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년생으로 딸만 둘을 키웠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고상하게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이 되자 달랐다. 말썽을 피울 때도 고집을 부릴 때도 둘이 뭉치니 엄마의 괴로움도 두배가 됐다. 게다가 둘은 툭하면 싸운다. 다 커서 직장인이 되고서도 1분 친하고 5분 싸운다. 여자아이들인지라 싸우는 이유는 주로 옷 때문이다. 그 모습이 너무 피곤해서 시집을 가던가 독립을 하라고 외쳐도 들은 척을 안 한다. 결혼은 아직 때가 안돼서 못하고 독립은 돈이 아까워 못한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로에 대해 샘을 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거다. 어렸을 때 쌍둥이처럼 똑같이 입히고 장난감도 똑같이 사줬기 때문일까? 작은 녀석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큰 녀석은 자기 상황이 안 좋아도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마찬가지로 큰 녀석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작은 녀석도 축하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쭈욱 그랬으니 그거 하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도 헷갈리는 일이 한 번 있기는 했다.
작은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한창 말이 느느라 엉뚱한 말도 조잘조잘 잘도 갖다 붙여서 우리를 웃게 만들던 그 시기. 그날따라 아이 아빠의 귀가가 늦었다. 모처럼 언니랑 사이좋게 장난감을 갖고 놀던 아이가 갑자기 창문 앞을 기웃거리더니 큰 소리로 아빠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영이 아빠! 지영이 아빠! 언제 와? 지영이 아빠, 보고 싶어요. 빨리 오세요!"
순간 큰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게 동의를 구한다.
"지영이 아빠? 서영이 아빠 아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난 당황했다. 둘 다 맞긴 하는데... 어느 집이나 아이가 둘 있으면 보통 큰 아이 이름을 붙여 부르곤 하지 않는가? 나도 자연스럽게 남편을 부를 때 '서영이 아빠!'하고 불렀고 남편도 나를 '서영이 엄마'라고 불렀다. 식구 모두에게 그건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게 둘째 입장에선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늘 서영이 아빠라고 불러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던 아이였는데 그날은 왜 갑자기 '지영이 아빠'를 애타게 부르짖었을까? 누가 뭐라 하던 우리 아빠는 언니 만이 아니라 나의 아빠도 된다는 걸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을까? 누가 뭐라고 부르던 나는 지영이 아빠라고 부를 거라고 선언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한 번도 지영이 엄마, 지영이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지영이 아빠'를 읊조려봤다. 달라진 호칭이 주는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몸을 통해 나오는 건 에너지를 갖는다. 손아귀 힘, 팔 힘, 다리 힘처럼. 말도 마찬가지다. 입이라는 기관을 통해 나온 말은 힘을 갖는다. 예로부터 장자를 우선시하는 관습은 무심코 엄마, 아빠 앞에 첫째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습관 때문에 더 오랫동안 유지된 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한동안 둘째는 아빠를 부를 때 꼭 '지영이 아빠'라고 불렀다. 나도 한동안 서영이 아빠, 지영이 아빠를 공평하게 불러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언니가 가진 것에 한 번도 샘을 내 본 적 없는 아이였는데 그날 아이는 갑자기 아빠가 언니의 아빠만 되는 것 같아 샘이 났던 것일까? 당당하고 우렁차게 아빠에 대한 자기 지분을 챙기던 둘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