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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거지.

by 한눈팔기

최근 오빠와 나의 연애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미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를 보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 너무 궁금해. 미국 갔다 오면 오빠랑 어떻게 할건데? 결혼하는거야?"

그러면 그냥 웃으며 말한다.

"나도 모르지, 어떻게 될지."


오빠가 돌싱임을 모르는 친한 오빠와 간단하게 맥주한잔을 할때 였는데, 나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서희야. 나 궁금하다. 너 어떻게 할거냐? 미국 갔다오면 바로 결혼하는거야?"

"아니오.. 잘 모르겠어요.. 할 수 있을까..못할것 같은데..."

"그러면 네가 네 남자친구 놔주는게 맞네. 네 남자친구 나이도 있는데,

널 기다리게 하면서 1년을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 그건 아니지.

갔다와서 여전히 너희 둘 마음이 전과 같다면 다시 잘 만나면서 결혼을 할지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 되겠지만

떠나는 네 입장에선 네가 무조건 잘못인데, 남자친구 놔주고 서로 편하게 1년간 지내보는게 낫지. 안그러냐?"

"오빠... 내가 오빠한테 하지 못한 얘기가 있었는데... 사실 남자친구가 애가 있어요. 돌싱이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거에요"

"아...........사실 네 남자친구 봤을때 그냥 그런 느낌이 들더라. 돌싱이겠구나.

내 나이쯤 되면 딱 보면 어느정도 감이 와. 나는 일하면서 수도없이 사람들 만났어. 딱 보면 알거든.

근데 애까지 있을줄은 모르긴 했지.

그러면 굳이 헤어질 필요는 없겠네. 네 입장에서는.

네 남자친구가 네가 없는 동안 누군가를 애써 만날 이유가 없으니까.

근데 결혼에 대해서는 서로 얘기해봤어?"

"남자친구가 아이가 다 클때까지는 결혼 생각이 없대요. 애가 걱정돼서요..

그러면 나는 나이들어 꼬부랑 할머니인데.. 그래서 나도 모르겠어요.."

"그래.. 근데 애도 금방큰다. 열살이면 조금있으면 중학교가고 고등학교 가겠지.

지금은 네가 힘들겠지만,

그 애도 고등학생 될때까지도 너랑 네 남자친구랑 잘 만나고 있다면

분명 너한테 얘기할거야.

우리 아빠 오랜시간동안 행복하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아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겠지"

이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이 오빠가 뜬금없이 내 앞에서 울어버린다.

"아니 나도 안 우는데 오빠가 왜 울어요."

"나 갱년기인가봐. 갑자기 이 말 하는데 왜이렇게 울컥하냐..."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로 거의 25년 가까이 본 적이 없다가 SNS를 통해 나를 찾아준 반가운 친구여서

여름에 한번 만난 뒤로 두번째로 만난거였다.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해서 7년째 잘 살고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당시의 친구들과도 계속 연락을 하고 잘 지내고 있는 친구였다.

처음 만났던 여름에는 남자친구의 존재에 대해 얘길하며

오빠에 대한 자랑을 구구절절 늘어놨었는데

최근 만나서는 답답했던 내 마음이,

어린 시절 친구에게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외치고 싶던 마음을 이겨버리고

오빠의 현 상황과 나의 심정을 이실직고 하고 말았다.

친구를 만나러 갈때 절대 내 얘기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그냥 지금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아무나 잡고 내 얘기를, 내 속내를 다 드러내놓게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울며불며 초등학교 친구를 붙잡고 넋두리를 했다.

가만히 듣던 친구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미국 잘 갔다와. 너 갔다오면 내가 우리 제부들 다 불러들여서 너 결혼할때까지 소개팅 해줄테니까. 우리 제부들 다 잘 나가. 그러니까 너 걱정하지마. 그리고 오빠랑은 연애만 해."



친한 언니가 밥을 사준다고 해서 평일 점심 언니와 피자한판을 먹다가 또 넋두리를 했다.

언니는 말한다.

"미국가서 잘 놀다와. 오빠가 놀러오면 오빠랑 좋은 추억도 만들고.

그러고 나서 오기 직전에 네가 결정해. 오빠가 결정하게 하지 말고 네가 해야돼.

꼭 한국 들어오기 전에 결정 끝내."

언니는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가고 나는 집에 혼자 오는길, 벌건 대낮에 혼자 코인노래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누른 이 노래를 부르다가 말고

가사를 보며 멍해져버렸다.

그동안은 이 노래의 가사의 처연한 심정이 추상적이기만 해서 와닿지 않았는데,

이 날 이 노래를 부르다가

내 상황과 마음을 그대로 다 옮겨적어놓은것 같고,

머지 않은 내 모습을 미리 보는것만 같아서,

화면만 멍하니 쳐다보다 끝내 펑펑 울었다.


오빠와의 이별을 생각하면,

내가 힘들 일보다

혼자 남아있을 오빠 뒷모습이 상상돼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

내 친구들에겐 분명 오빠보다 소중한 나인데.

나는 나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빠의 어두운 표정이 상상돼서

울음을 멈출수가 없는걸.

온 얼굴로 나를 보며 웃어주는 오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게 바로 나때문이라면.

더는 오빠를 안아줄 수 없고 손잡아줄 수 없다면.

나는 얼마나 미치게 괴로울까.

이별 한 뒤에 조금이라도 극복되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때까지

어느만큼의 세월을 보내야 할까.

평생을 겪어내도 될까.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마를 수는 없는거잖아.

얼마나 보고 싶을까.

얼마나 말하고 싶을까.

얼마나 껴안고 싶을까.

얼마나. 얼마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일부러 몇 발자국 물러나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널 바라본다

옆자리 허전한 너의 풍경

흑백 거리 가운데 넌 뒤돌아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널 떠날 수 없단 걸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이별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두세 번 더 길을 돌아갈까

적막 짙은 도로 위에 걸음을 포갠다

아무 말 없는 대화 나누며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한 발 한 발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너와 맞잡은 손이 사라지는 것 같죠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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