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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Apr 09. 2024

고독은 나를 키운다

"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근 오 년 만에 영화를 보러 갔었다. 영화관에 가는 걸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아내를 꼬시고 꼬셔서 힘들게 같이 갔다. 순전히 혼자 보기 싫어서다. 어릴 적부터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그 관성이 남아 있어 영화관에 가고는 싶지만, 혼자 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꺼리고 있었다. 아마도 혼자 가기에 뻘쭘한 장소를 꼽으라면, 영화관을 첫 번째로 꼽을 것 같다. 특히 멜로 영화를 볼 때 좌불안석이었던 기억이 많다. 정작 남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나만 과도하게 의식해서 늘 불안해했다. '혼자'에 익숙해져야 할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같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타인의 눈길 때문에 혼자 영화관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 마저 혼자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 나는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순,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다. 환갑은 또 어떤가, 육십갑자를 다시 돌아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다.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인생의 의무 기간이 다 끝나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신 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기라는 것. 즉, 타인의 눈길에 휘둘리지 않고 내 주관에 의해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순, 환갑을 뒤로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혼자 있는 것을 어색해하고 같이 어울려야 편안하다. 이제 같이 할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혼자'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즈음 타인의 눈길에 의한 지옥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혼자로서 맞이해야 하는 '외로움', '고독'과도 친해져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외로움이나 고독이 별반 다른 의미가 아니고, 홀로 되거나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찾는 단어로만 간주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으로 되어 있다. 두 단어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홀로', '쓸쓸함'이듯, 허전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영한사전은 Loneliness를 외로움, 고독으로, Solitude를 (특히 즐거운) 고독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즐거운 고독을 언급하고 있었다. 고독이 즐거울 수도 있는가? 그랬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고, '고독'도 두 가지의 의미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외로움'은 말 그대로 연결의 부재에서 오는 괴로운 고통이다. 그래서 우울감과 소외감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며, 존재가치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독'은 외로움과 동일한 의미의 고독과 의식적 선택에 의한 고독으로 나뉜다. 전자는 부정적, 강제적인 것으로, '고독사'와 같은 말에 쓰이고 있다. 반면 후자는 긍정적, 자발적인 것이며, 흔히 '고독을 씹다.', '고독을 즐기다.'라는 말에 쓰인다. 자칫 '고독을 씹다.'를 부정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외롭고 쓸쓸함을 의식하여 느끼다.'의 의미에서 보듯 자발적이다. 용례를 보면 고독의 의미는 후자 쪽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의미들을 정리해 보면,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외로움은 무의식 상태에서 저절로 오지만, 고독은 내가 자발적으로 찾아가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선명하게 대비한 명문장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외로움이 '내몰린 혼자'라면, 고독은 '스스로 혼자'이다. 외로움이 '혼자라서 버거운 쓸쓸함'이라면, 고독은 '혼자여도 충분한 쓸쓸함'이다. 외로움은 즐길 수 없는 두려운 사람의 것이고, 고독은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의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많더라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고독하더라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답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부정적인 것은 제거해야 하고 긍정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 즉 외로움은 멀리하고 고독은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독은 반드시 내가 찾아가야 한다. 그것은 '목적이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찾을 수 있다. 하물며 타인의 눈길 따위를 의식해서 찾아 소유해야 하는 고독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목적이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단지 타인과 접촉이 없이 홀로 있는 상태는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목적에 매몰되어 '혼자'라는 자유로움이 손상받아서도 안될 것 같다. 인생의 해 질 녘에서 찾아가야 할 고독은 인생을 뒤돌아보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남아있는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밟아야 할 중요한 단계는 자기발견이다. 이제까지 그저 사는 데 얽매여 몰랐던 자기의 또 다른 능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걸 찾아내려면 혼자만의 시간을 이용한 많은 시도가 있어야 한다. 난 이 두 단계를 글쓰기를 통해 일부 성취했다 여기고 있다. 하지만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단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덕이기 보단, 고독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독은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온전히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이며, 다시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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