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하는 인디언이야기/찰스 A 이스트먼 / 책 읽는 귀족
이번 여행은 나의 역할이 미미하다. 신뢰가 담보된 미쿡인 사위와 검색의 달인인 딸, 그리고 무심한 구경꾼처럼 굴지만 여행의 한 끗을 아는 아들이 합심하여 준비하고 있어 여정에 내 의견을 덧붙이는 일은 사족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시선은 한없이 자유로웠다. 미국의 역사를 기웃거리고 서부 개척사를 뒤적였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머물러 있던 나의 지식들이 좌충우돌 부딪히고 깨지며 미국을 새롭게 만나는 시간, 아득한 미국이었다고 해야 하나, 서부영화 속 멋짐 폭발의 총잡이가 내가 연상하는 미국이었던 모양이다. 거친 황야를 누비며 목숨을 걸고 이룩해 낸 신대륙 개척사, 참으로 근사하고 멋져 보였다. 그런데 이 기억이 눈앞의 활자들을 괴롭혔다. 서부 개척사는 포장이고 실은 원주민 땅 뺏기였고, 사람을 죽여 머리 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으로 묘사되던 원주민은 과장과 허구였다. 세상사 음양이 있고 명암이 다르다는 것쯤은 안다고 여겼는데 웬걸 긴 시간을 승자의 주입된 시선에 머물러 있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들의 땅, 그랜드 캐니언을 2박 3일 현지 투어로 다녀왔다. 욕심은 개별 방문으로 캐니언 깊숙이 들어가는 트레일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랜드 캐니언 한 곳만 해도 제주도 2배 크기이고 가고 싶은 캐니언들이 유타주, 네바다주, 조지아주 등 넓게 분포되어 운전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소심한 투어에 안착했다. 다행히 장점도 많았다. 다른 이들의 여행을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고 가이드의 무한 설명으로 책과는 다른 현장성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2박 3일의 일정에는 자이언 캐니언, 브라이스캐년, 홀슈스밴드, 앤탈로프, 모뉴먼트, 그리고 더 그랜드 캐년이 있었다. 이 일정들 사이에 나를 설레게 하는 한 꼭지는 나바호자치국 방문이었다. 날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바람이 전하는 인디언 이야기>로 그들을 만나고 왔던 터라 그들의 땅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한껏 고무되었다.
캐니언 트래킹은 그랜드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과 같이 거대한 협곡을 따라 걷는 트레킹으로, 난이도가 다양하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코스로는 그랜드 캐니언의 카이밥 트레일(카이밥 트레일), 사우스 카이밥 트레일(사우스 카이밥 트레일), 자이언 캐니언의 앤젤스 랜딩 트레일(앤젤스 랜딩 트레일), 캐년 오버룩 트레일(캐년 오버룩 트레일), 더 내로우 트레일(더 내로우 트레일) 등이 있습니다. -구글 AI 퍼옴-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LA에서 라스베이거스를 4시간여 달리는데 오는 내내 황량한 벌판과 나무 한그루 심어지지 않은 헐벗은 산등성이가 이어졌다. 그리고 투어의 첫 여정인 자이언트 캐년까지의 두 시간, 사막 사이에 뚝심 있게 건설된 도로와 생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사막, 인간과 자연의 황량 배틀을 뚫고 달렸다.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3시간 30분 여정을 먼 거리로 인식하는 사람에게 6시간을 넘어서는 빈틈없는 사막은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뒤늦게 지도를 확인하니 몇 개의 초록 섬을 제외하면 하얀 사막이다. 그나마의 초록섬은 사막을 관통해 흐르는 콜로라도 강줄기가 견인하는 것이리라.
변변한 나무 한그루, 한가로이 노니는 동물 한 마리가 없는데도 이 땅은, 아름다웠다. 동양의 안락한 사계절 속에서 살아온 이의 한담처럼 느낄 수 있으나 단지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감성을 넘어 이 거친 땅이 가진 위대한 힘에 압도당하는 느낌, 강렬하고 장엄했다. 책 속에서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풍광들을 직접 눈앞에 마주하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떤 이야기를 가졌기에 이런 모습으로 여기 있는 거지, 바다가 융기하고 지층이 깎이고 퇴적과 침식작용이 더해졌다는 책 속의 이런저런 정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냥 말이 안 되는 신기루처럼 말이 안 되는 풍광이 펼쳐졌다. 미. 쳤. 다!
