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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욕심과 커져만 가는 애틋함

이 두 마음이 각각 몇퍼센트인지 누가 저울에 달아줬으면.

by 한눈팔기

어제 친구의 웨딩스냅사진을 보았다.

둘의 모습이 표정도 밝고 행복해보이고,

드레스랑 맞춰입은 캐쥬얼한 복장이랑 스냅 컨셉 모든게

다 너무 예쁘고 좋아보여서 부러웠다.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웠다.

어렸을때도 남의 웨딩사진을 보며 부럽다고 느낀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막상 내가 웨딩사진이라는걸

못찍어볼것 같게 되니 정말 절절하게 다가오나보다.

그래서 오늘 아침 오빠와 통화하다가 오빠에게 툴툴댔다.

"나 친구 웨딩스냅 보는데 너무너무 부러웟어. 나는 평생 그런 사진 한번도 못찍어보면 어떡해?

나도 최대한 젊었을때 드레스 입고 사진찍어보고 싶어."

그랬더니 오빠가 "오빠랑 찍으면 되지 왜!"라고 한다.

"오빠는 한번 찍어봤잖아. 한번 찍은 사람이랑 난 안찍을거야!

나 혼자 찍을거야. 비혼식 하면서 나혼자 찍을거야"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고 오빠 마음을 긁어버렸다.

그치만 오빠랑 웨딩사진을 찍는다는건 솔직히 상상이 되지도 않고,

이미 한번 찍어봐서 감흥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옛 추억 떠올리게 하며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

나처럼 모든게 처음인 사람과 떨리는 기분과 결혼식을 앞둔 들뜬 감정을 공유하며

나이가 들었더라도 풋풋해보이는 그런 웨딩사진이 찍고 싶다.



오빠와 만난지 오늘로 435일,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일들보다도 더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나 혼자 앓아왔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 마음도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느낀다.

연애 초반에 나의 온 신경을 거스르던 오빠와 오빠아이, 전처 문제..

이런 문제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더 이상 큰 이슈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오빠가 아이가 다 클때까지는 재혼 생각이 없다는 말을 내게 한 이후로 그랬을게다.

뭔가 내 안에서 오빠에게 가졌던 팽팽한 감정들이 스르르 놓여진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냥 온전히 오빠와의 시간을 잘 보내는데 초점을 두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팽팽한 감정들이 놓여진 자리에 뭐가 남은건지는, 매일 매일, 순간순간 다르다.

오빠와는 더 갈 수 없을거라는 생각. 오빠를 이해하게도 되는 마음.

그렇지만 나를 이렇게 홀로 두어서는 안되는게 아닌가 하는 화가 나는 마음.

이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뭘 얻겠다는 거냐는 자포자기.

그냥 이대로 연애만 하고 살겠다는게 내 처음 마음이었지 않느냐는 자기합리화,

그 모든 감정들은 그 무엇하나 사라지지 않은 채 매번 자리를 바꾸어가며 존재하고 있다.


내 브런치를 앞에서부터 주욱 읽어보곤 한다.

분명 몇달 전만해도 나는, 내가 한 남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에 못견디게 분통터져 했었는데.

요즘에 나는, 나를 만나고 데이트 하느라 아이 돌보기를 소홀히 하게 되는 오빠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전보다 더 많이 들곤 한다.

아이를 뒷전으로 미루고 나와 함께 있으려는 오빠는, 어쩌면 수시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런 죄책감이 얼마나 오빠 스스로를 답답하게 만들까.

그걸 내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나와 같이 있으려고 시간을 만드는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고, 어떨땐 그런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스스로 꾸짖기도 한다.


며칠전 아이가 아픈데도 야근을 해야 해서 밤늦게 집에 돌아왔더니

아이가 엄마에게 가겠다고, 엄마 옆에서 자야겠다고 떼를 썼단다.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 주고 오면서 오빠는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평소에 그런 말 잘 하지 않는 오빠인데.

"아,내 생활은 온종일 서희랑 재희, 일 이렇게 세가지 밖에 없는데, 그게 왜이렇게 벅차냐 정말.."

이렇게 말한다.

오빠의 일상은 솔직히 얼마나 고단할까.

내가 "오빠에게 아이만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한탄하고 있을때

오빠는 아이눈치, 내눈치, 가족눈치 보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언제나 나를 웃겨주려 애쓰며 장난을 친다.


오빠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 오빠에게 나랑 만나는게 어떠냐는 질문을 하면, "그냥 나한테는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야."

라고 대답하는걸 직접 듣기도 하고 건너서 듣기도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오빠는 나를 만나기 전, 이혼과 양육,

친한 친구와의 금전문제, 이런 문제로 우울증이 와서 약을 먹어야하나 고민하던 상태였다고 했었다.

더구나 아이가 부모의 이혼으로 너무 힘들어해서 일까지 그만두게 되었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집에 번개탄까지 사두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를 만났고 오빠는 그때부터 다시 웃게 됐을게다.

지금 오빠는 내 앞에서만큼은 세상 40대 중에 제일 철없고 장난 잘치고 잘 웃는 사람인데

당시 오빠를 알던 사람들은

"서희씨 만나고 나서 기주는 사람됐어. 예전엔 기주

원래 얼굴도 시꺼멓지만 항상 표정이 너무 안좋아서 주변이 다 암흑같았는데 뭐"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내 감정도 내 감정이지만, 오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더 큰것같다.

나도 해외에 나가 있을 일을 생각하면 까마득한데,

혹시 오빠가 내가 없는동안 다시 또 우울해질까봐 걱정이 된다.


전에 오빠가 나에게 갑자기 동영상 하나를 보내며

"이거 예전에 나 혼술할때 찍은거야. 웃기지?"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불이 번쩍번쩍 들어오는 초록색 크리스마스 트리 인형이 혼자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인형이 노래를 마치자 오빠는 인형 앞에 놓아둔 소주잔에 "짠"을 했다.

오빠는 나를 웃겨주려고 보낸건데 난 그걸 보자마자 울어버렸었다.

이 인형을 앞에 두고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시고 있었을, 나를 만나기 전의 오빠가 너무 가여워서.

그 동영상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이런 감정을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만 해도

불쌍하고 안타깝고 마냥 안아주고 싶은 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요즘은 그냥, 오빠랑 떨어져서 혼자 해외에 가겠다고 한게 과연 잘한 일인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생각에 솔직히 한없이 다운되고 울적해진다.

오빠 없이 어떻게 지낼지도 걱정되고, 나 스스로도 이런저런 걱정되는 일이 많은데,

나 없이 오빠 또다시 우울해질까봐 걱정도 되고.

계속 한국에 우리가 같이 있다한들 뾰족한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현재에 집중하자, 지금을 즐기자, 내일의 나는 없을수도 있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

정작

내 마음과 정신은 온전히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그치만 나도 정말 어쩔수가 없다.

오빠 없이 지냈던 옛날의 나를 떠올릴 수가 없으니까.

남자친구 없이도 세상 즐길거 혼자 다 즐기며 살았던, 오빠를 만나기 전의 내모습과 감정과 마음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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