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티기 Sep 24. 2024

친구 아들의 축복스런 결혼식을 보며

평소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근무일이 아니어서 참석할 수는 있었지만, 결혼식이 열 한시라 여덟 시에 근무를 마치고 참석하기에 여유시간이 빠듯했다. 집에 도착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아내와 부리나케 강남에 있는 예식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어, 기다리고 있던 친구 부부와 아들에게 덕담 건네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들은 어릴 때 보고 난 후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아버지를 많이 닮아 있었고 참 듬직하게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가족여행 때 아들들이 여자친구와 관계설정 문제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기억이 났다. 사귀다가 방향을 잃고 정체 상태로 머물거나, 확실한 목표 없이 만남 자체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그 이야기 말이다. 이 모두가 본인들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적 문제 이긴 하지만,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겪어야 할 험난한 여정과 그 이후에 헤쳐나갈 일들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는 게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은 어려운 용기를 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의지를 모으고 난관을 헤쳐나갈 결심을 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기에 충분하다.


젊은 사람들 결혼에 대한 우려의 마음이 부쩍 많아져서 인지, 결혼식 내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동안 참석했던 결혼식에서는 잠깐 보다 식사 장소로 향하기 일쑤였고, 거기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교류를 우선했었다. 옆자리엔 자식의 결혼 날짜를 받아 둔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같이 앉아 있었지만, 서로 결혼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을 수 있다. 그 친구는 결혼식 전반에 걸쳐 준비해야 할 것과 진행상 아이디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태를 읽어 보고 싶었다. 먼저 식사장소로 이동한 아내의 오라는 독촉을 몇 번 받으면서도, 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결혼식은 부부 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이다. 의식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기에, 식장을 빌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부부 관계를 맺었다고 선언하는 자리를 가진다. 순수한 의미로 만 보면 별 문제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결혼에 이르기까지 봉착하는 만만치 않은 난관을 잘 헤쳐나가야 이뤄진다.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어떤 규모로, 식사 메뉴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는, 신혼집은..... 머리가 아파진다. 결혼식 다음 날 친구에게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받은 답장에 "어제 끝나고 뻣었다."는 말이 있었다. 부모가 이럴진대, 당사자들은 결혼식을 마치면 어떤 상태가 될지 상상이 간다. 이쯤 되면 결혼식을 꼭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결혼식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사귀는 동안 보지 못했던 적나라한 상대의 행태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지에 대한 선을 밀고 당겨야 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의 폭에 따라 갈등을 줄여 나갈 수 있다. 결혼식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좋은 집안 분위기에서 바람직하게 자랐고 같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신랑이야 아버지를 보면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친구는 남다른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항상 타인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부도 결혼식 내내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기품 있게 행동하는 모습에서 같이 이루어나가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신랑이 친구 두 명과 함께 했던 축가였다. 통상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친구에 의해 하객들의 귀를 달콤하게 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신랑과 친구 두 명이 같이 만든 곡으로 친구들이 1절을 부르고 2절은 신랑이 불렀다. 두 친구의 축가는 솔직히 잘 부르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잘 부르고 못 부르는 일차원적 문제를 떠난 축가라고 할 만큼, 의미가 있었고 듣는 내내 감동을 받았다. 일단 같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친구들의 결혼식 때도 돌아가며 불러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신랑이 처음 개시하는 것이고, 친구 두 명은 아직 총각 신세여서 다음 순서로 예약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가슴을 울렸던 것은, 같이 고심해서 만들었을 재미있는 가사내용이었다. [1절은 친구의 입장에서, 2절은 신랑의 입장에서의 감정이 이입된 가사] 


그동안 수도 없이 참석해 온 결혼식이었는데, 이번만큼 유심히 지켜보면서 의미를 생각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들들의 문제도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결혼을 최대한 늦추려 하고 비혼이 성행하는 풍조, 덩달아 출산율이 최악인 현실에 대한 생각이 깊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결혼식까지 어려운 과정을 잘 헤치고 나와 감동적이고 깊은 의미를 느끼게 해 준 친구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결혼은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이라고까지 말하곤 한다. 이제 다른 출발선에 서서 다가올 시련과 고통을, 아내와 지혜의 마음을 모아 꿋꿋하게 이겨내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기를 온 마음 다해 기원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뱁새가 황새들을 따라가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