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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Sep 10. 2024

넓고 얕게 vs 좁고 깊게

젊은 시절, '짧고 굵게' 사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할 말은 해야 하고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하며, 한 번뿐인 삶을 폼나고 멋있게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 자식이 생겨나고 진급도 하면서, 그런 절박함은 점점 옅어져 가고 '가늘고 길게'로 생각의 무게 추가 넘어갔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것이 옳은 삶이라는 정답은 없고 그때그때의 선택 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가늘고 길게'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 마저 들고 있다.   


'가늘고 길게 VS 짧고 굵게' 만큼, 나를 고민하게 했던 말이 '넓고 얕게 VS 좁고 깊게'였다. 서로 다른 게 있다면, 전자는 추구하는 바가 정리되었지만 후자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한창 인생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 '넓고 얕게'와 '좁고 깊게'의 선택은 중요했다. 특히 지식과 인간관계라는 영역에서의 선택은 쉽게 오르막을 올라갈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 계속되는 고민거리라는 데 있다. 오히려 취미활동의 방향 설정에 대한 문제도 추가되어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지식의 영역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발간된 책들이 주장하는 핵심 요지가 서로 다르게 언급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저자의 의도나 내용으로 보면 '기적을 만드는 습관의 비밀'에서는 '좁고 깊게'에 방점이 있고,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넓고 얕게'를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책인 '폴리매스'는 한 단계 더 나가 '넓고 깊게'의 의미와 유사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알고 있는 박식가'를 언급하고 있다. 일관된 방향성은 없지만 추세 만으로 본다면, 한 분야를 깊이 파는 것에서 여러 분야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더 나아가 연결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읽힌다. 


한참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 나의 지식 영역에 대한 욕구는 '넓고 얕게'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선택이었고 '좁고 깊게'에 있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된다. 흔히 '좁고 깊게'를 스페셜리스트, '넓고 얕게'를 제너럴리스트로 언급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성과를 창출해야 할 시기에 미숙한 제너럴리스트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추세에 따라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해야 할 지금은 어쭙잖게 스페셜리스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같은 질량의 진흙을 주고 그릇을 만들라고 하면, 넓으면 얕기 십상이고 깊으면 좁기 마련인 것이다. 같은 질량의 진흙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인생의 시기마다 필요라는 합리적 이유에 맞게 적절하게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 영역에서, 나는 '넓고 깊게'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 이상을 좇느라 밖으로 만 도는 바람에, 아내가 아직도 읊어대는 원망 리스트 제일 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실 불가능한 일을 무모하게 추구하다 보니 금전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리가 많이 따랐다. 역시 이상은 이상으로 끝나야 된다. 본래 목적인 넓고 깊은 인간관계는 물론, 그나마 좁고 깊은 인간관계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관계를 깊게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주어지는 시간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가능할지 의문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넓고 얕게', '좁고 깊게'는 의미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대상에 따라 현명한 선택이 필요했다. 이제 후회해 본들 무엇하랴. 남은 인생에서 어떤 인간관계의 스탠스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리된 나의 생각은, 실리적인 유불리보다는 건강한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관계란, 어느 한쪽이 희생하지 않는 서로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주고 나의 의지에 따라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않는 관계이다. 만약 바꿔야 할 게 있다면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생각이다. 


취미활동 영역에 대한 방향 설정은 최근에 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고민의 출발점은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데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는 물론이고, 조금 배우다 중지 상태인 기타 연주, 분명히 소질이 있다고 자부하는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관심이 지대한 노래 부르기가 리스트 순번의 앞을 차지하고 있다. 마음 같아선 '넓고 깊게'를 추구하고 싶지만, 그런 과정에서 나의 인내력과 추진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 같다. 하나도 깊이를 더하지 못한 채, 지금도 방구석에 쓸쓸히 서있는 기타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삶에서, 취미활동은 즐거움을 더해 줄 활력소가 될 것이 자명하다. 내가 생각해 본 취미활동의 장점은, 여유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으려면, 더 욕구가 크고 간절한 정도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취미활동 별로 달성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 놓고 시작해야 한다. 취미활동이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며, 나 자신은 물론 주위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어쩌면 '넓고 얕게' 해야 할 것과 '좁고 깊게' 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추진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말할 때, '넓고 얕게' 한국 VS '좁고 깊게' 일본이 언급되는 것을 보았다. 한국 사람은 광범위한 분야를 습득하려는 성향이, 일본사람은 전문 분야를 깊게 집중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각 나라별로 장점을 잘 살려서 성과를 창출해 왔지만, 부족하고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도 많이 식별되고 있다. 이제 한 발자국 더 내딛으려면,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여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개인에 있어 구축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지식, 인간관계, 그리고 취미활동 영역에서 어떤 방식이 꼭 맞다는 것은 없다. 시기와 대상별로 구분해서, 합리적 당위성에 따른 적절한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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