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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Nov 04. 2022

암이라고요? 2

암 선고는 처음이라

<암이라고요? 1>에서 계속...


담낭암! 그것도 2기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세상이 사라졌다. 

진료실도 병원도 책상도 의자도.. 그저 하얀 공간에 의사와 우리 둘뿐. 이상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사가 친절하고도 사려 깊게 꾹꾹 눌러서 말해줬는데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건지...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어설픈 연기자처럼 얼빠진 얼굴로 바보 같은 말만 되풀이하다 진료실을 나왔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인가?


그날 이후 나의 시간은 멈췄다.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시간은 언제나 남편이 암 선고를 받은 그날에 멈춰있었다. 그동안 홍보 중이던 강의 개강일은 무기한 미뤄졌고 진행 중이던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계획이 불투명한 상태로 멈춰졌다. 위태로운 남편 앞에서 내가 추진하던 일들은 그저 보잘것없고 무의미할 뿐이었다.


멈춰있던 40일 동안 나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생기는 인간(人間). 아무리 잘난 척해도 혼자서는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인간.  그동안 사람은 두 변(人)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면서 서로를 세운다는 평범한 진실을 잊고 살았다. 특히나 남편과는 30여 년이나 부부로, 서로 기댄 채 살았다. 든든한 한 변의 역할을 30여 년이나 해준 사람. 그가 쓰러지면 다른 한 변인 나 또한 더는 버티지 못한다는 걸 남편이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ko


남편이 쓰러지면 나도 쓰러진다! 잠시 나약해지던 내 안에서 갑자기 슈퍼맨이 튀어나왔다. 인터넷과 철 지난 다큐와 논문과 책자... 뒤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뒤져 담낭암을 공부하고 명의를 찾았다. 두 병원을 비교하고 정밀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 예약까지 눈코 뜰 새 없었다. 고기를 피하고 나물 위주 식단을 만들기 위해 매일 장을 보고 새벽마다 삶고 무치고 끓였다. 수술 후에는, 남편 없이 혼자 움직여야 했으므로 평소엔 동네 운전도 잘 못하던 내가 구기터널, 북악터널, 내부순환로, 올림픽대로, 성산대교, 서부간선도로를 종횡무진 오갔다. 이 모든 일이 평소라면 귀차니즘의 대가이자 살림 젬병, 운전 젬병인 내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수술을 보조했던 의사가 와서 수술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암이 담낭과 간 일부까지 퍼져 복강경을 시도하다 포기했으며 암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L자로 개복해서 크게 잘라냈으니 통증이 심할 거라고 했다.

"암이... 맞아요?"

"네, 육안으로는 분명 암이었어요."

우리는 그 말에 꽂혔다. 담당의가 수술 후 맡긴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확실한 건 없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는 보조의가 한 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암이구나. 진짜 암이었구나! 슈퍼맨은 더욱 분주해졌다. 암 치료 스케줄을 예측해보고 보조 치료 가능한 병원을 검색하느라 쉴 새가 없었다. 꼬박 일주일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도 정신은 너무 맑았고 피곤도 못 느꼈다.


"암 아니래! 괴저성 담낭염인가 뭐 그런 거래."

남편의 전화를 받고 잠시 멍했다. 나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울음을 터뜨렸을 거다. 일주일을 꼬박 기다려도 결과가 안 나와 노심초사했었다. 일주일에 하루 있는 수업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서 왠지 오늘은 꼭 결과가 나올 것 같아 불안했다. 최종 암 선고를 남편 혼자 듣게 할 순 없어서 남편 친구들에게 병문안을 와달라고 했다. 그땐 코로나 시국이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괴저성 담낭염은 꼭 암처럼 보이는 특이한 염증이라고 했다. 암은 아니지만 담낭 전체가 완전히 괴사 했고 간까지 괴사 중이었다고. 수술이 조금만 늦었으면 간 전체가 괴사 되어 암이 아니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단다.


퇴원하는 길, 갑자기 운전석에 앉기가 무서워졌다. 왜 이러지? 조금 전까지도 종횡무진 도로를 내달린 나 아닌가? 그렇다. 남편이 암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슈퍼맨은 사라져 버렸다. 내 안의 어딘가로 소리 없이 숨어버린 슈퍼맨 대신 다시 어리바리한 내가 등 떠밀려 운전석 앞에 선 것이다.

"여보, 미안. 당신이 운전할 수 있지?"

남편은 L자로 개복 수술을 한지 일주일 만에, 다시 겁쟁이가 된 나를 태우고 1시간 30분을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끝이 아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남편을 위해 먹을 걸 준비하고 잠자리도 살펴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고 그 후로 일주일을 계속 잠만 잤다. 오히려 남편이 나를 보살펴야 할 지경이었다. 슈퍼맨이 맘껏 활동하게 해 주느라 단시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탓이었을까? 지금도 가끔 남편이 너털웃음을 웃는다. 환자보다 더 환자처럼 뻗어버린 보호자는 처음 봤다고. 

어쨌든 남편은 살았다. 더불어 나도 살았다. 살아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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