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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pr 13. 2024

서문. 도를 따라 사는 것이 덕이다

1969년 3월 2일 오소리 강 하류에 위치한 전바오 섬에서 소련군의 ‘절름발이 중위’와 중국군의 ‘산둥꼬마’가 결투를 벌였다. 당시 소련군과 중국군은 국경 경계에 위치한 진바오 섬의 소유권을 놓고 몇 개월째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소련군에게 계속 패배하는 것에 화가 난 중국군은 산둥꼬마라는 특수부대원을 데려왔다. 산둥꼬마는 무술을 배운 군인으로 봉을 가지고 싸웠는데, 복싱 선수 출신의 절름발이 중위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절름발이 중위는 권총을 꺼내 산둥꼬마를 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중위는 꼬마에게 7발을 쐈지만 산둥꼬마는 죽지 않았다. 산둥꼬마는 무려 7발을 맞고도 당시 싸움에 참여했던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산둥꼬마는 살았지만 권총이 발사되면서 패싸움은 장갑차까지 동원되는 전투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30명이 전사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작은 무력 충돌은 더 큰 전투로 이어졌고, 중국과 소련 간에는 전쟁 분위기가 일어났다. 소련 국방장관 안드레이 그레치코는 중국의 공업 중심지에 핵무기를 떨어뜨려 보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핵전쟁도 불사하는 발언이 연일 이어지는 등 악화일로로 치닫던 양국 간의 분쟁은 1969년 10월 21일, 베이징에서 소련과 중국 간의 국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장관급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점차 해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회담을 며칠 앞둔 1969년 10월 15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가 열렸다. 모택동을 비롯한 중앙정치국원들은 소련이 회담을 열자고 해놓고 불시에 중국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여 한편으로는 핵폭탄 공격에 대비하기로 결정하였다. 10월 17일, 쑤저우의 지하 방공호에 은거하던 부주석 임표는 인민해방군에게 비상경계를 발동하고 주둔지에서 깊은 산악지대로 이동하라는 제1호 명령을 전군에 하달했다. 이 명령은 호남성 장사시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해방군 366병원에도 내려졌다.      

쾅, 쾅, 쾅.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366병원 부원장은 문을 열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당직 참모였다. 그는 전쟁 준비를 위한 명령이 하달되었다며 곧 병원 수뇌부 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회의에서 심각하게 논의된 사안은 부상병과 수많은 의료장비와 물품을 가지고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회의가 길어질 즈음 문득 부원장의 머릿속에는 장사시 외곽의 말안장 모양의 높고 큰 언덕 옆에 위치한 버려진 한 요양원 건물이 떠올랐다. 그 언덕은 동네 사람들이 마왕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부원장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모두 마왕퇴의 요양원으로 이동하는데 찬성하였다. 이튿날 새벽 366병원은 부상병과 의료물품을 싣고 마왕퇴의 요양원으로 핵폭탄을 피해 이동하였다. 

 며칠 뒤 중소 회담이 무사히 끝나고 우려했던 소련의 기습 공격은 기우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부주석 임표는 산악 지대로 피신한 부대들이 원 주둔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총참모장에게 통지할 것을 비서에게 지시하려 했다. 그때 비서실의 주임이자 임표의 아내인 섭군이 이를 말렸다.      


“최고 사령관께서는 이 명령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부대가 분산해 있어 위험이 없는데, 돌아왔다가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이 책임을 누가 질 겁니까?” - 웨난 지음, 《마왕퇴의 귀부인》     


이 한마디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민해방군은 계속 깊은 산악에 주둔하면서 방공호를 깊이 파고, 식량을 많이 비축하는 등 전쟁 준비를 계속해야 했다. 마왕퇴의 요양원에 피신한 366병원도 2년여 동안 수많은 방공호를 팠다. 

