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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Apr 02. 2024

이젠, 나누고 싶다

친구에게, 글을 써보고 있다 하니 이런 질문을 한다. "글을 써보니까 뭐가 좋은 것 같아?"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있다가 대답하려니 궁색해졌다. 그래서 글을 쓴 지 세 달 지날 무렵에 잠깐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게 많아지고, 지금은 잘하고 있나 살피게 되는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져."라고 대답했다. 


물어본 의도를 잘 모르니 대답이 적당한 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일견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더 가까이, 더 깊게 들여다보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내가 쓴 글들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하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던 동기가 내 삶을 정리해 보고, '액티브 시니어'가 되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삶을 정리해 본다는 것'은 정말 무겁고 어려운 말이다. 철저히 자신을 객관화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어쭙잖게 시작하면 정당화의 수렁에 빠져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아직 객관화의 난해함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탓에, 만족할 정리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뒤돌아 보며 느낀 감정을 옮겨 본 글들이 제법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스스로 대견스럽기는 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느낀 감정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막연한 아쉬움이었다. 꼭 집어서 이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어, 늘 막막하게 생각되곤 했다. 이제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서 쓴 글들이 쌓이다 보니, 막연한 아쉬움의 실체를 덮고 있던 연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 아쉬움의 실체는 바로, 나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척'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괴롭지 않은 척 말이다. 살면서 우여곡절이 왜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신기루 같은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속으로 삼켜야 할 것만 같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희망적이지 않았던 현실을 누구에게도 그대로 드러내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속속들이 표현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잘 되지 않고 있거나, 잘 될 것 같이 않더라도 항상 잘 되고 있고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표출했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처한 비관적인 상황을 액면 그대로 내 보인적은 없었다. 항상 허허 거리며 즐거운 표정 짓기 바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지를 친구들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서면 외로워 했다. 혼자 삭히고 견뎌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주로 속으로 속으로 욱여넣거나, 술을 이용해 망각상태로 빠지면서 풀었다. 그런 결과로 어느 것 하나 진중하게 몰두하기 어려웠다. 이제 나를 쳐다보니, 참고 버티며 지켜온 미래에 비해 생채기 나고 찢긴 감정의 골이 더 커 보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솔직하게 만든다. 더 나를 드러내고 싶은 감정이 들게도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상한 감정의 생채기를 아물게도 해준다. 글을 쓰기로 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축복이었고 가장 잘 한 결정이었다.


이제부턴 나 혼자가 아니고, 같이 걸어가고 싶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괴로우면 괴롭다.' 라고 말하며 살아가련다. 먼저 나를 드러내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야 겠다. 그리고 나의 넓은 품을 만들어, 전해오는 아픔도 보듬어줄 것이다. 


인생의 내리막길,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내려가고 싶다. 발 밑의 돌부리도 같이 피해서 밟고, 편평한 바위에서 함께 쉬기도 하면서 말이다. 다가올 삶의 질곡들은 나누고 나누어, 같이 깨트리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허허로운 마음이 깊어져 '시'라면서 마음을 옮겨보았다.


이젠, 나누고 싶다


난 이제까지

척하는 삶을 살아왔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괴로워도 괴롭지 않은 척 말이다 

    

그래야만 했었다

왜냐하면

미래의 희망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 하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넋두리하고 싶다

     

그렇다고

지켜야 할 미래의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혼자 참아내고

이겨내는 데에

남아있는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이제는

아파해 주고

어루만져 주면서


삶의 질곡을

같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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