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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Dec 01. 2021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참가자들의 기록

우리가 오케스트라를 꿈꾸는 이유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여기 꿈을 향해 한 발 더 내디딘 청춘들이 있다. 한겨울의 추위 속에 만난 이들이 내뱉는 문장에서, 까르르하는 웃음소리와 장난스러운 입꼬리에서 화사한 춘기(春機)를 느낀 건 착각이었을까.





#1악장_ 젊은 연주자들의 어색한 첫 만남

참가자 | 전찬영(트롬본), 김동연(첼로), 김수영(오보에)


Q. '코리안심포니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코리안심포니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는 젊은 음악인을 대상으로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교육하는 과정으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자-작곡가-지휘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진행한 '미래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시작됐어요. 지난 4월에 모집과 오디션을 거쳐 악기당 1명씩 총 10명의 국내 참가자들이 선발돼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교육 과정이 진행됐고요. 코로나19로 일정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11월 말 무렵부터는 현악기 파트에서 선발된 해외 참가자들도 함께하고 있어요.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현장 중심의 음악연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하게 마련돼 있는데요. 크게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발레 공연 참여, 해외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렉처, 코리안심포니 단원과의 1:1 멘토링으로 구성됐어요. 또 차세대 지휘자를 발굴하는 'KSO국제지휘콩쿠르' 연주에도 참여했고요. 1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과정으로 아카데미 국내외 참가자들의 음악제가 열릴 예정이에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수영_ 저는 지난 6월에 공연한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합주가 기억에 남는데요. 아카데미를 통해 가장 처음에 참여한 공연이기도 했고, 공연 프로그램이 어렵기로 악명 높은 발레곡으로 구성돼 있기도 해서 많이 긴장했거든요. 오케스트라 편성 규모도 작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연이었고요. 피트 안에서 오보에는 보통 무대를 등지고 앉아 연주하게 되는데, 이 공연은 특이하게도 지휘자 오른쪽에 앉게 돼 있어서 곁눈질로 무대를 볼 수 있더라고요. 좀 익숙해지고 나서는 쉬는 시간에 공연을 관람할 여유도 생겼죠.


동연_ 저는 아무래도 힘들었던 연주들이 기억에 남아요. 7월에 미하일 아그레스트라는 러시아 출신 지휘자분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을 연주할 때도 상당히 힘들었죠. 그 곡은 공연에서 연주를 잘 안 하는 곡이라고 들었는데, 지휘자분이 무척 열정적이셔서 연습을 여러 번 반복했어요. 나름 무리했는지 공연이 끝난 후 몸살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고생한 만큼 보람을 배로 느껴요. 또 올해 처음 열린 'KSO국제지휘콩쿠르' 결선에도 참여했는데, 젊은 지휘자들의 경연을 위해 연주가 까다로운 관현악곡으로 구성됐죠. 연주는 어려웠지만 지휘자분들과 소통을 많이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또 평소에 정말 팬이었던 솔리스트 분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정말 행복했어요.


Q. 아카데미 참가자들끼리 매우 친해졌을 것 같은데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수영_ 10월 말쯤 대구로 4박 5일 정도 공연하러 간 적이 있어요. 지방 공연은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낮에 리허설이 없어요. 덕분에 공연 마지막 날 밤, 다음날 일찍 일어날 걱정 없이 다 같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껏 노는 시간을 가졌죠.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사소한 고민부터 경험담 등 술 한잔 마시면서 밤새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다 보니 정말 즐거웠고, 그 이후로 더 가까워지게 된 것 같아요.


찬영_ 솔직히 꽤 긴 시간을 함께했지만, 참가자들끼리 친해지는 데는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파트별로 흩어져서 하루를 보내고, 쉬는 시간에도 할 일이 많아서 좀처럼 친해질 기회가 많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렇다 할 재밌는 에피소드가 없기도 해요.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교육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라도 좀 더 걸어볼 걸 그랬다'하고 후회가 들더라고요. 금관악기인 트롬본을 연주하다 보니 목관악기나 현악기와 달리 공연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일정 중에 여유가 생겨 못다 한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연_ 저희가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이유는 따로 있어요.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전에 참가자들은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 자기소개를 했는데요. 하필이면 가장 말이 없는 태진 오빠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한 거죠. 태진 오빠는 "안녕하세요. 튜바 김태진입니다"라는 말로 간단히 소개를 끝냈고, 다음 차례인 저도 당황한 바람에 짧게 소개를 마쳐서 그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어요. 친해지라고 마련한 자리인데 서로의 얼굴만 확인한 채 어색하게 헤어져 버린 일이 두고두고 아쉽더라고요. 그나마 대구의 술자리가 오리엔테이션을 대신해준 것 같아 조금은 위로가 됐지만요.






