도 여행다운 일정이 이어진다. 이끄는 대로 가고 차려주는 대로 먹고 신경 쓸 일이라곤 없는 편안한 여행이다. 비서가 셋이니 내 수족으로 굳이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자식 대동한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사위까지 보태지니 오손도손 앞서 걷는 세 자식들의 뒷모습만으로도 든든하고 오져서 자꾸 웃음이 난다. 그러자니 어디를 가도 다 좋고 무엇을 먹어도 다 맛나다.
그러나 마냥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 눈높이를 위해 그들의 관심사가 배제될까 걱정이고 내 체력에 맞추느라 하고 싶은 일을 줄이고 있지는 않은지 눈치도 보인다. 무엇보다 직장의 중책들을 내려놓고 나와서 빈자리에 탈이라도 날까 불안하다. 다 큰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더니 맞는 말이다. 내 자식을 넘어 나라의 봉을 받는 나라자식인지라 품에 안고 있기가 과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감사하다. 언제 다시 이런 일이 가능하겠나.
고향 방문에 신이 난 사위다. KOREAN-AMERICAN으로 LA에서 20여 년을 산 내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LACMA 미술관, 할리우드 거리, 더 게티, UCLA대학, 그리피스 천문대, 동선을 고려한 투어와 현지인 맛집 코스로 오리지널 피자, 팬케익 정식, 중동 음식 등을 섭렵했다. 여행을 다닌다기보다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듯, 먹고 노는 일이 느긋하고 늘 다니던 길 찾아가듯 자연스럽다. 여행에서 현지인 찬스는 맛깔난 MSG 아니던가. 여행을 몇 배로 풍성하게 한다. 전라도 사투리에 어리둥절하던 그를 놀리곤 했는데 전세 역전이다. 원어민 버터 발음과 정면승부하는 그의 영어에 감동, 그의 유창한 발음에 빠져 들었다. 말의 힘이란 게 참 크다.
현지인을 대동하고 LA를 활보하고 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현지인 답변이 척척 날아든다. 책으로 만난 정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생함이다. 미국의 초중고대 교육과정을 이수한 미국인 사고로 미국을 말한다. 이 또한 생경한 경험이다. 가장 강렬했던 첫인상은 잔잔한 스카이라인이었다. 저 멀리 언덕까지 이어지는 단층 건물들이 숲 사이에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달리면서 만나는 집들은 하나같이 내가 살고 싶은, 자그마한 마당을 가진 소박한 주택이었다. 내가 생각한 LA는 서울의 고층빌딩이 초라해 보일 정도의 거대 빌딩 도시를 연상했었던 듯하다. 누군가를 대면하지도 맛난 것을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공항에서 도시로 접어드는 길목에서부터 이 도시가 좋아져 버렸다. 사막도시 LA 사람들은 식수가 모자라 저 멀리서 물을 끌어온다고 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조건에서도 이런 평화로움이 깃드는구나.
티아이너스(Forty-miners,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달려갔다. - 중략-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인 1820년경 로스앤젤레스는 약 650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마을이었다. 이 도시가 오늘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한 배경에서는 금광(1849년), 유전(1892년)의 발견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인구는 1880년 1만명에서 1932년까지 120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로스앤젤레스 근방의 수원으로는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시 당국은 544KM의 수로를 건설해 물 문제를 해결했다. 1905년에서 1913년까지 지어진 이 수로는 544킬로미터 떨어진 시에라네바다산맥 기슭의 오언스 강 계곡에서 물을 끌어온다.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284쪽>
우리의 반응에 만족감을 드러내는 사위, LA는 위대한 도시란다. 그의 자부심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한편 신은 왜 이다지 불공평한 세상을 설계하셨을까 원망의 마음도 깃들었다. 우리의 스카이라인은 하늘을 찌르는데 이 땅은 대지도 하늘도 모두 활짝 열려 있음이.... 그래도 우리에겐 한강이 있으니
LA의 밤이 어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