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Mission) 샌 가브리엘

미션을 따라가는 캘리포니아 이야기 / 박진선 정영술 / 평민사

by 운고


'미션을 따라가는 캘리포니아 이야기' 미국 책 보따리에 섞여있었던 모양인데 반납일에서야 그 존재를 발견했다. 그냥 반납하기엔 미안해서 머리글 정도 읽고 반납하려는데 웬걸, 머리글 초입부터 끌어당겼다. 정중하게 재대출하여 진심으로 마주했다. 교회(church), 성당(cathedral)이 아닌 미션(Mission)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이야기, 미션(Mission)은 임무, 사명, 과제 등으로 풀이될 수 있다.


미션을 통해 초기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스페인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의 발자취와 그 당시의 캘리포니아를 만날 수 있었다. 수도사들은 캘리포니아 가장 남쪽의 샌디에이고부터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소노마까지 900km 거리를 대략 21 등분하여 21개의 미션을 세웠으며, 이 미션들이 있던 지역을 바탕으로 오늘날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들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본문 9쪽 -


캘리포니아의 미션을 간단히 정의하자면 유럽의 성당과 지매가 살던 성채의 개념이 혼합된 형태이다. 미션은 초기 스페인에서 파견된 프란체스칸 신부들의 신에 대한 경배, 종교적 열정과 고난, 제국주의 국가들의 야망과 다툼, 그리고 토속 인디언과의 문명적, 인종적 충돌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는 캘리포니아의 역사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16세기 유럽국가들이 캘리포니아를 탐사하고 세력을 넓혀가던 시절부터 오늘날 캘리포니아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51쪽-


1769년 스페인 카를로스 국왕은 군대와 종교 지도자로 구성된 팀을 샌디에이고로 보낸다. 그들의 목적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가톨릭을 전파하고 더불어 스페인 방식대로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삶의 방식을 바꿔주겠다는 의식 자체가 폭력적으로 다가왔지만 그래도 영국의 식민지 개척사에 비하면 인간적인 접근으로 여겨졌다. 영국인들은 "너희와 함께 할 수 없어!"인데 스페인은 그나마 "우리의 방식으로 살아보자."이니 타협점이 있으리라 싶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이들은 개종을 빌미로 미션에 원주민을 가두고 원주민의 전통 생활 방식을 모두 포기하도록 했으며,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이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농업과 축산 등의 산업 활동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무역으로 경제력을 확장했다. 노예 같은 생활을 못이기고 도망가는 원주민들이 많았지만 가혹한 형별이 가해졌다. 무엇보다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 대륙으로부터 가져온 천연두, 결핵 같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지라 미션 내에 살고 있던 원주민뿐 아니라 미션 밖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원주민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현상만 다를 뿐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은 어느 쪽이나 진흙탕이었다.


이 책에서 읽은 부분 중, 원주민은 옷은 최소화해서 입지만 정갈하게 매일 씻는 문화를 가졌는데 치장 많은 옷에 몸을 감추고 잘 씻지 않은 유럽인들의 생활 습관이 감염의 위험도를 높여 많은 이가 희생되었다는 부분에서 웃으면 안 되는데 피식 코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제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 덜떨어진 폭군이 품격 있는 자연인을 참 교육시킨다고 달려든 꼴이랄까.


1834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 정부가 스페인의 잔재를 없앤다는 취지에서 미션을 세속화시키면서 인디언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미션의 땅도 원주민에게 돌려주도록 했지만 힘없는 원주민은 대도시로 떠나거나 척막한 사막으로 되돌아갔다. 대도시든 고향 사막이든 그 어디라도 그들에겐 전쟁터였을 지니... 품격 있는 자연인의 삶은 매 순간 나락을 향해 나아갔다.



아이들의 일정 속에는 없었다. '미션 방문' 의지를 내비치니 당황스러운 반응,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는. 타이틀이 '효도여행'이다 보니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 LA 사흘째 되던 날 첫 일정으로 '미션 샌 가브리엘'을 찾았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도 훨씬 특이한 외관이었다. 두툼한 외벽이 어딘가 낯익다 싶었는데 이 미션을 디자인한 신부 안토니오 그루자도가 자신의 고향인 코르도바 성당을 모델로 지었다고 한다. 스페인 여행에서 만났던 코르도바 성당의 흔적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내부는 오밀조밀 미로처럼 화단과 건물들이 꾸며져 있다. 무엇보다 정갈하고 온화했으며 고요했다. 박물관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지만 짧은 영어 탓에 10%나 이해했을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바보가 될 뻔했는데 이 책 덕에 전체적인 윤곽은 이해할 수 있어 선방했지 싶다.

1771년 샌가브리엘시가 생기기 전 이곳은 가브리엘리노-통그바라는 사냥과 공예에 재능을 가진 원주민 부족마을이었는데 신부들이 미션을 세우면서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라파엘로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오렌지 나무와 포도덩굴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주요 농업의 근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샌가브리엘 미션은 한때 캘리포니아 내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을 일구었다.

미션의 마당 한편에는 육천 명에 이르는 원주민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미션에 살던 원주민의 75%에 육박하는 숫자라고 한다. 살기 위해 들어간 건지 죽으러 들어간 건지, 가슴 저미는 사연을 안고 세상을 떠났을 그들의 영혼이 이제는 평화를 찾았기를 소망해 본다. 아린 역사를 짊어지고 있는 땅임에도 지금의 이곳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키 낮은 동네의 안온함이 단단한 외벽의 미션을 부드럽게 품어 안으니 어디에 눈을 둬도 따사롭다. 이 멋진 곳에 적어도 한 점, 내 흔적을 새기고 싶은 욕심에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카페를 찾아들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강렬한 LA의 햇살을 찾아 테라스에 앉았다. 이 땅에 찾아든 선교사들은 왜 그토록 가혹했을까, 종교는 선악과인가, 이런저런 상념들을 햇살에 내 던지며 평화로운 테라스를 즐겼다. 여행자의 이중성이랄까...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잊히고,

스페인은 종교 전파, 프랑스는 모피 무역, 그리고 영국은 부와 종교 자유를 위해 북미 대륙으로 넘어왔다. 초대하지 않은 그들이 주인 행사를 시작한 이후 진짜 주인들은 보호구역 거친 땅에 웅크린 채 오늘을 살아가는데 이 땅의 주인이 된 이들은 그들의 꿈을 이루고 하느님의 눈부신 은총아래 찬란한 내일을 펼쳐내고 있다. '미션', 하느님의 은혜로움으로 이 땅을 은혜롭게 하자는 그들의 기도가 그들에게만큼은 실현되었음을 느낀다.


알면 알수록 이야기가 많은 나라, 미국이다. 알아갈수록 좋아지는 땅,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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