#2악장_ 아카데미에서 찾은 음악가의 길


Q. 아카데미를 신청할 때 가장 기대했던 점은 무엇이고, 그 기대는 얼마나 충족됐나요?


수영_ 저는 미국 LA에 있는 콜번 음악대학에서 유학했는데 펜데믹 때문에 귀국하게 됐어요. 근데 예상보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계획도 다 틀어졌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오보에는 마스크를 벗고 연주를 할 수밖에 없어서 코로나19 상황이 심해질 땐 연주가 많이 취소되기도 했고요. 그런 시기에 모집 공고를 보고 아카데미를 신청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음악이 맞는지 흔들리고 있었는데, 저보다 경험 많은 단원분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소속감과 재미를 느껴 이 일을 하고 계속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죠. 기대한 것보다 만족해요. 다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실내악 프로그램이나 해외 공연 등을 해볼 수 없었던 점은 좀 아쉽죠.


찬영_ 오케스트라 실전 경험을 쌓는 것을 가장 기대했어요. 제가 무대에서 연주할 때면 늘 떨곤 했는데, 연주를 자주 하면 저절로 나아질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초반에 실수도 많이 하고, 지켜야 할 것들도 몸에 배지 않아서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적성에 안 맞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어요. 근데 6개월 차쯤 되니까 단원분들이 "이제 좀 쓸 만해졌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인정받은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죠. 다양한 무대 경험을 통해 트롬본이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어떤 리듬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도 알게 됐고요. 특별히 아쉬웠던 것은 없는데, 연주 일정이 조금 덜 빠듯했다면 참가자들끼리 친해질 시간이 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동연_ 한국에는 독일 같은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개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모집 공고를 보고 국내에서도 아카데미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신청하게 됐어요. 대학 졸업 후 저에게 도움을 많이 주셔서 '첼로 아빠'라고 부르는 윤여훈 선생님이 계시는데, KBS교향악단 첼로 부수석으로서 살아오신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막상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필요한 스킬을 배우다 보니 학부 때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 훨씬 힘들었고, 독단적으로 소리가 튀는 게 위험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익히면서 솔로와 오케스트라 공부의 차이를 체감했죠. 올해가 아카데미를 진행한 첫해라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거나 일정이 갑자기 잡히는 일도 있었지만, 이런 것들을 조율해가면 내실 있는 아카데미가 될 것 같아요.


Q. 멘토들과 함께 첫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요.


동연_ 사실 아카데미를 시작하기 전부터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제가 오디션을 급하게 준비하면서 밤새 연습하고, 정신적으로 저 자신을 밀어붙였거든요. 첫 무대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최수열×조진주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 중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었는데, 연주 직전에 한 번 쓰러지기도 했어요.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무대에 올라가서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던 터라 연주를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박혜진 선생님이 "체력관리도 실력"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제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해서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해 건강부터 챙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찬영_ 저도 동연이와 같은 연주로 첫 무대에 올랐는데, 오케스트라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정말 많이 걱정했어요. 무대 위에서도 어시스트로서 멘토분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고요. 다행히 정대환 선생님이 그냥 마음 편하게 부르라고 말씀해주셔서 한시름 덜었죠. 연주는 많이 틀렸지만, 괜찮다고 격려해주셔서 위축되지 않고 계속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수영_ 저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아카데미에 합류해서 첫 무대가 달라요. 예정된 오디션 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자격 미달이라고 오보에, 클라리넷, 트럼펫 참가자를 안 뽑았거든요. 나중에 재 오디션을 통해서 선발됐어요. 발레 공연 말고 정기연주회로는 6월에 공연한 <푸르른 낭만>이 첫 무대였는데, 다른 사람들과 큰 규모로 연주하는 게 오랜만이라 매우 떨렸어요. 하지만 연주가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잊고 지낸 무대의 감동을 느껴서 좋았어요.


