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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해야되는 결혼이니까?

결혼준비에 박차를 가해라(?)

가을비가 내리는 11월의 첫날.

몇 년 전 가을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부모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날은 부모님과 장가가는 이야기로 티격태격했다.

마치 정해진 레일 위의 열차처럼, 모든 게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31살, 딱 그 나이가 되니 결혼이란 역에 정차해야 한다고. 아니, 무조건 정차해야만 한다고.


그분들의 멘트는 이러하였다.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 준비에 박차를 가해라."

"어차피 해야 되는 거 (...)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얼른 찾아봐."






최대한 성의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아빠, 결혼은 나이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내 말은 별로 통하지 않았다.

평생을 교사로 사신 아빠는 모든 일에 정해진 답이 있다고 믿으시나 보다. 62세에 정년퇴직하고,

그때쯤 자식들 결혼도 다 시키고... 그게 아빠의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인생인가 보다.


솔직히 난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너무 가까이서 지켜봤다. 잦은 다툼, 폭력, 별거까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는데, 왜 나한테는 꼭 결혼하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할 결혼이니까 이것저것 만나보면서 알아봐"라고 하시는데,

아들의 삶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서운하다.




내 말은 마치 먼 우주에서 온 전파처럼 닿지 않는다.

가끔은 일부러 결혼하기 싫어진다. 당신들의 시나리오대로 살면 진 것 같아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당신들 쓴 대본대로 살아야 하나? 마치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IF 30살 이후 THEN 결혼'이라는 명령어에 따라 움직여야 하나?


사랑이란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당신들이 보여준 건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이란 걸 배웠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결혼만이 답이라 하시니... 마치 구멍 난 배를 타라고 등 떠미는 것 같다.


나는,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당신들의 '정답'이 아닌, 내 삶의 '답'을 찾고 싶다.

언젠가는 이해하실까? 아니, 이해하지 못하시더라도 좋다. 그저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으면 할 뿐이다.

한숨만 가득한 어느 눈 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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