신비롭다, 그러나 척박하다. 입으로는 탄성을 지르면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생명이 살 수 있나?
나바호 자치국은 미국 내 독립국으로 인정되어 독자적인 사법과 행정, 입법 쳬계를 갖추고 있다. 남한의 80% 정도의 면적에 30만의 인구를 가졌다. 오천의 인구가 바득바득 살아가는 한반도 넓이에 30만, 2박 3일을 돌아다니녔지만 원주민은 물론 원주민 마을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숙박지였던 갤럽과 페이지는 원주민 집성촌이라기보다는 관광특화구역 느낌이어서 버스 이동 중에 간간이 보였던 서너 채의 집들로 그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여자는 관광지의 식당이나 카지노에서 일하고 남자들은 수렵의 의미가 퇴색한 후론 일자리를 못 찾아 백수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달리면서 본 어는 주택 마당의 많은 승용차들이 남자들의 일과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한다. 여자는 일 나가고 남자들은 아침부터 모여 술과 마약을 즐기다 보니 범죄율도 높고 빈곤층이 심화되고 있단다. 뭐 해 먹고사나, 황량한 이 땅에서 생산활동이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역시 이 땅은 그들이 믿는 '위대한 영'의 영역이지 인간의 땅은 아니지 싶다. 인간을 한없이 무력하게 하는 땅, 원주민 가문의 사유 재산이라는 앤탈로프 캐년처럼 신의 위대한 역사가 경제의 동력이 되고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관광 산업이 아니었다면 나바호 네이션의 원주민의 삶은 얼마나 더 척박했을까.
미국에는 326개의 원주민 보호구역이 존재하는데 자신들의 근거지에 보호구역을 허가받은 곳은 여기 나바호 자치국이 유일하며 대개는 서부로 향하는 백인들에 밀려 삶을 연명해야 하는 척박한 땅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목축업이나 광산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최근에는 카지노 운영권이 허가되어 삶의 표피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 민족의 독립 투쟁의 DNA 때문인가, 원주민의 잔혹시가 귀에 쏙쏙 박히며 남일 같지가 않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아주 평화롭고 유순해서, 전하께 맹세하오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나은 백성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며, 말은 부드럽고 상냥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벌거벗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훌륭합니다." -나를 운드니에 묻어다오 16쪽-
오늘날 피쿼트 족은 어이에 있는가? 내러갠싯족, 모히칸족, 포카노켓족, 그 밖에도 수없이 많던 강대한 부족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여름의 태양을 만난 눈처럼 그들은 모두 백인의 억압과 탐욕 앞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면 어번엔 우리 차례인가? 위대한 정령이 주신 정든 땅과 집 그리고 조상의 무덤을 그냥 포기해야 할 것인가? 싸워보지도 않고서 소중하고 성스러운 것들을 포기하고 몰살당해야 하겠는가? 여러분도 나와 똑같이 외치리라.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쇼니족의 테쿰세 -나를 운드니에 묻어다오 15쪽-
어릴 적 나는 탈무드를 즐겨 읽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자주 탈무드를 들려주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등장 이후 패배자의 역사를 써 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결국 살아남았고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예절 바르고 훌륭한 그들의 삶에 대한 자세, 특히 고난을 마주하는 진중함이 지금을 일궈냈다. 처음엔 그들의 잔혹사에 발목이 잡혔지만 내 가 닿은 곳은 그들의 삶의 태도였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 만난 추장들의 언어는 진솔해서 깊은 울림을 준다. 탈무드를 넘어서는 내적 울림, 올곧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나, 품 넓은 그랜드 캐년처럼 근사하게 나이 들어야겠다.
아메리카 원주민, 그들을 알게 해 준 멋진 책들
그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미국여행
아마도 한동안 더, 원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나의 시간을 쓰게 될 것 같다.
참 멋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알게 되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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