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대화
지난 연재 이후 벌써 2주가 지났다.
재희와 오빠와의 글램핑을 마치자마자, 오빠와 나는 둘이서 제주도로 떠났었다.
글램핑 후 혼자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던 일,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고민과 번뇌.
내 마음은 그렇게 너덜너덜해져버렸지만
오빠에게 잘못이 있는게 아니니까
최대한 이성을 붙잡자고,
제주도 여행만큼은 기분 풀고 즐겁게 다녀오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도 오빠와의 첫 비행인데 신나고 기분 좋기도 하고 기대되는 마음이 컸다.
도착한 날은 많이 흐렸다.
제주도 도착을 축하하며 전복죽과 전복구이,보쌈, 물회에 쏘맥 한잔을 말아서 마셨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었다.
해변가에 들렀다가 바다위에 떠있는것 같은 숙소에 도착했고,
우리는 회를 포장해와서 와인과 막걸리와 함께 먹기로 했다.
동문시장에서 여러가지 안주를 사들고 들어와 바다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대화는 시작됐다.
5시부터 12시까지.
재희와 글램핑 다녀온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꺼내며 시작됐던 대화.
글램핑 내내 오빠도 내눈치를 많이 봤나보다.
더욱이 글램핑 이후 기운이 빠진 듯한 내 목소리를 들으며 오빠는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냥 느낌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구나 라는걸.
"서희야. 이번에 오빠랑 재희랑 같이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많이 힘들었지? 괜찮았어? 어땠어?"
"나는 오빠랑 재희랑 너무 좋은 시간이었고, 물놀이도 너무 재밌었고
재희도 너무 예쁘고 착하고 너무 좋았는데......근데 뭔지 모르게 너무 힘들었어.
그냥 오빠와 재희는 가족이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같이 느껴지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도 싫고..
이거 오빠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을거야. 설명하기가 솔직히 어렵거든.
근데 오빠에게 나 사실은 힘든 시간들이었다고 말해줘야 될 것 같아."
이 말을 하면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엉엉 울면서 말하고 말았다.
오빠 바로 앞에서 오빠를 보며 운 적은 이게 처음이었다.
"아. 울면 어떡해......그래. 다 말해줘. 그래야 오빠도 알지. 서희가 뭐땜에 힘든지.
솔직히 어떤 감정인지 오빠는 다 이해하기 어렵긴 해. 무슨 마음인지 잘은 와닿지 않아.
서희 성격에 아이 만나는거 힘들었을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하나도 내색하지 않고 재희랑 잘 놀아줘서 나 너무 좋았어.
나를 만나주는것부터 난 그냥 서희가 너무나 존경스러워."
"그리구 오빠.. 나 씻고 나왔는데 재희가 재희
엄마랑 통화하고 있더라.
내가 숨죽여서 밖으로 나와서 통화 끝날때까지 못들어가고 밖에서 땀흘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내가 마치 죄인이 된것 같았어.
그때 나, 아 이 관계 힘들겠다.
아이랑 전처, 오빠랑 전처, 평생동안 연락하고 지내야 하는 사이인데
나는 그거 평생 들을 자신 없어. 감당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헉 서희가 오빠랑 평생을, 미래를 생각했었다는게 나는 너무너무 감동이야.
우리 그런 얘기 한적이 없잖아.
내가 먼저 말할수는 없는 거구.
근데 서희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맞아?"
아.......말렸다.
나 몰래 속으로 우리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는거.. ㅜㅜ
"아.. 응..ㅠㅠ 처음에는 몰랐지만 오빠가 더 좋아지고 우리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오빠랑 평생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근데 걸림돌이 있으니까... 혼자서 너무 힘들기만 했어"
"서희가 그렇게 생각해줬다니 오빠는 너무 고마워.
오빠는 평생 같이 있고 싶어 서희랑. 우리 정말 그렇게 하자. 안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잘될수도 있는데 왜 자꾸 걱정부터 해~
그리고 서희가 전처에 대해 너무 신경쓰는것 같아. 그러지 않아도 돼.
걔랑 나는 다 끝났고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해서 듣게 된 오빠와 전처의 스토리.
오빠는 내가 전처문제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
전처와 헤어진 이야기를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다 말해주었다.
