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마음으로 New Year, New Wave!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첫 만남, 인연의 시작
Q. 두 분은 어떤 계기로 악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여수은_ 5살 무렵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도 바이올린을 전공했는데, 바이올린과 생김새가 비슷한 부전공으로 비올라를 선택하면서 제 소울메이트가 될 악기와 처음 만나게 됐죠. 수업을 들으면서 어떤 감정이든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비올라만의 안정적인 음색에 반했고, 저와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고음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전공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서 졸업 후에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 들어가 비올라를 전공했어요.
한혜미_ 저도 악기를 시작한 시기는 남편과 비슷해요. 어머니가 성악가셔서 어릴 때부터 제가 음악가가 되길 바라셨거든요. 그래서 유치원을 다닐 즈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제가 하기 싫어하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첼로로 악기를 바꿨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악기를 연주해본 적이 없어요. 그때만 해도 첼로 전공자가 흔치 않아서 악기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품격에 매료됐죠.
Q.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는 어떻게 입단하게 되셨나요?
여수은_ 제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당시는 한국 오케스트라의 해외 공연이 활발하던 시기였어요. 먼 타국 땅에서 서양 악기를 든 한국인 연주자들을 볼 때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그전까지 오케스트라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2006년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단원이었던 학교 후배를 만나 오디션 소식을 듣게 됐어요. 차를 빌려 만하임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한 시간 넘게 달려온 게 운명인가 싶었죠. 운명적 만남을 만들어준 그 후배는 비올라 파트에서 저와 함께 연주하고 있어요.
한혜미_ 저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소속된 분들과 인연이 많았어요. 초등학생 때 첼로를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고 만난 레슨 선생님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객원 연주자셨어요. 그분에게 배우는 동안 공연 이야기를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오케스트라 연주자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던 것 같아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다닐 때 지휘 레슨을 해주신 박은성 교수님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지휘봉을 잡으셨고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관심이 생겼죠.
#슬기로운 연말 생활
한해의 마지막을 특별하게 보내는 방법
Q.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연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혜미_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연말이란 여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어요. 바로 '호두까기인형'이죠. 국립발레단과 함께하는 <호두까기인형>은 저희가 매년 연말마다 해온 공연이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요.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에게는 아마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그런 느낌일 거예요. '제야 음악회' 같은 연말의 클래식 공연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대표 레퍼토리니까요. 두 곡 모두 12월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자 오케스트라 연주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에요.
Q. 연말을 보내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여수은_ 앞서 얘기한 대로 크리스마스는 <호두까기인형>와 함께 보내요. 그래서 매해 친한 단원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요. 공연하기 전에는 한 가족처럼 소소한 파티 분위기를 내고, 무대 위에서는 연주자로서 관객들을 위해 시너지를 내는 거죠. 단원들은 서로를 '코심 가족'이라고 부르는데, 동료애가 끈끈해서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실제로 함께하는 시간도 길어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사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저희 말고도 부부 단원이 좀 있는 편이에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썸'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한혜미_ 저희 아이의 생일이 12월 23일이에요. 남편은 출산일에도 아기 탯줄을 끊어주고 바로 <호두까기인형>을 연주하러 갔어요. 그래도 단원들에게 열렬한 호응과 축하 박수를 받았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던지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호두까기인형>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의미 있는 공연이지만, 아이와 함께 더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함도 늘 있어요. 대신에 생일파티만큼은 성대하게 열어주려고 파티용품을 잔뜩 사서 집을 꾸미고 매년 사진을 찍어 남기곤 해요. 올해는 아이가 7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해인데,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처음 본 해이기도 해서 감회가 새로웠어요.
Q. 2021년을 되돌아보며 기억에 남았던 공연이나 추억이 있다면요?
여수은_ 올해부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는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교육하는 '코리안심포니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진행했어요. 참가자들과 1:1멘토링을 통해 레슨도 하고, 같이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눈 시간이 쌓이면서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싱가포르에서 온 한 참가자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봐서 한국말을 거의 알아듣더라고요. 12월 4일에 각 파트의 수석 단원과 참가자들이 <우리들의 여행>이라는 음악회를 선보였는데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한 무대가 굉장히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그리고 42개국 166명의 지원자가 참여해 성황리에 막을 내린 'KSO 국제지휘콩쿠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연주자들은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주하느라 진땀을 뺐지만요. 1, 2차 예선부터 결선까지 아내와 함께 무대에서 연주했는데, 후보자가 많은 예선 때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경이었죠. 이상한 건 몸은 점점 지치는데, 지휘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음악에 가슴은 벅차올랐어요. 고통이 심한 만큼 희열이 커진 탓에 기억에 남았나 봐요.
한혜미_ 저는 올해는 아니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인생 공연'이 있어요. 2012년 가을 체코 프라하로 떠난 신혼여행 중에 본 베토벤 3중 협주곡 공연이죠. 저와 남편은 우연히 세계적인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Gautier Capuçon)의 공연 포스터를 봤고, 무작정 공연장에 들어가 표를 샀어요. 공연장은 무대가 낮아서 객석 맨 앞자리에 앉은 저희는 협연자와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었어요. 카푸숑 형제와 피아니스트, 그리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선보인 무대는 감동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어요. 특히 기교를 절제하면서 첼로 고유의 음색을 살리는 고티에 카푸숑의 연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고요. 그 후로 한동안 카푸숑에게 첼로를 배우겠다며 유학을 보내달라고 남편을 괴롭혔어요.
#다시 시작할 너에게
새로운 설렘으로 맞이하는 새해
Q. 새해를 앞두고 세운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둘 다 연주한 지 10년이 넘고 연습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어요. 현악기 연주자들은 아무래도 손목, 어깨, 목 관절과 근육에 통증이 생기기 쉽거든요. 연주하다가 갑자기 팔이 안 돌아갈 때도 많아 마사지를 받는 데 지출이 늘고 있어요. 골병이 들 때까지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한 것 같아 새해에는 운동을 꾸준히 해보려고요.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하는 뻔한 결심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금방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같은 오케스트라에 있으니 일정이 같아서 함께 시간을 활용하기가 좋거든요. 잘 관리해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좋은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Q. 2022년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올 한 해 지휘자가 공석이었어요. 단원들은 여러 객원 지휘자와 연주해보며 무대 위에서 좋은 호흡을 찾으려 애썼고요. 2022년 시즌을 맞아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David Reiland)가 제7대 예술감독으로 선임됐어요. 외국인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건 창단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에요. 라일란트와 함께 2021년 <교향악축제>를 공연했는데, 무대에서 단원들의 열정을 잘 끌어내서 모두가 좋아했어요. 섬세한 지휘로 풀어내던 연습 때와는 달리 공연장에서는 관객이 원하는 대로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고요. 교향악을 비롯해 오페라나 발레 음악에도 풍부한 경험을 갖춘 그가 음악적 매너리즘을 탈피하는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지 않을까 싶어요. 2022년 시즌의 슬로건인 '뉴 웨이브'와도 잘 어울리는 음악가인 것 같아요. 1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예술감독 취임연주회를 시작으로 올 하반기에는 네 차례에 걸쳐 '다비트 라일란트의 픽(DR's pick)' 공연도 진행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