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 걱정하지 마세요
2013년, 나는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스페인어를 아직도 기억한다.
한국인이 거의 없던 그곳에서, 이 말은 내게 가장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어학연수를 위해 떠났던 그곳에서 스페인어가 서툴러 말이 막힐 때도, 길을 잃어버렸을 때도,
공항에서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현지인들은 내게 'No te preocupes'라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위기의 순간뿐만 아니라 정말 사소한 순간에도 이 말을 건네주었다.
빵집에서 내가 찾던 빵 다섯 개 중 하나가 없다고 하자 사장님은 그 상황에서조차도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었다.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왠지 허전했다.
TV에서는 반가운 한국어로 뉴스와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반대로 누구도 내게 'No te preocupes'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금도 나는 종종 그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의 표현을 넘어서 남미인들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효율성이나 완벽함보다 인간적인 교감과 현재의 순간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무언가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길을 잃어도 - 그것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라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No te preocupes'는 'pre(미리)'와 'ocupar(생각하다)'가 합쳐진 부정어로,
"미리 생각하며 마음 쓰지 마세요"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더 깊어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있잖아요"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때로는 "긴장하지 마세요", "당황하지 마세요"라는 뉘앙스로도 쓰인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타인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도 이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물건 한두 개 쯤 깜빡하고 못 사도 괜찮고, 때로는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지갑은 두꺼워져서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검은 색으로 때가 타들어가는 지금 2025년의 어느 날.
우리 세상, 사회는 어떤가.
괜찮아요.
걱정마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이렇게 상대를 위로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말을 아예 할줄 모르는 벙어리 사회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지구 반대편, 그들의 문화가 새삼 그리워진다.
지금도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No te preocu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