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클 Oct 06. 2021

바이올리니스트
신은진의 기록

설렘과 환희의 울림 Op.71




#I’m_나라는 사람


85년생 신은진

인형을 좋아하고 친구 사귀기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초등학생 시절을 거제도에서 자연과 동물을 자주 접하면서 보냈고 덕분에 밝고 씩씩하게 큰 것 같아요. 부모님을 닮아서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주말에는 가족들이 모여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 가요나 만화, 영화 OST를 부르곤 했죠.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만큼은 단 한 번도 싫증을 내본 적이 없어요. 입시 준비로 힘든 시기에도 바이올린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고 깼으니까요. 사실 지금의 저는 어린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스스로 여리고 단순한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긍정적인 성격이라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른다고 생각하고, 지나간 일은 크게 후회하지 않는 편이에요. 악기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예요.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 공연을 함께한 바이올린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노력하는 만큼 소리가 더욱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이해가 빠른 편이 아니라서 뭐든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서로의 합이 중요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더 집중하고 노력해요.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 신은진의 앨범 사진들


바이올리니스트 신은진

처음엔 옆집 언니가 들고 다니던 바이올린 케이스가 참 예뻐 보였어요. 그 속엔 어떤 악기가 들었는지 궁금했고 언니네 집에 가서 구경도 했죠. 줄과 활이 닿아서 소리를 내는 게 마냥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언니를 따라서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됐어요. 열 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는 바이올린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즐겨본 디즈니 만화 속 공주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멋진 음악가가 된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죠. 예중·예고를 거쳐 바라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꿈이 더 확고해졌어요. 프로필을 줄줄 욀 정도로 음악 잡지에서 눈여겨본 유명 음악가들이 교수님으로 계셨고, 음악계에 잘 알려진 연주자들은 학창 시절의 소중한 친구가 됐거든요. 그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어울리는 하루하루가 감사했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성장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이젠 그 친구들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무대에 같이 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반갑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싶어요. 좋은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오르며 심장이 뛰는 전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황홀해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음악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도 보람을 느껴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입단 전에 청소년오케스트라 학생들과 캠프도 가고, 함께 연습한 적이 있는데, 어엿한 대학생이 된 그들과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어요. 연주자로서 주변 사람들과 많은 관객에게 음악의 순간들을 선물할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정말 좋아요.


(좌) 예중, 예고 동기이자 친구인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우) 청소년 오케스트라 캠프에서 제자들과 찍은 사진





#Music_ 개인적 취향


85년생 신은진

저에겐 사랑스러운 네 살배기 딸이 하나 있어요. 이제 제법 말도 잘해서 대화가 통해요. 딸도 저를 닮았는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발레도 좋아해요. 같이 음악을 듣고 노래하거나 인형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요즘은 어머니까지 합세해 시간이 나면 세 모녀가 함께 서울 근교에 드라이브를 가곤 해요. 어느 날은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다녀오기도 하고, 평창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창문을 열고 구경만 하다 온 적도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마음 놓고 거리를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우리 가족만의 방법으로 데이트를 즐기고 있어요. 현재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육아'에요. 엄마가 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매 순간 딸과 교감할 수 있어 보람을 느껴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책도 많이 샀는데, 생각보다 읽을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틈틈이 오은영 박사님의 유튜브 영상이나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배우려고 해요. 아이에게서 문제를 찾기보다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방송인데, 육아 외에도 인간관계, 음악, 교육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어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요.


(좌) 사이좋은 세모녀 (우) 딸 지민이, 반려견 럭키와 함께하는 시간


바이올리니스트 신은진

매일 출퇴근길에는 스위스의 클래식 앱인 'Radio Swiss Classic'을 빼놓지 않고 들어요. 독일어로 곡을 소개해주니 해외에 있는 듯한 기분도 들고, 종종 제가 연주했던 곡이 나오면 반갑더라고요. 가끔은 철모르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90년대 댄스 음악을 검색해서 들어요. 'H.O.T', 'S.E.S', 'god' 같은 가수들의 음악이죠. 그중에서도 롯데월드에서 털옷을 입은 채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H.O.T.의 '캔디'를 가장 좋아해요. 

클래식 작품 중 청취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는다면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이에요.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호두까기 인형'을 가장 좋아하고, 계절과 무관하게 늘 설렘을 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에 국립발레단과 예정된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소돼 아쉬움이 컸어요. 워낙 발레 음악을 좋아해서 국립발레단과 자주 협연하던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거나 음반을 사서 듣기도 해요. 연주자로서 좋아하는 곡은 절도 있는 리듬감이 돋보이는 말러의 교향곡 제6번 ‘비극적(Tragic)’이에요. 제가 운전할 때 즐겨듣는 곡이기도 해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 연주: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





