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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Jul 07. 2022

칸칸! 칸칸! 칸카아안!!

육아는 처음이라

나는 엄마 노릇이 참 힘들다. 어찌나 서툰지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가 두 세살 될때까지가 특히 더 심했다. 그렇다고 그뒤로 잘했다는 건 아니다. 큰 아이는 잠투정도 심했고 가끔은 자지러지게 울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유를 몰라 쩔쩔매곤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표정만 봐도 뭘 원하는지 척척 안다는데 난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 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태생적으로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인가 싶다. 지금도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며 잠투정이 시작되는 아이를 유심히 살폈다. 오늘은 그 원인을 꼭 알아내고 말리라 결심하며.

아이는 일단 잠이 오면 울었다. 잠이 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눈을 안 감으려고 버텼다.

"도대체 왜? 눈 감으면 뭔일이 생기는 건데?"

졸음에 겨워 저절로 눈이 감기면 화들짝 놀라면서 마구 울어댔다.

"왜! 눈 감으면 무서워? 괜찮을 거야, 아가야. 그냥 졸음에 너를 맡겨! 제발 자자 좀!"

우는 바람에 잠이 달아나면 그게 화가 나는지 또 울었다.

"아니, 왜 화를 내냐고... 자고 싶은 데 못 자는 이유가 뭐야? 좀 알려줘라 아가야!!"


멱살이라도 잡고 묻고 싶었지만 상대는 너무 쪼끄만 아가였다. 역시 아이의 표정을 살펴서 이유를 알아내는 건 내겐 무리였다. 다음엔 책을 뒤졌다. 하지만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책은 없었다. 내가 연구를 시작해야하나 싶었지만 전문가들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초보 엄마는 밤새 아이를 달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니까. 물론 밤새 잘 자는 것도 아니었다. 자다가 두세 번 깨는 건 기본!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또 울었다. 마치 잠을 깨는 게 억울하다는 듯이. 안자려고 기를 쓸 땐 언제고! 나 원 참.


그토록 원하던 답을 아이들 다 크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기들은 눈 감았을 때 앞이 안 보이면 지금까지 보던 세상도 다 없어진다고 믿는단다. 세상과 함께 엄마도 사라지는 걸로 안다는 것. 엄마는 아기에게, 자신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니 엄마가 없어지는 건 엄청난 공포가 된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아기에게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단다.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엄마가 항상 곁에 있다는 걸 믿을 수 있게 사랑을 듬뿍 줘야한다는 거다. 라캉을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 아이는 잠이 들 때마다 저 어설픈 엄마가 나를 지키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리면 어떡하나 매번 불안했던 가보다. 초보 엄마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이는 그냥 알아서 커버렸다!




돌이 지나면서 심했던 잠투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살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TV는 누가 보지 않아도 식구처럼 나지막하게 혼자 떠들고 큰 아이는 그날도 보행기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잘 걷게 된 후에도 보행기를 애용했다. 아침마다 보행기에 앉아 여러 권의 그림책을 돌려보곤 했다. 나는 이때 우리 아이가 정말 큰 인물이 될 줄 알았다.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하다가 모처럼 한숨 돌리려고 TV 앞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 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또 울기 시작하는 거다. TV를 가리키며 "칸칸! 칸칸! 칸카아아안!"을 외치며... 분명 그림책을 보고 있었는데 언제 또 TV를? 나는 다급하게 채널을 돌리면서 아이 눈치를 봤다. 그런데 아무리 돌리고 돌려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칸칸이 뭐길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결국 TV에서 아이가 원하는 '칸칸'은 찾지 못한 채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울음을 진정시키고 그림책을 몇 권이나 읽어주고 난 후에야 아이의 기분이 겨우 가라앉았다. 도대체 칸칸이 뭘까? 짐작도 되지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칸칸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게 뭔데?" 흐린 눈으로 남편이 되물었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저녁을 마치고 온 가족이 거실에서 뒹구는데 아이가 갑자기 까르르 웃으며 외쳤다. "칸칸!!" 나는 벌떡 일어나 TV를 봤다. 드디어 칸칸의 정체가 드러났다.


출처 : https://youtu.be/FcXCC17S_Q8  <90년대 초 삼* 전자의 냉장고 광고 영상 - 칸칸이 나뉘어 신선하게 보관 가능하다는 게 포인트다. 너무 오래된 영상이라 해상도가 많이 안 좋다.>


바로 당시 삼* 전자에서 새로 나온 칸칸 냉장고 광고! CM송과 함께 냉장고가 보이고 귀여운 고양이가 냉장고 속 싱싱한 생선을 노린다. 아이가 꽂힌 건 바로 그 하얀 고양이였던 것. 아이는 엄마가 리모콘을 돌리는 바람에 기다리던 칸칸 고양이를 못보게 돼서 울었던 건데 나는 뭔 상황인지 몰라 쩔쩔매며 다시 또 리모컨만 돌려댔다. 눈치 없는 엄마 덕에 아이는 눈물을 한 사발도 넘게 뺐고 엄마는 그런 아이 달래느라 진이 빠졌다. 딸렘! 이제와 하는 말인데 초보 엄마는 그날 많이 당황했다.


* 사족 하나

우리집엔 불문율이 생겼다. 리모콘은 현재 보고 있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장면이 끝날 때까지 반드시 기다렸다가 돌릴 것. 어쩌다 남편이 그 룰을 깨고 리모콘을 돌리면 모두가 째려보며 외친다. "칸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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