한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래도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 여자를 욕하게 될까봐,
여태 그 누구에게도 이렇게까지 낱낱이 얘기해본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처음 하는 얘기라며
너무 힘들었었던 이혼 과정에서의 이야기들과 결혼 전의 이야기들을 모조리 들려주었다.
"사실 근데, 지금은 전처가 이혼을 후회하고 있는 것같아.
요즘 자꾸 만나자고 하고, 이런저런 쓸데 없는 소리를 하고는 있어.
근데 서희가 걱정하는 일들,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
하...정말 내가 계속 신경쓰이던 바 대로였다.
전처가 오빠에게 미련이 남아있는 상황..
오빠가 해준 얘기들로 미루어보아 오빠는 어떠한 감정도 그 여자에게 남아있지 않은게 맞지만,
당연히 재희는 무조건 부모가 함께 사는걸 원할텐데.
오빠는 재희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들어줄 사람이잖아.
이게 과연 무슨 상황인걸까.. 어떻게 되는거지..
갑자기 머리가 댕, 하고 울렸다.
하지만 지금 오빠는 나에게 있으니까. 오빠를 믿자. 믿자......
괜한 불안감으로 오빠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헛되게 보내지 말자...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이 문제는 비껴갔다.
그리고 계속된 이야기들.
가족 얘기와 그간 살아온 얘기.
우린 그동안 충분히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을 나눠왔지만
사실 마음 깊숙이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었던거다.
그런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행복했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오빠에게 다 꺼내놓고 나니
정말 이제 오빠가 내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대화를 하며
"와 진짜 우리처럼 대화 잘 통하는 사람 있을까?
이렇게 끊임없이 5시간이고 6시간이고 대화를 해도 계속 할말이 샘솟는 사람들이 있을까."
서로 놀라워하며 너무너무 행복해했다.
"와 너무 좋다. 우리가 만난 그 어떤 날들보다 우리 같이 얘기한 지금 이시간들이 너무 좋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들었다.
그동안 몰랐던 얘기 중에 들으면서 기분 좋았던 이야기 하나.
오빠의 가족들은 모두 내 존재를 안다고 한다.
더욱이 무뚝뚝한 오빠의 아버지는
"그런 여자가 왜 너같은 애를 만난다니.
그 여자 사기꾼이거나 꽃뱀 아닌지 조심해라"
라고 장난까지 치셨다고 한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오빠 가족들 중에 재희만 모르는 오빠의 비밀=나의 존재
7시간동안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세한 이야기들이 생각나지 않는게 제일 아쉽고.
하나하나 짚고 넘어갔어야 할 부분들(전처 문제)을 더 확인하지 못한 것도 아쉽고.
재희가 또 이모 보고싶다고 했다 하더라도,
조금 시간 텀을 두고 만났으면 좋겠다고 내 마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재희가 요즘 또 이모랑 또 워터파크를 가고 싶다고 한단다 ㅠㅠ 큰일이다 ㅠㅠ)
그리고 내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 오빠에게 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것도 아쉽고.
그치만, 재희와 함께 잘 놀아줘서 너무 고맙다는 오빠에게
재희와 오빠가 같이 끌어안고 자고
나는 바닥에 있어서 서러웠고 질투 비슷한 감정이 생겨서 새벽마다 울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오빠와 미래를 약속한 제주도 여행이었다.
그 미래라는게 "결혼"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확인했다.
그걸 말하기가 어려운 두 사람이니까.
입밖으로 말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아직 내가 오빠와의 "결혼"을 꿈꾸는지 "평생의 연애"를 꿈꾸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느낀다.
오빠와의 "결혼"은 우리 둘 사이에도 아이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어서다.
그게 아니라면 나혼자만 희생하고 있다고 평생을 투덜댈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솔직히 오빠를 만나며 내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태어나 처음 해봤다.
오빠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오빠와 아이를 같이 키우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쁠까,
그런 생각을 가끔 했었는데..
왜 난 말하지 못할까.
오빠에게 사랑하는 아이는 재희뿐일텐데 혹여나 부담스럽게 느낄까봐..
일년째 여전히,
어떻게 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는 내 마음.
지금 나는 결정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냥 이길을 오빠와 같이 걸어가련다.
어떻게든 되겠지.
재희도 만나다보면 익숙해지고,
전처 문제도 해결될지도.
어쩌면 더 곤란해질지도.
그러면 뭐가 됐든 결정할 수 있겠지.
어려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