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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Nov 26. 2024

소중한 만남, 모임의 미학

'시절인연', 모든 인연은 때가 있다는 말이다. 즉,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있고, 떠날 사람은 떠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억지로 잡으려고 하거나, 떠나보내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은 한 움큼 모래를 잡고 있는 것처럼, 빠져나가기 만 하고 있고 얼마나 남아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허전해지면서, 만남과 모임에 대한 애착감이 더해가고 있다. 


나의 인연은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요즈음, 인연에 관한 주된 감정은 진한 아쉬움이다. 그 이유는 나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고 있는데도 헤어짐에 편중된 정리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일 년간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는 인연은 정리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지만, 가슴 한편에 남은 미련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헤어짐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는 인연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허전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초등학교 네 군데, 중학교 두 군데를 다녔던 나는, 어릴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친구가 없다. 초등 동창과 중학 동창 모임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들 서로는 깊은 인연을 공유했지만, 나는 그들과 감정 교류의 범위가 좁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나마 한 곳에서 졸업까지 한 고등학교도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졸업식도 치르지 못한 채 사관학교로 입교했고, 군 생활이 이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아웃사이더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사관학교와 군생활의 과정을 공유한 사람들과 만, 친밀한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서는 정서적으로나 추억의 깊이로 보나 가장 잘 맞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퇴직 이후,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인연을 맺기는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번번이 느끼곤 했다. 정서적 공통분모가 엷은 상태에서 공감과 이해의 노력 만으로 깊이를 더해가기는 힘든 일이었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지름길이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자유롭게 살아가도 되는 시기, 구속을 받게 되거나 비교당하며 감정이 소모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결에 맞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금을 캐는 것처럼 어려운 일임을 알아가고 있다. 


나에게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부부모임이 있다. 물론, 남편들은 정서적이나 추억의 깊이가 있는 사관학교 동기생들이다. 사관학교와 군생활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같은 깊이로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공통분모가 희박해지는 것도 있고, 거주지역이 달라지면 눈에서 멀어지게 되고 마음도 옅어진다. 그나마 온라인으로 계속 연결되고 있는 사이라면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그마저 끊어지면 다시 좋은 관계로 회복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여튼 이런 우여곡절을 넘기고도, 서로에게 적절한 도파민을 공급해 주면서 부부모임을 칠 년째 이어가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왜 만나면 즐거워지는지 의문이 들고,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모임이다.  


만남은 관계의 시작이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만나야 관계가 시작된다. 그래서 만남은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세 명 이상의 만남은 모임이라는 장을 통해서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 이런 연유로 모임의 존재 가치가 중요하며, 이를 통해서 인연의 아름다움을 찾아가야 한다. 서로가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도,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워지게 하는 모임의 미학을 추구해야 한다. 더구나 부부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모임은, 이 나이에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으로 일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모임은 우선적으로 구성원의 결이 맞는지 여부가 중요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이어 줄 수 있는 연결자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부부모임에서 가장 핵심적 요구 사항은 부인들의 화합 여부다.  


설사 서로에게 호감이 있어 모임을 시작했어도, 시간이 지나며 서로 결이 맞지 않음을 알게 되면 이어지기 어려워진다. 정감 있는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열고 이해해 주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 이상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연결자의 지혜로운 역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설사 서로 마음이 있더라도 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게 모임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연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부인들의 인품과 태도이다. 남성들의 친밀도에 비해 취약한 상태임에도 모임의 목적에 도움을 주기 위해 더 친밀해지려는 노력이 있었다.  


인연의 금고가 하루가 다르게 빈 곳이 많아져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도 휑한 빈 공간이 커져간다. 조급한 생각에 풋내 나는 인연으로 채워보려 하지만, 곧 그 어설픔에 질려버려 꺼내 던져버리고 만다. 인연이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만남과 모임의 지속성은 궁극적으로 서로 간의 관계의 질과 정서적 유대감에 좌우된다. 이제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같이 위태로운 인연을 잘 살려가야 한다. 이것은 앞으로의 삶에 분명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꿋꿋하게 유지되는 부부모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새삼 실감하고 있다. 오늘도 '깨톡'거리며 주고받는 소식들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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