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WITH YOUR HEART

Into the Wild / 숀 펜 감독 / 에밀 허쉬 주연 / 2007

by 운고




이유는 하나, 미국스러운 포스터였다. 굳이 영화 정보를 들춰보지 않아도 딱, 미국인의 미국인에 의한 미국영화였다.


15일간의 짧은 미국여정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발품과 귀동냥이 생초보에 면제부가 되었을까, 한 장의 포스터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미국이 보이고 미국이 느껴진다, 강렬하게. 다녀오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국사랑이다. LA의 파란 하늘, 시선에 자유로운 거친 젊음, 그리고 황량한 사막, 다녀온 지 석 달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눈 앞에 아른거리는 미서부의 거친 황야. <Into the Wild> , 미국을 다시 만날 생각에 클릭하는 손이 잠깐 설렌다.


영화는 1992년 4월, 알래스카 데날리 국립공원 북쪽 외딴 지역에 도착한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매직 버스’라 이름 붙인 버스에 캠프를 차리고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고독과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영화의 시작점은 꿈 같았다. 내가 꿈꾸던 방랑의 삶이 이러했음을 추억하며 대자연에 한 점으로 살아가는 고독한 젊음이 아름다워 보였다. 한순간이라도 저리 살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여정이 기한이 있는 여행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그의 행보는 도피였다. 명문대를 졸업한 우수한 재원이었던 크리스는 뒤늦게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족과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 신용카드, 신분증, 이름마저 버리고 가진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하여 자연인이 된 그는 생존 배낭 하나 덜렁매고 알래스카로 떠난다. 우연히 발견한 매직버스에서의 야생이라니.


'매직 버스'에서의 생활은 그림 같다. 설산과 계곡, 높고 푸른 하늘이 만드는 순결한 풍경과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한 그의 일상이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은 꿈꿔봤음직한 힐링 타임으로 그려진다.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도망가는 동물을 사냥하여 모닥불에 구워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자그마한 공책에 하루를 적고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음미하는 크리스의 신선놀음 같은 일상에 새로운 인연들이 온기를 더하며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그림은 따사롭기 그지없다.

진심을 다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되고, 2년 여 만에 드디어 가족에게 돌아갈 용기를 내는 주인공, 그러나 그의 바람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홍수로 인해 길이 막혀서 집을 향해 내디뎠던 걸음을 되돌려야 했고 허기를 채우려 먹은 식물이 하필 독초인 바람에 몸과 마음이 최악을 맞는다. 버스 안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는 마지막 문장을 쓴다.

"행복은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


영화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실제로 그의 시신은 사망 후 19일이 지난 뒤에 사냥꾼에게 발견되어 유가족들에게 회수되었다고 한다. 그의 여동생은 크리스의 화장된 유골이 담긴 통을 배낭에다 넣은 뒤, 함께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 해안으로 이사 갔다고 전해진다. 영화에 나온 대로 크리스는 사진과 메모를 버스 안에 많이 남겼고, 미국의 산악가이자 작가 존 크라카우어가 크리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아웃도어 관련 잡지 "아웃사이드(Outside)" 1993년 1월호에 "Death of an Innocent"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크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존 크라카우어는 이 기사를 좀 더 확장하여 1996년에 단행본으로 냈는데,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는 이때 붙은 제목이다. 영화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다.


부모의 잦은 싸움을 지켜보는 것만도 힘들었는데 졸업과 동시에 알게 된 부모의 진실, 사실혼 관계의 사생아였던 자신의 정체성. 이 정도의 혼란이면 착한 딸로 살아온 나에게도 돌파구가 필요했을 사안이다. 그러나 나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 이름까지 버리고 알래스카의 야생을 선택하는 용기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나라면 어두운 골방에서 얄궂은 운명을 서러워했으리라. 스무 살의 고독, 그 심연에 드리워진 외로움은 골방보다는 설산이 어울리긴 하다. 그림도 예쁘고 뭔가 운명과 제대로 한판 붙는 것 같은 패기도 느껴진다. 더 멋진 부분은 틈나는 대로 톨스토이를 읽고 그처럼 자신의 고독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보는 내내 침이 고였다. 20대 만이 할 수 있는 불꽃같은 삶, 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도 저리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부서져버린 그의 시간, 하늘은 왜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너무 쉬이 끝나버린 삶이 아파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크리스토퍼 역을 맡은 '에밀 허시' 배우는 영화 속에서 건장한 청년에서 죽음을 앞둔 초췌한 환자까지, 그 변화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어쩌면 그가 그 기간을 온전히 살아낸 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그에게선 고독이 선연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캘리포니아 태생의 미국배우, 영화 포스터에서 미국을 한눈에 알아본 이유가 에밀 허시가 내뿜는 미국내음이었지 싶다. 그로 인해 미국의 기억이 한 꺼풀 더 두텁고 풍성해진다. 고뇌하는 미국인, 내 안에 없던 멋진 미국인캐릭터다.

어쩌면 죽기 전에 한번 더 용기를 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가 카약을 타고 가던 콜로라도 강줄기를 바라보며 그랜드 캐니언 트래킹에 도전하고 싶다. 허망한 죽음으로 끝을 맺었기에 그의 도전은 무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삶의 이정표를 찾기 위한 자구책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예상 밖의 결과를 맞게 될지라도 도전은 그 자체로 빛나는 일,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행복은 나눌 때 가치가 있다.

나누고 공유하고 더하고 곱하며 더불어 살아야겠다. 적당히 눈도 감고. 영화를 보며 철드는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본다. 마음이 훌쩍 자란 듯하다.





크리스가 버스에서 읽은 주요 책들을 참고 삼아 적어본다.


『참회록』(Confession) / 레프 톨스토이 (Leo Tolstoy)

: 삶의 의미와 종교적, 철학적 고뇌를 다룬 책으로, 크리스의 방황과 자기 성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간 불평등』(The Inequality of Man) / 레프 톨스토이: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담은 책으로, 크리스의 사회 비판적 시각과 연결됩니다.


《월든》 (Walden) /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소로의 경험은 크리스의 '야생으로의 귀환'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철학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시베리아의 날들』(The People of the Siberian Taiga): 알래스카 원주민의 삶을 묘사한 책으로, 크리스가 알래스카로 가기 전 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스는 이 책들을 통해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며, 그의 여정은 존 크라카우어의 책 『야생 속으로』(Into the Wild)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상상은 모종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