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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Mar 12. 2024

무리수와 자충수의 폐해

나는 진득하게 정주행 한 드라마가 손에 꼽을 정도다. 누구는 나이 들수록 드라마에 빠져 눈물을 찍어내며 본다는데, 우리 부부는 드라마에 흥미가 별로다. 그나마 본 드라마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단연 '미생'이다. 이미 십 년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다. 드라마적 요소면에서, 등장했던 배우들의 드라마 배역이 절묘했고 배역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일품이라 여겨졌다. 나의 감정적 요소면에서 보면, 소위 계급장 달고나와 실무에서 뭇 선배들 틈에 적응해 나가던 과정의 연상과 전역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만들어가야 하는 착잡함이 오버랩되면서 감흥이 더했던 것 같다. 이 드라마가 준 또 다른 흥밋거리는 '미생'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바둑 용어이다. '미생'은 아직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완생'으로 가기 전, 처절한 싸움을 앞둔 진행형의 상태이다. 이 처절한 싸움의 진행이 드라마의 줄거리이다. 이렇듯 바둑 용어는 우리 인생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바둑에 흥미를 갖게 된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다. 방학 때면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 가서 만났던 작은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한량처럼 지내면서 항상 바둑판을 끼고 살았다. 바둑과의 인연은 작은아버지가 바둑판 앞에 앉혀놓고 기초부터 알려주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어느 정도 기본이 잡히자 흑돌을 새까맣게 깔고 맞상대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바둑 용어의 의미는 물론 묘미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바둑과 멀어지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더 깊이 친해지지는 못했다. 그 후 인터넷 바둑으로 흥미를 이어가긴 했지만, 우선해야 하는 공부와 일들에 치여 자연스레 멀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바둑은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포석으로 시작하여 사활을 건 수상 전을 펼치고 끝내기로 마무리된다. 그 중간 과정에서 묘수와 승부수를 띄우고, 때론 무리수와 자충수를 두기도 한다.


인생은 포석을 잘 깔아놓고 정석대로만 두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포석이나 정석을 쉽게 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직한 포석은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고, 무엇이 필요하고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야 가능하다. 또 정석은 이상적인 공격과 방어 방법이 정형화된 것을 말하는데, 무한한 반복과 훈련을 거쳐야 둘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 조금 더 성공으로 접근하려면, 묘수를 두기도 하고  승부수를 띄우기도 해야 한다. 이 과정이 정말 중요한데, 자칫하면 욕심이 과해 무리수와 자충수를 두게 되어 대세를 그르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후에 인생의 끝내기 부분에서 만회할 수도 있지만, 고스란히 만회하기는 정말 어렵다. 결국, 성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무리수와 자충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인생을 살아오며 무리수와 자충수를 둔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무리수와 자충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모교인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 훈육관으로 근무할 때였다. 나는 졸업 후 십 년 만에 소령 계급장을 달고 와서 근무하게 되니 의욕이 충만했다. 야근을 밥 먹듯하면서 생도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그러던 중 생도대의 행정과장을 하던 친구가 후임자가 없는 상태에서 전출을 가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윗사람이 대뜸 나에게 공백기간 중 행정과장을 겸하라는 인사명령을 통보했다. 별수 없이 그날부터 주간은 훈육관, 야간은 행정과장을 겸하면서 한 달을 버텼다. 두 가지 일을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개인적인 시간을 누리지 못하니 당연히 운동할 시간도 없었다. 한 달이 넘어가던 날,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몸이 불어나 컨디션이 저하되면서 운동에 대한 갈망이 움트기 시작할 무렵, 동기생인 해병 훈육관 친구가 퇴근 시간에 찾아와 테니스를 치러 가자고 유혹했다. 나의 결핍 그리고 욕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테니스 라켓을 들고 따라나섰다. 테니스장에 들어서자 사전운동으로 몸을 틈도 없이 교수부 팀과 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달 동안 운동은커녕 야근을 일삼았던 몸의 상태로 곧바로 경기를 하는 것은 무리였는데...... 경기가 시작된 지 십 분여 지날 무렵, 상대편에서 백스핀이 잔뜩 먹여진 볼이 네트 근처로 넘어왔다. 상태로는 애초부터 포기해야 만큼 받기 어려운 볼이었다. 여기서 '무리수'가 작동되었다. 볼을 받아내려는 욕심으로 몸을 움직이는 순간, 뒤통수에 야구공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다. 잠깐이지만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했다. 곧바로 부축을 받아 의무실로 향했다. 


의무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기다리는 사이 퇴근했던 군의관이 돌아왔다. 내과 전공인 군의관은 한참 엑스레이를 쳐다보더니, "근육 파열입니다. 뜨거운 물로 찜질을 자주 해주시고 과일을 많이 드십시오, " 했다. 충격의 강도에 비해서 진단과 처방이 너무 가볍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군의관 말만 믿은 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한쪽 발목을 당겨 올릴 수 없어, 끌고 다니면서도 업무를 지속했다. 그런데 발목 부위가 시퍼렇게 변하면서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찜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녁에 아내의 권고로 맹인 침술사에게 침을 맞으러 갔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만져만 보더니, "침을 맞아 해결될 일이 아니니, 곧바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시라."라고 한다. 곧바로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아킬레스 건 파열'이라고 했다. 내과 군의관 말만 믿고 그대로 방치했던 것이, 심각한 '자충수'였다. 시간이 많이 경과된 탓에 수술부위도 커졌고, 회복시간도 길어졌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잘하려는 욕심이 부른 참사였다.


내가 생각 없이 둔 '무리수'와 '자충수'로 인해 판세는 갑작스레 나빠졌다. 현재 몸 상태를 간과하고 곧바로 테니스 시합을 시작한 '무리수'도 문제였지만, 아킬레스건 파열 후 내과 군의관 말만 믿고 일주일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자충수'는 정말 심각했다. 파열된 윗부분이 종아리 위쪽으로 올라가 파열된 부분을 서로 맞닿게 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지근거리 병원에서 수술할 수도 있었음에도, 권위 있는 의사가 있는 타 도시로 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 두 달 만에 회복될 수 있었는데, 거의 세 배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되게 만들었다. 결국 허벅지까지 통깁스, 반깁스 그리고 보조기 착용하여 재활까지 거의 반년 넘은 시간이 무너졌다. 나의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뼈아픈 부분이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보조기 착용하고 순찰돌 때 나는 소음 때문에 붙여진 '로보캅 훈육관'이라는 별칭이다.


처음 의지하게 된 목발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어디를 이동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집과 사무실이 엘리베이터 없는 삼 층이상에 있어, 오르내리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웠다. 신뢰의 징표로 행정과장을 겸임시켰던 윗사람도 불편하게 만들어 버렸다.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도 넘는 거리까지 애를 업은 채 병시중 다니고, 퇴원해서도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돌봐줘야 했던 아내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일로 남아있다. 출퇴근 동선에서 오히려 먼 곳에 있던 나를 태우고 다녔던 동기생 훈육관에게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것뿐인가, 업무 특성상 외부 활동이 많은데 모두 다른 훈육관에게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잘못된 형세 판단으로 급하게 둔 수는, 판세를 뒤집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수많은 훈수를 받아야 했다. 교훈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치러야 하는 고통스러운 대가가 너무 컸다. 그 후 나의 인생 바둑 행마는 살얼음 밟듯 신중해졌고, 지금까지는 큰 악수 없이 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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