1971년 9월 13일, 임가 쿠데타를 준비하다가 발각되자,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도망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인민해방군은 즉 1급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366병원 당위원회는 둘레가 수백미터나 되는 마왕퇴의 바로 아래에 대형 동굴을 파서 전시에 부상병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 지역 사람들이 이 언덕을 마왕퇴馬王堆라고 부른 이유는 이 무덤이 당나라가 멸망하면서 장사에 세워졌던 나라인 초나라의 왕 마은과 그의 아들 마희범 부자의 무덤이라고 여겼기 때문다. 마왕퇴에서 퇴堆는 무덤을 뜻한다. 마왕퇴는 마씨 왕들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366병원 간부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그 밑에 굴을 파기로 결정하였다. 병사들이 마왕퇴 밑을 파기 시작한 지 수십일 뒤인 1972년 12월 27일 10미터쯤 팠을까, 하얗고 기름진 진흙인 백고니가 한덩어리씩 나오기 시작했다. 백고니는 다른 방공호를 팔 때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흙이었다.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즉각 보고하라는 병원 원무처장의 지시가 있었기에 병사들은 원무처장에게 이상한 백고니가 출토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굴 안에 도착한 원무처장은 드릴로 구멍을 뚫어 보라고 지시했다. 한 병사가 드릴로 구멍을 낸 뒤 뒤로 빼자, 쉬익 소리가 나며 안에서 기체가 빠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원무처장이 담배를 피려고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 순간 성냥불이 구멍에서 나온 기체와 만나자 펑 소리가 나면서 불꽃이 일어났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원무처장의 눈썹은 다 타버리고 얼굴은 빨갛게 부어 오르며 온통 물집으로 가득했다.  

“큰일 났다. 빨리 뛰어!!” 

밖으로 뛰어 나간 원무처장은 큰 소리로 외쳤다. 

“적이다! 비상 사태다! 빨리 부원장에게 보고 하라!!!!”

달려 온 부원장은 구멍에서 나오는 불꽃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십년 동안 군 생활을 했지만 이런 기이한 광경은 처음 보는지라 어찌할지 몰라서 우선 위에 보고하기로 했다. 

     

원장 : “불꽃은 어떤 모양인가”

부원장 : “파랗고 가운데는 붉은 색을 띠었는데, 주로 파란색이었습니다. 형태가 마치 꼬리를 잡힌 독사가 쉭쉭 소리 내며 좌우로 요동치는 것 같습니다.” 

원장 : “기체 냄새는 어떤가?”

부원장 : “수류탄이 터진 뒤에 나는 냄새보다 약간 시큼합니다.”

정치위원 : “당신 분석으로는 계급의 적 혹은 장개석의 간첩이 묻어 놓은 폭탄일 가능성이 있는가?”

부원장 : “네?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원장 : “유비무환이지. 어쨌든 간에 현장의 장병들을 즉각 이 지역에서 철수시키고 아울러서 돌발 사태에 대비한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즉각 군구 사령부에 보고하고, 신속히 공병단을 병원으로 파견해 지뢰탐지기로 정밀 탐지를 실시해야 합니다.”

정치위원 : “바로 사령부에 보고하고 공병단을 요청하시오.”

- 웨난 지음, 《마왕퇴의 귀부인》     


두 시간 뒤, 공병소대가 지뢰탐지기와 지뢰제거기를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들판으로 달려왔다. 공병대는 지뢰탐지기로 정밀 탐지를 실시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공병 소대장은 공병단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기술자를 데려 오게 하였다. 늙은 군인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래전 이곳에 옛 무덤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덤을 판 것은 아닐까요?” - 웨난 지음, 《마왕퇴의 귀부인》     


 훗날 중국을 넘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마왕퇴의 옛 무덤이 이천여 년의 세월을 뚫고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림 1. 마왕퇴 발굴 사진. 20미터를 파고 들어가서야 묘실이 나타났다. 


마왕퇴 발굴 사진을 보면 마왕퇴가 얼마나 크고 거대한 무덤인지 짐작되실 겁니다.이때 발굴된 무덤은 1호묘이고, 추가 조사를 거쳐 마왕퇴가 총 세 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지금은 마왕퇴 1호묘, 2호묘, 3호묘라고 부릅니다. 무덤에 묻혀 있는 사람은 1호묘는 한나라 때 장사국의 승상 이창의 부인이었고, 2호묘는 이창의 묘였습니다. 1호묘에서 발굴된 부인의 시신은 피부와 모발 등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중국 고대의 역사서 《사기》와 《한서》에 따르면 이창은 한나라 혜제 2년(기원전 193년)에 대후에 봉해졌으며 기원전 186년에     죽었습니다. 3호묘는 이창 자식의 묘로, 기원전 168년에 죽었습니다. 

