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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Oct 30. 2022

암이라고요? 1

남편의 응급실행은 처음이라

"배가 아파!"

저녁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구마 한 개를 가뿐히 먹고 난 남편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왜 그래? 얼마나 아프길래!"

2019년 1월 어느 날 밤, 몸도 가누기 힘들어하는 남편을 부축해서 동네 작은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당시 우리 동네엔 큰 병원이 없었다.

"위가 엄청 커졌어요. 얼마나 드신 거예요? 이러니 아플 수밖에요."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이 다 가라앉지 않아 밤새 끙끙거린 사람인데 담날 아침 CT 결과지를 보던 내과 의사는 과식때문이란다. 

"당신, 앞으로 절대 과식하지 말어!"

살만해진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윽박지르니 하룻밤 새에 수척해진 남편은 한없이 불쌍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남편은 원래 건강한 사람이다. 1년 내내 감기 한 번 안 걸릴 만큼. 축구하다 팔목을 부러뜨린 거 말고는 사고도 거의 안 쳤다. 축구하는데 다리가 아니라 팔이 왜 부러졌냐고? 나도 그게 미스터리하다. 그것도 오른쪽, 왼쪽, 양 팔목을 사이좋게 한 번씩 부러뜨렸다. 아무튼 뭘 먹고 체한 적도 거의 없다. 과식 좀 했다고 식은땀을 흘릴 만큼,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 제어가 안 될 만큼 아플 수 있다고?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으니 그런가 보다, 넘어가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꺼림칙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그날 이후 남편은 약간 체한 듯 답답한 걸 빼면 크게 아프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뭔가... 촉이 안 좋았다.


몇 달 뒤 동네에 아주 큰 대학병원이 문을 열었다. 남편을 데리고 대학병원 내과에 방문했다. 나이 지긋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의사는 증상을 듣더니 위내시경을 하자고 했다. 

"가벼운 위염이네요. 6개월 정도 약 먹으면 괜찮아져요."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가 잘 안 됐다. 그 정도 가지고, 가벼운 위염과 과식 한 번 때문에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심하게 통증이 올 수 있나? 병원을 믿어야 하는데, 친절한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을 믿어야 하는데, 잘 안됐다. 뭔가... 계속 찜찜했다.


그로부터 또 두어 달이 지난 7월 어느 날. 

"엄마, 우리 팀장님도 아빠처럼 갑자기 복통이 심해서 응급실에 갔었는데 담석증이었대. 상복부 초음파를 찍어보라던데?"

퇴근해서 돌아온 둘째 아이가 한 말이다. 둘째도 내심 아빠의 통증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당장 동네 내과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다. 뭔가 이상이 있으면 진료의뢰서를 들고 다른 대학병원에 가볼 요량으로. 증상을 말했는데도 위내시경만 하라고 했던 동네 대학병원 그 의사한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담낭에 모래알 같은 담석이 많이 있네요. 그리고 담낭이 쪼그라져있어요."

동네 단골 내과 의사는 담석증이라고 했다. 그렇지! 과식이나 위염 때문만은 아닐 줄 알았어! 괜히 주먹을 불끈 쥐고 의사에게 물었다.

"수술해야 할까요?"

"아뇨. 약으로 담석을 좀 녹여보죠."

우리는 '우루사'를 잔뜩 처방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이라곤 모르고 살던 남편인데 갑자기 약봉지가 잔뜩 쌓인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당신도 늙나 보다... 

그런데 여전히 개운치 않은 이 기분은 뭐지?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큰 아이가 회사에서 진행하는 건강검진에 엄마 아빠도 예약해야 한다며 날짜를 재촉했다. 여전히 약간의 찜찜함이 남았던 지라 예약을 서둘렀다. 그때가 한창 휴가철인 8월 초였다. 남편도 내심 걱정이 됐던지 문진 하는 의사에게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고 상복부 초음파뿐 아니라 CT까지 찍었단다. 그런데...

"급히 병원에 오셔야겠습니다. 될 수 있는 데로 내일 아침 일찍 와주세요."

불길했다. 검진을 한 병원에서 최대한 빨리 방문하라는 건 좋은 징조일 수가 없지 않나!


"담낭암입니다. 초기도 아니고 2기 정도로 보여요. 최대한 빨리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합니다."

이상하게 친절하고 사설이 길던 의사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오자 엄숙하고 담담하게 암을 '선고'했다. 이 말을 듣자고 새벽부터 서둘러 막히지 않는 길을 고심하며 차를 내달렸던가? 

드라마를 보면 암을 선고하는 의사 앞에 앉은 환자 가족은 항상 바보 같은 얼굴로 바보 같은 말만 계속한다.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

드라마 작가들은 알았던 거다. 그런 순간이 오면 누구나 바보가 된다는 것을.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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