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피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클 Nov 19. 2020

오페라 속 최악의 빌런들

치밀한 소시오패스 이아고 vs 악질적 사디스트 스카르피아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모두가 가질 수 없어"

이아고_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이아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오텔로 Otello>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오페라의 제목이기도한 오텔로는 사이프러스의 총독이다. 그는 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승진인사를 단행한다. 그리고 그가 총애하는 부하 카시오가 이아고를 제치고 승진한다. 심지어 훈훈한 외모까지 겸비한 카시오 때문에 이아고는 폭발한다. 그렇게 승진 인사에서 밀려나 불만을 품은 이아고는 오텔로와 카시오를 은밀하고도 위대하게 박살 낼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에게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시작한다. 이아고는 '빡친 소시오패스의 찐텐'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악함과 비열함을 당당히 인정한다. 당신의 멘탈 컨디션이 대체로 온전한 상태에서 이 가사를 듣는다면 분명 영화 <베테랑>의 유아인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대충 어이가 없다는 뜻)



오텔로와 데스데모나를 바라보는 이아고 ⓒ국립오페라단




"나는 그의 모습 그대로 나를 창조하신 잔인한 신을 믿지. 
그리고 노여워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노라. 
비열함의 세포나 원자로부터 나는 비열하게 태어났어. 
난 비열한 놈이야. 왜냐하면 난 인간이며 내 몸속에 태초의 악함을 느끼니까"

- 이아고 테마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Credo in un Dio crudel)' 중 



이아고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우선 오텔로에게 다가가 그의 부인인 데스데모나와 그의 부하 카시오가 서로 심상치 않은 관계임을 교묘하게 암시한다. 그렇게 오텔로의 마음속에서 의심을 자라게 하며 심리를 조작한다. 직접적으로 육체에 해를 가하진 않지만, 정서적인 학대를 가하는 이아고의 모습은 치밀하고 악질적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오텔로는 부인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작은 불씨가 번져 활활 타오르며 비극적인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그래, 위대한 하늘에 맹세한다(Si, pel ciel marmoreo giuro)' 오텔로와 이아고의 복수의 이중창



오텔로가 부인에 대한 의심이 폭발한 것은 단지 손수건 한 장 때문이었다. 카시오에게서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이 나온다. 이아고는 오텔로의 심리를 꿰뚫어보며 중요한 포인트에서 손수건 트릭을 사용한다. 이로써 이아고는 오텔로의 의심을 성공적으로 빌드업하며 목표를 달성한다. 겨우 손수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까닭으로 오텔로의 부인 데스데모나는 남편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텔로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오텔로는 이아고가 자신을 조작한 엄청난 빌런임을 깨닫고 자책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름다운 노래로 수놓았던 고품격 막장극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오텔로 시즌2가 제작된다면 그것은 이아고의 또 다른 복수극이었을 것이다. 이 음모의 배후가 이아고임을 밝힌 것이 바로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였는데, 이아고의 성격상 에밀리아를 그냥 둘리 없기 때문이다. 오텔로 그 후의 이야기 이아고 시즌2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당신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스카르피아_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토스카 Tosca>에 등장하는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디스트적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당대 미모의 오페라 가수 토스카를 탐한다. 그래서 스카르피아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토스카의 연인 카바라도시에게 정치범이라는 누명을 씌워 체포한다. 체포 후 스카르피아는 토스카가 지켜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카바라도시를 고문하며 벌어지는 상황을 온몸으로 즐긴다. 이후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를 총살할 것을 명하고, 토스카는 그녀의 연인 카바라도시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애절한 그녀에게 비열한 스카르피아는 몸을 요구한다. 그 방법만이 카바라도시를 풀어 주는 조건이라고 덧붙이며. 여전히 스카르피아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즐기며 사디스트적 면모를 보인다.




'가라! 토스카(Va, Tosca!)' 토스카를 향한 스카르피아의 음흉한 잔학성이 드러나는 노래




"난 노래에 살며 사랑에 살며 남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았는데 (...)  
내가 고통 당할 때 어찌하여 하나님은 나를 홀로 내버려 두십니까"
- 토스카 테마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



결말부터 스포일러 하자면, 결국 토스카는 협박에 못 이겨 스카르피아에게 몸을 허락하기로 한다. (응?) 이에 스카르피아는 가짜 총알을 사용해서 거짓 처형을 할 것이라 토스카에 약속한다. 약속을 받아낸 토스카는 스카르피아를 살해한다. (응???)




"이것이 토스카의 키스다!(Questo è il bacio di Tosca!)"라 외치며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는 토스카 ⓒ국립오페라단




그런데 스카르피아가 죽은 후에도 '파파괴', 파도 파도 괴담이 계속 딸려 나온다. 그의 약속은 모두 거짓이었다. 애초에 카바라도시를 살려줄 생각도 없었다. 결국 카바라도시는 가짜 총알이 아닌 진짜 총알을 맞고 사망한다. 그리고 토스카 역시 성벽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동화의 라스트팡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면, 오페라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건 거의 국률이다.


-

승진 안 시켜준 상사 부부를 치밀한 계략으로 파괴하고 조롱한 이아고, 입만 열면 거짓말인 데다 권력을 이

용해 어떻게든 해보려고 들이대는 스카르피아. 당신이 생각하기엔 둘 중 누가 더 최악의 빌런인가.




글쓴이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이는걸 좋아한다. 주말엔 보통 나이든 고양이와 함께 음악을 듣는다. 전세계 작곡가 묘지 찾아다니는걸 좋아한다. 음악 편식이 심하다. 모차르트를 가장 좋아한다. 장례식에는 꼭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틀어달라고 말하고 다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