브람스 - 교향곡 제2번 라장조 Op. 73


Q. 아카데미를 통해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수영_ 오보에의 자매 악기라고 부르는 잉글리시 호른이 있는데, 학부 시절에는 연주할 일이 별로 없는 악기였어요. 근데 아카데미에 참여해 오보에보다 많이 불게 되면서 '조용한 관종(?)' 같은 제 성격과 잘 맞는 부분을 발견했죠. 잉글리시 호른은 오보에보다 소리가 묵직하면서 솔로 연주가 많거든요. 제가 2019년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객원 연주자로 처음 무대에 설 때도 잉글리시 호른을 맡았어요. 이미선 선생님께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때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일취월장 상이라도 줘야 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여태 들은 칭찬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어요.


동연_ 저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신경을 잘 쓰지 못해서 악기를 다룰 때 시야가 좁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 아카데미를 통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 초반에는 다른 파트 소리가 안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도 들리고 전체적인 조화도 보게 되더라고요. 혼자서도 다른 악기의 소리를 상상해서 연습할 수 있고요. 예전에 첼로를 지도해주신 선생님이 '호른이 듀오로 연주하는 것처럼' 혹은 '오보에처럼' 소리를 내보라고 하실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어요.


찬영_ 연주 스타일은 물론, 어떤 일이든 크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성격으로 변한 것 같아요. 저는 무대공포증이 심했고 리허설이나 연습할 때조차 주변 눈치를 많이 봤어요. 다른 연주자의 기분을 살피고, 뭔가 틀리지 않았는지 불안해하느라 제 연주에 집중하지 못했죠.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여러 경험을 쌓고 그런 게 많이 사라졌어요. 멘토분들이 공연을 완성하는 연주자로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으면 피드백을 주셔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연주하고, 자신을 믿게 되더라고요.








#3악장_마지막 공연, 다시 새로운 시작

Q. 마지막 공연을 앞둔 소감과 아카데미를 마친 후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수영_ 매일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는데 벌써 끝인가 싶어요. 마지막 공연인 음악제는 처음으로 오보에 수석을 맡은 연주라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확실하게 준비하려고요. 그간 연주해온 곡들이 주로 오케스트라 편성 규모가 큰 곡이었는데, 이번에는 소규모 앙상블 곡이라 친밀감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 같아요. 아카데미가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가서 석사 과정을 마칠 계획이에요. 단원분들이 여기서 잘하면 어디서든 잘할 거라고 해주신 말씀을 믿고, 주어지는 기회를 잘 잡아 도전해보려고 해요.


동연_ 저는 파트에서 막내이다 보니 인사이드에 앉아 연주할 때가 많았는데, 마지막 공연에서는 수석 자리에 앉게 돼서 새롭기도 하고, 기대감도 들어요. 무엇보다 이 음악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외 참가자들과 같이하는 공연이라, 서로의 소리가 잘 섞이도록 최선을 다해서 결과보다 과정이 행복한 연주가 됐으면 좋겠어요. 팬데믹 전에는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계획을 세우기보다 국내에서 저에게 부족한 것들을 조금씩 채워나가려고요. 1월에는 이모가 계신 제주도로 떠나 오랜만에 푹 쉬고 체력도 보충할 생각이에요.


찬영_ 음악제는 마지막 공연답게 즐기면서 연주하고 싶어요. 프로를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저희의 현재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면 되는 자리니까요. 다른 참가자들보다 왠지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건 트롬본 연주자들이 서곡만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렸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수석 연주자로서 좀 더 자유롭게 연주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카데미를 마친 후에는 여러모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원동력으로 삼아 오케스트라 단원 오디션을 준비하려고 해요.



Q. 끝으로 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있죠. 저희 모두 아카데미를 참여하면서 그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어요. 그래서 체력관리를 잘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살인적인 프로그램 일정을 버텨낼 체력과 오기만 있으면 나머진 부딪혀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지니까요. 미리 연습하는 습관도 중요하고요. 연습을 잘 해가야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만족할 수 있는 아카데미로 기억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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