1호묘 발굴 당시 발굴단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최지강은 무덤에서 금은보화가 잔뜩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정작 목기와 견직물만 많이 나오자 발굴에 많은 돈을 쓰고도 금은보화가 나오지 않은 것에 어떻게 보고할지 큰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왕퇴에서 출토된 유물 중 금은보화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인류 역사에 큰 전환을 가져올 유물이 있었습니다. 그 유물은 3호묘에서 출토된 백서帛書입니다. 백帛은 ‘비단’을 뜻합니다. 그러니 백서는 비단에 쓴 글이라는 뜻이죠. 이 백서에는 무려 12만 자에 달하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럼 12만자에 달하는 글자가 하나의 책이었냐? 그건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책 제목이 하나도 안 적혀 있었습니다. 학자들이 그 글들을 해독했더니 오늘날 전해지는 책도 있었으나, 상당수는 전해지지 않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왜 해독이라고 하냐면 비단에 적혀 있는 한자들이 옛 한자인, 소전체와 예서였기 때문입니다. 해독해보니 그 중에 오늘날 《노자》라고 부르는 책에 적혀 있는 내용과 같은 글들이 적혀 있는 백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들을 《백서 노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원래 제목은 없었던 거죠. 《백서 노자》가 출토된 이후 시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노자》를 《전래본 노자》라고 부릅니다. 


그림 2. 마왕퇴에서 출토된 백서(출처 : 영문 위키)


마왕퇴에서 《백서 노자》가 발굴된 지 19년 뒤인 1993년 호북성 형문시 곽점촌이라는 곳에 있던 초나라 때 묘지에서 다량의 죽간이 발굴됩니다. 죽간은 대나무로 만든 책을 뜻합니다. 책冊이라는 한자의 모양은 대나무를 끈으로 묶은 모양을 상형화한 것이죠. 이 죽간에도 제목이 없었습니다. 이 중 오늘날 《노자》에 적혀 있는 글과 같은 글들이 적혀 있는 죽    간이 있었습니다. 이 《노자》를 《죽간 노자》라고 합니다. 곽점에서 발굴된 초나라 묘지는 기원전 300년 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서 노자》가 발굴된 마왕퇴 3호묘의 주인은 기원전 168년에 죽었으므로 《백서 노자》와 《죽간 노자》의 편찬연대는 최소 130년의 시차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연대 이야기를 하냐면 《죽간 노자》에 실려 있는 《노자》의 글자수는 2천여 자로 《전래본 노자》의 5천여 자에 비하면 5분의 2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30여 년 동안 누군가 3천 자를 덧붙였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자》라는 책이 사마천이 말한 것처럼 노자라는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쓴 걸로 봐야 하는 거죠. 


그림 3. 곽점촌 초나라 묘지에서 출토된 대나무에 쓰인 《죽간 노자》



고대 무덤에서 출토된 백서본과 죽간본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노자》라는 책은 원래 제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 경제 이후부터 《도덕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누군가 《도덕경》이라는 책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이 책을 도덕을 중심으로 편집했다는 뜻입니다. 즉 도덕을 중심 주제로 놓기 위해 책을 편집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처음에 《도덕경》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고리타분하게 무슨 도덕이야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도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새치기하지 말고 줄을 서라,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라, 뭐 이런 것이 생각나죠? 그런데 《도덕경》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도덕과 관련한 내용은 없어요. 《도덕경》의 도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가 아니라, 도와 덕을 합쳐 만든 합성명사입니다. 이때 도와 덕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자가 말한 도는 이 세계를 지배하고 관통하는 원리와 법칙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계를 운행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으면 그 원리에 맞추어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그 원리에 어긋나게 살아야 할까요? 당연히 그 원리에 맞추어, 원리에 따라 살아야겠지요. 그 원리에 따라 사는 삶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덕입니다. 세계의 원리와 법칙에 따라 사는 처세법, 그것이 덕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면 먼저 이 세계의 원리와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노자가 말하는 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그것도 알기 쉽고 이해 가능하도록 다양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도는 이 세계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원리인데, 그 원리가 진리라면 당연히 모든 것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럼 지금부터 노자가 말한 도와 덕이 무엇인지 알아보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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