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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05. 2020

살아있어 주셔서 감사해요

  30대 젊은 남자 환자였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했다. 다른 알코올성 환자들보다는 병동 생활에 매우 협조적이었고 간단한 처치 하나에도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등 문제 행동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런 그의 태도가 나의 경계 태세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한 몫 했다.      


  저녁 밥이 나오기 전, 환자들에게 저녁 경구약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병동 복도 카트 위에서 작업하고 있던 나에게 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저 병원에 할머니가 도시락을 싸오셨다는데 코로나도 있고 들어오는 건 좀 뭐해서 여기 병원 앞 정원에서 도시락 좀 먹고 올 수 있을까요?” 

“그럼 밥만 먹고 얼른 오세요. 바로 오실거죠?” 병원 부지 내 공원은 나름 큰 편이어서 산책하는 사람도 많은데 할머니와의 도시락을 안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올거니까 이거 수액 좀 잠시만 빼고 다녀 올 수 있을까요? 밥 먹을 때 불편할 것 같아서요.” 

“진짜 바로 오셔야돼요.” 

“네, 감사합니다.” 라는 대화가 오가고 나는 그의 수액을 잠시 빼 내 카트에 걸어두었다.      

 

 그 뒷모습 이후로 한 호스피스 환자의 컨디션이 많이 악화되어 처치실로 환자를 빼고 쉴 새 없이 바삐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산소를 연결하고 보호자를 안정시켰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차! 싶었다. 저녁 시간은 지났고 할머니와 도시락을 이렇게 깜깜해질때까지 먹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서둘러 창밖 정원을 내다봤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실 컴퓨터와 전화기를 양손에 잡고 그의 기본정보들을 쭉 내려봤다. 알코올의존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보는데, 그 기록도 들어가 보니 그는 얼마전까지도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그의 정보에 적혀있는 전화번호와 보호자인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번갈아가며 몇십번은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어머니는 황당하게도 병원 안에 계신다고 했다. 어머니를 만나 상황을 이야기했다. 

“환자가 아까 저녁때 할머니랑 도시락 먹는다고 정원에 나갔어요.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고요. 전화기도 꺼져있는데 혹시 어머니랑은 연락되시나요? 죄송해요. 제가 잘 봤어야했는데...”

어머니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디가세요? 환자 올 때까지는 계셔주세요. 보호자분이라도 연락이 되야돼서... 죄송합니다.”

“우리 아들 걱정되서 나 가야겠어. 여기있다가는 심장이 떨려가지고 못있겠어. 갈거야.”

“가시면 안돼요. 어머니 제가 찾아볼게요. 잠깐만 계셔주세요.” 라고 말했지만 결국 그녀를 잡지 못했다.     

 

 이런 경우 보통 환자의 탈원으로 인한 보고 과정, 또는 미납 병원비 등을 걱정하겠지만 그의 과거력을 본 이상 나는 그의 생사만이 걱정되었다.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매시간 해야되는 일이라는 것이 있는 곳이 병원이지만 다행히 그 때는 그나마 여유시간이 되었다. 무작정 나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지도 넓고 주차장 역시나 넓은 병원에 거의 모든 야외 공간을 다 가보았다. 그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은 주변 대학가 때문에 번화가를 이루고 있다. 지하철역까지는 도보로 12분 정도 걸린다. 물론 성과는 없었지만 그 길도 다녀왔다. 봄바람이 부는 쌀쌀한 저녁이었다. 간호복은 반팔, 그렇게 총 1시간 정도를 야외에서 그를 찾는 데 보냈다. 다시 병동으로 돌아왔는데 다행히도 병동은 조용했다.      

 

 최대한 내 선에서 찾고 싶었지만 더이상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안전보안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환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CCTV 화면을 보러 지하 1층 보안실로 갔다. 

보안팀 직원이 물었다. “선생님, 환자 몇시에 나간지 아세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저녁 밥 나오기 전이긴 했는데... 몇시인지 나갈 때는 시계를 못봐서 정확한 시간을 모르겠어요. 다섯시 반에서 여섯시 사이에요 선생님.”

“아 그럼 엄청 많이 돌려봐야겠네요.”

  

  넓은 부지인만큼 CCTV도 많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뺑소니 차량을 찾는 CCTV센터 화면같았다. 병동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는 모습부터 겨우 찾아 병원 내 모든 CCTV 화면을 돌려봤다. 병원 정원 화면은 부지 전체를 담고 있어 사람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찾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화면을 넘기다가 그의 연보라색 가디건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병원앞에서 누군가 일행 두명을 만나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선생님 찾은 것 같아요!”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는 “이 사람 탈원했네요.” 가 아닌 “이 사람 살아있어요!” 라는 의미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렇게 또 병동을 떠나 30분 이상 그를 찾는 데 소요했다. 탈원은 했지만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병동을 올라오자마자 저녁시간 컨디션이 악화되었던 호스피스 환자는 돌아가셨다. 거의 두시간 가량 아무것도 하지 못해 밀려있던 일들도 쏟아졌다. 일단 수선생님께 전화를 해 보고했다. 

“환자 연락되지 않아 CCTV확인까지 마쳤고 탈원확인되었습니다.” 간호기록도 남기고 경찰에 신고도 했다. 밤 11시 칼퇴근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다만 내가 마치지 못한 일들을 정리 하는 동안 연락 한 통이라도 오길 바랬다. 곧이어 전화벨을 울린 것은 경찰이었다. “환자 위치 확인은 되었는데 개인정보이다 보니 현위치를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정보를 내가 알아야하는데 알 수 없으면 누가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아무튼 그는 경찰을 통해 계속 본인이 안전함을 전해왔고 새벽 중 조용히 병원으로 돌아와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면서 나를 볼 면목이 없어 일찍 퇴원을 원한다며 퇴원을 했다. 그가 만약 나에게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라고 말했다면 나는 한 치의 거짓 없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죄송하실 것 하나도 없어요. 여기 계신 걸로 저 화 다 풀렸어요. 돌아와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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