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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Sep 25. 2022

코로나와의 전쟁

코로나는 처음이라

시작은 큰 녀석이었다.

"엄마, 아무래도 이상해. 나 걸린 것 같아!"

지난 3월,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큰 녀석이 자가검진 키트를 또 뜯었다. 코로나가 극심하게 유행이었던 터라 두 녀석 다 하루가 멀다 하고 코를 쑤셔대던 참이다.

"아닐 거야! 너 멀쩡해 보여. 그러다 코 다 헐어버리겠다, 이제 그만 좀 쑤셔!"


그런데 잠시 후 큰 녀석이 내미는 키트에는 선명한 두줄이 떴다! 우리 집에선 처음 걸린 거라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큰 녀석은 바로 자기 방에 감금되었다. 다음날 보건소 가서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 초 긴장 상태로 삼시 세끼 사식(?)을 넣어주며 화장실 갈 땐 94 마스크를 두 개씩 쓰도록 했다. 아이는 3일쯤 심하게 앓았지만 곧 좋아졌고 철저하게 신경 쓴 덕분에 나머지 식구들은 옮지 않고 무사히 지나갔다.


"엄마, 나 확진이래! 지금 집에 가야 하는데 서울엔 방역 택시가 없대."

다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8월, 멀쩡하게 출근한 둘째 녀석에게서 12시쯤 전화가 왔다. 마포 쪽 보건소란다. 남편은 94 마스크 두 개를 쓰고 차를 몰아 작은 녀석을 데려와서는 바로 방에 감금시켰다. 작은 녀석 역시 3일 정도 몸살이 심하더니 그 후론 좋아졌다.


큰 아이 때 아무도 전염이 안된 탓에 좀 방심한 건 사실이다. 너무 심하게 앓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 자고 있는 작은 녀석 방을 두어 번 슬쩍 열어본 게 문제였던 것 같다. 큰 녀석 땐 전염에 대한 공포가 너무 심해 문을 열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밖에서 '괜찮아? 괜찮아?'만 외쳐댔었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확진되고 5일째 밤에 갑자기 오한이 들면서 온 몸이 아팠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가검진을 했지만 정상이었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소용없는 심한 몸살에 잠을 설치고 아침에 다시 자가검진! 여전히 정상. 근데 뭔가 느낌이 왔다. 여느 감기랑은 다르다는 느낌. 2년 전에 걸렸던 A형 독감 하고도 달랐다. 심지어 10여 년 전에 걸렸던 신종플루랑도 달랐다. 남편을 채근하여 동네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다행히 남편은 무사했지만 역시 난 피해 가지 못했다.


선명한 두줄! 드디어 나도 걸렸구나.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어렸을 적 친구들이랑 놀이를 하면서 금 밟지 않으려고 애쓰다 결국 밟고 죽었을 때 같은 기분이랄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칠 앓고 나면 당분간은 두려움 없이 밖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음하하하하


그런데!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감금(?) 사흘째 되던 밤, 새벽 2시가 넘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다. 신종 플루 후유증으로 천식이 처음 시작되었던 10여 년 전보다 훨씬 심했다. 공기 좋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천식을 걱정한 적이 거의 없었다. A형 독감에 걸렸을 때도 남들보다 기침이 조금 심하고 숨이 좀 더 찼을 뿐 심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다급하게 남편을 부르고 벤토린을 흡입했다. 남편이 119를 불렀지만 근처 병원 응급실에는 자리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 그 새 기관지가 확장되어 숨이 편안해졌고 구급대원들은 안심하고 돌아갔다.


출처 : https://pixabay.com


아침에 근처 중소 병원 응급실에 자리가 났다고 해서 진료를 받았다. 이런저런 검사 끝에 입원을 하게 됐다. 말로만 듣던 음압 병실. 일단 음압기가 엄청 시끄러웠다. 멀쩡해졌는데 괜히 입원까지 했나 싶었지만 밤이 되자 다시 상황이 악화됐다. 자다 말고 갑자기 전날 밤보다 훨씬 심하게 호흡곤란이 왔고 이번엔 벤토린으로 되지 않았다.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해졌다. 급박할 때 누를 수 있는 비상벨도 없다니! 전화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간신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호사실에 전화를 연결했다. 


간호사들이 뛰어오는 걸 보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두세 명이 나를 일으켜 침대에 앉히고 산소 포화도를 재고 혈압을 재더니 부랴부랴 코에 산소 줄을 끼웠다. 입에 기관지 확장용 흡입장치를 물려주고 손으로 잡으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그럴 힘이 없었다.

"숨을 천천히, 크게 쉬어보세요!"

"장치를 문 채로 입으로 숨 쉬세요!"

온몸에 힘이 빠지고 몹시 어지러웠다. 눈도 뜨기 힘들었다. 그냥 눕고만 싶었다. 누우면 숨을 아예 쉴 수 없는데도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정신을 좀 차린 후 찍은...


잠깐! 내가 죽는다고?

그 순간 남편과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식구들도 모르게 병원에서 홀로 죽어간다고? 그건 아니지! 아직 애들 결혼도 안 시켰다고! 넋 놓고 주저앉을 남편은 또 어떡하고? 다시 힘을 냈다. 온 힘을 다해 숨을 쉬었다. 입으론 기관지 확장제가, 코로는 산소가 들어갔다. 얼마나 열심히 숨을 쉬려고 애썼는지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조금씩 호흡이 돌아왔다. 정신이 좀 들어 눈을 뜨니 간호사가 내 입에 물린 흡입장치를 잡은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좀 괜찮으세요?"

순간 울컥했다. 그 사투의 시간에 곁을 지켜준 간호사가 있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후로 5일 간 산소 호흡기를 더 끼고 지냈다. 매일 두려운 마음으로 밤을 맞았지만 다행히 그날 이후 위급한 순간이 더는 없었다. 기저질환자들은 코로나를 더 조심해야 한다고 방송에서 그렇게 부르짖었건만 정작 나는 방심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살만해지니까 그렇게 기를 쓰고 살려고 했던 게 잠깐 부끄럽기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삶에 초연한 척 거드름을 피웠던가!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어쨌든 난 살아났다! 앞으론 삶에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의 스케줄이 다 꼬여버려서 머리도 아팠다. 에라 모르겠다,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죽었다면 영원히 못했을 강의, 한 주 미룬다고 지구가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죽다 살아난 다음 날 식구들과 영상 통화를 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너무 행복해서 끽끽 대며 웃었다. 누가 뭐라든 난 지금 살아있다! 살아있음을 이렇게 감사해본 적이 있었던가?




퇴원하고 거의 한 달 가까이 코로나 후유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졸림병! 그거 후유증 아니라고 말하면 안 된다. 내 생각엔 아주 특이한 후유증 맞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또 자고 저녁 먹고 밤새... 아, 밤에 푹 자지는 못했다. 아직도 밤엔 기침이 심하고 호흡도 고르지 못해 자꾸 깨긴 한다ㅜ 어쨌든 자도 자도 계속 잠이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느라고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글이 올라왔단 알람을 듣고도 읽지 못했다. 그새 대노님과 해울님이 다녀가셨다. 염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다시 기운을 차려, 확진자에서 확 찐자가 된 슬픔을 안고 일상에 복귀하려 한다. 따뜻하고 자상한 작가님들 덕분이다.


하나 더!

원래 '전쟁' 시리즈는 페르세우스 님 전용인데... 이번만큼은 양해해주세요, 페르세우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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