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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Mar 16. 2024

침묵이 불러온 재앙

<갈색 아침 :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TV 다큐 <동물농장>을 즐겨보는 편이다. 길에는 많은 개가, 고양이가 떠돈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떠돈다. 누군가는 밥을 챙겨 주고 누군가는 상상 못 할 해코지를 해댄다. 떠돌이 동물문제는 짠함과 걱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어려운 사회 문제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고 해결책에 대한 요구도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리라. 그림책 <갈색 아침>에서는 '법'으로 그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해 버린다. 하지만 그때는 그 사건이 평범했던 시민들에게 어떤 재앙으로 돌아올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갈색이 아닌 고양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법이 생기는 바람에 '나'는 기르던 고양이를 없앴다. 가슴이 아팠지만 너무 불어나는 고양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기에 수긍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친구 샤를리가 자신의 검은색 개를 안락사시켰다. 갈색 개가 아닌 개를 모두 없애라는 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샤를리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     

           

<갈색 아침 :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휴먼어린이>

며칠 뒤 <거리 일보>가 폐간되었다. 갈색 개 사건과 관련된 정책을 비판하는 신문사들은 모두 폐간되었고 도시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갈색 신문>만 남았다. '나'와 샤를리는 아무 말고 하지 못하고 커피만 마셨다. 불안한 마음에 카페를 돌아봤지만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어 놀랐다. 아니, 사실은 위안이 되었다. 둘은 <거리 일보>가 없으면 다른 신문을 봐도 된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도서관에서도 볼 수 없는 책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법을 비판하던 출판사들의 책은 모두 도서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던 출판사들은 결국 모두 문을 닫았다. 도시에는 갈색 개와 갈색 고양이밖에 남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든 말에 '갈색'을 붙였다. 그래야 안심이 되었다. 법을 어겨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도시에는 갈색이 붙은 말만 쓰는 착한 사람들만 남았다. 경마에서 이겨도 '갈색' 말에 돈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갈색은 점점 행운의 색으로 인식되어 갔고 그만큼 갈색법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를 각각 안락사시킨 아픈 경험이 있는 둘은 새롭게 갈색 개와 갈색 고양이를 키우며 정을 붙였다. 역시 법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사는 건 옳은 일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대로 순리대로 사는 게 마음 편한 길이다. 둘은 모범시민으로서의 평화를 마음껏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샤를리가 군인들에게 잡혀갔다! 예전에 기르던 개가 갈색이 아닌 검은 개였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는?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안락사시킨 고양이가 얼룩고양이였다는 걸 모르는 이웃이 없으니 '나'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갈색 법이 생기기 이전의 일인데도 소급적용해서 죄를 묻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은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는 그 일로 500명이나 잡혀갔다고 떠들어댔다. 최근에 갈색으로 바꾸었어도 그 마음까지 변한 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운 '나'는 군인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새벽, 갈색 아침을 맞는다. 갈색 군인들이 '나'의 집을 포위하고 부서져라 쾅쾅! 문을 두드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 갈색법이 생기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때 외면한 죄? 모든 말에 갈색을 붙여야 했을 때 느낀 불안을 애써 모른 척 한 죄? 앞장서서 모범 시민으로서 법을 잘 지킨 죄?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를 가리킨다는 것을! 부조리한 현실에 침묵한 죄!                 



그림책의 글을 쓴 프랑크 파블로프는 그림책의 말미에 시를 하나 남긴다. 독일 나치 정권 치하에 살았던 실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시다.      


나치가 유대인을 잡아갈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가톨릭을 박해할 때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가둘 때     

나는 당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고     

나치가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모른 체했지     

그들이 막상 내 집 문 앞에 들이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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