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나도 웨딩드레스는 입고 싶어.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자고 생각한지 2주째인가.
섭섭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이 작아지니까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오빠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나혼자 행복한 우리 미래를 상상했을 때만 해도
재희가 이렇게 저렇게 공부에 더 친숙해지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제넘게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오빠에게 초등학생 아이가 읽으면 좋을 책은 뭐가 있을지도 찾아주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재희가 간밤에 오빠에게 떼를 쓰거나 화를 낸 이야기를 들으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걸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들도 전같지 않게 흘려듣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아쉽지도 않고 섭섭하지도 않다.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온 기분이 들어 후련하다.
얼마전 친해지게 된 동생과 식사자리가 있던 오늘.
동생은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라서 그런지, 1년반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던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몇 주간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혼전임신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결혼식 날짜를 11월 초로 잡았단다.
결혼식을 거창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조그만 야외 웨딩으로 진행할 거라며
급히 식장 예약, 청첩장 결정, 스냅사진 업체 결정, 커플링 맞추기까지 정신없는 한달을 보냈다고 한다.
동생을 축하해주면서 동생이 결정했다는 분위기 좋은 야외 결혼식장, 요즘 트렌드인 상큼발랄하고 분위기 있는 스냅사진들, 며칠전 결정했다는 명품 커플링까지 같이 보았다.
보는 내내 너무너무 부러웠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나누지 않았는데도 하루 아침에 마음먹자마자 양가 인사를 드릴 수 있을 만큼
서로 걸릴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부럽기만 했다.
나도 조금 더 어릴때 마음의 결단을 내렸어야 했는데, 재고 따지고 뒷걸음질만 치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고 헛헛하기만 했다.
뜻밖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동생의 얘기를 들으며 함께 기뻐해주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쓸쓸한 바람 소리가 났다.
나도 이런거 한번쯤은 하고 싶은데.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도 남자친구와 행복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죽기 전에 할 수 있을까.
웨딩드레스 한번도 입어보지 않고 나이가 들고 할머니가 되어도 억울하지 않다고 말할수 있을까.
"언니 내 결혼식에 남자친구랑 같이와요, 그리고 언니도 얼른 결혼해요. 내가 다 알려줄게"
라고 말하는 동생 앞에서
내 남자친구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수가 없다고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빨리 다른 사람 찾아야겠네." 라고 말하는 동생 앞에서 "그래야겠지"라고 대답할수 밖엔 없었다.
이번 주말, 사촌의 결혼식이 있다.
또 한번 흔들리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모처럼 꾸민 예쁜 모습 오빠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보여주러 달려가겠지.
오빠를 보면 결국, 다시 한번 흔들리고 말 것이다.
타인의 결혼식.
그 끝의 행복한 행진을 보고 있다 보면
내 발걸음이 어디로 가야 할지, 내눈앞에 선하게 보일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