#Outlook_ 세계관


바이올리니스트 신은진

바이올린은 사람의 입체적인 기질과 닮았어요. 4개의 현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음역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바이올린만이 가진 E현은 유리가 깨질 듯한 소리도 내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주는 반전이 매력적이에요. 저는 음악에도 어머니의 마음 같은 사랑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연주자로서 이런 음악을 표현하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해요. 자신을 믿을수록 더욱더 열정과 노력을 쏟으니까요. 연주가 잘 안 될 때 필요한 건 늘 고민보다 연습이었어요. 요즘도 연습이 잘 안 될 때는 혼자 녹음을 해서 검토해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는데, 고민을 길게 하기보다 연습에 매진하고 최대한 그 시간을 즐기려고 해요. 그러다 메트로놈 배터리를 갈아야 할 때가 오면 '열심히 했구나'하는 뿌듯함도 느껴요. 오케스트라에서는 여럿이 한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듣거나 지휘를 따라가며 연주하지만, 솔리스트는 스스로 지휘자의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둘 이상의 연주자가 함께하려면 다른 파트의 솔리스트와 견줄 만한 책임감, 협동심, 배려도 중요한 덕목이고요.



코심 단원 신은진

우연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디션 공고를 보고 곧바로 응시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액섭(excerpts, 오케스트라 곡 중 까다로운 부분을 발췌한 솔로 연주)'이 무엇인지도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후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객원 연주를 해볼 기회가 있었고, 인생 첫 오케스트라를 경험하게 됐어요. 단원들의 분위기가 좋아서 다시 오디션을 보기로 결심했고 전보다 철저하게 준비해 당당히 합격했어요. 당시 만 24세였던 저와 입단 동기 한 명이 바이올린 파트의 막내였는데, 요즘 신입 단원들을 보면서 제가 처음 합류했을 때 힘이 돼 주셨던 단원분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현재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제2바이올린을 맡고 있는데, 제2바이올린은 제1바이올린이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멜로디를 들으면서 적극적으로 깊고 진한 소리를 내야 해요. 이런 역할은 오케스트라 연주뿐 아니라 베토벤 현악 5중주 '폭풍'처럼 악기의 조화가 돋보이는 실내악 연주에서도 중요하죠.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다른 연주자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실수를 줄이면서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저는 우리 단원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코심 가족'이라는 단어가 정말 좋아요. 함께할 때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무대 위에서 '하나'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베토벤 현악 5중주 다장조 Op. 29 ‘폭풍’ – 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1:24)





#STAGE_ 무대 위 순간들


바이올리니스트 신은진

학부 시절 전자음악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디지털 음악 공연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악보에 적힌 초 단위의 지침을 따르면서 기계가 내는 소리와도 맞춰야 하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이어폰 줄에 초시계를 꽂은 채로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늦은 밤까지 전자음악실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열심히 연습했고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게 됐는데 평가가 좋았어요. 덕분에 해외에서 활동하시던 박태홍 교수님의 전자음악 음반 녹음도 참여할 수 있었죠. 제 연주를 인정받아 기쁘고 행복했던 경험이에요. 그런 경험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심장이 뛰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사랑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계속 부족함을 채워 나가 성장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언제나 진심은 통한다고 믿기 때문에 매 순간 정성을 다해 연주하면 '음악'이라는 사랑의 언어가 결국 전달될 거로 생각해요. 그리고 제 음악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아프거나 심적으로 지쳐가는 분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코심 단원 신은진

저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좋아했어요. 예쁜 것들에 약한 편이죠. 그런 제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이후 발레 음악을 연주하게 되니 정말 좋았어요. 인형처럼 예쁜 무용수들의 무대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러다가 2019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당시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리나로 활동하시던 김지영 선생님의 은퇴 공연 <지젤>을 함께하게 됐어요. 커튼콜이 시작되자 무대 위 대형스크린 화면에 국립발레단의 일상과 무대가 담긴 영상이 상영됐고, 발레 단원들은 하나둘씩 나와 선생님께 꽃을 선물하며 인사를 나눴어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 발레곡 '지젤'의 느린 부분을 연주했어요.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 무대를 하는 기분이 어땠을지 공감도 되고 많이 울컥했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단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더라고요. '영원한 지젤'로 불렸던 김지영 선생님과 마지막 무대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정말 영광이었어요. 여전히 발레 공연을 앞두고 있으면 늘 설레요. 지금까지 멋진 분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해요. 코로나19로 취소됐던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올해는 꼭 무사히 무대에 오르길 바라요.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지영 퇴단 세레모니 – 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글쓴이 이리 (공공문화 칼럼니스트)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능한데 끈기가 부족하다. 일 처리를 해놔야 속 편한데 게으른 편이다. 결단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데 만든 회사 이름이 '슬로우모어'다. 완벽한 문과 체질인데 뼛속부터 이과 체질인 남자와 살고 있다. 잘하는 건 없는데 시키면 다 한다. 부캐는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는데 본캐는 철저히 상업 예술로 벌어먹고 산다. 한 마디로 일관성 없는 것이 일관적인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원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