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고민 끝에 중국을 선택했다. 일을 잠시 그만두고 있는 사이, 아내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애초 맘먹은 여행지는 유럽이었지만, 아내 직장 사정 상 많은 날을 쉴 수 없어 변경이 불가피했다. 가까운 나라 중 일본, 동남아, 중국이 대상 여행지였지만, 아내는 더 나이 들면 가 볼 수 없는 곳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중국 장가계로 결심했다. 나는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아내는 처음이라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십 년 전에 갔던 중국은 우호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남아있어 썩 내키지는 않았다.
중국 장가계 여행을 가게 된 경위로 글을 시작했지만, 일정을 따라가며 시시콜콜한 여행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미 장가계를 다녀온 후 잘 써놓은 기행문들이 너무 많이 있기도 하고, 변별력 있고 호감 가는 글을 쓸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주제로 정한 것은, 여행을 통해 느낀 몇 가지는 꼭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여하튼 다녀오고 난 이 시점에서 느끼는 전체적인 감정은 잘 다녀왔다는 것이다. 내가 이년 간의 쉽지 않은 일을 일단락했고, 또 아내가 나에 대한 심기경호와 무지막지한 도시락 전쟁을 잘 치른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미에서는 충분했다.
현지 시각으로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창사 공항에 도착했다. 본래 오후 열한 시 사십 분에 도착해야 하는데, 인천공항에서부터 지연 출발되더니 결국 많이 늦어 버렸다. 잠자야 할 시간에 언제 나올지 모르는 캐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지 결정이 늦어지면서 조건이 좋은 패키지를 놓쳐버린 죄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불이익쯤은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떠들면 붙잡혀 갈 것 같이 엄격하면서도 느릿느릿 진행되는 입국 절차, 우리와 다른 체제 국가임을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가이드를 만나 공항을 빠져나온 시간은 새벽 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공항을 나와 가이드 뒤꽁무니만 따라가고 있는데,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버스가 있는 곳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몰라 우산도 꺼내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에서 속수무책 비를 맞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대목에서 돌발적인 해프닝이 발생했다. 같은 여행팀의 한 명인 듯한 남자가 버스에 오르기 전, 가이드를 상대로 맘껏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쌍욕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면서 가이드는 물론, 다른 여행객들도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있었다. 놀랍고 황당했다. 처음 만났고, 앞으로 즐거운 여행을 이끌어 줄 가이드에게 그렇게 무참히 퍼불 수 있는 대담한 용기 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사람은 형제자매 부부가 함께 온 아홉 명 중에 한 명이었고, 그 팀을 중심으로 패키지여행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머지는 누나와 두 명의 남동생, 지인사이인 여성 두 명과 우리 부부가 추가로 포함되어 십 육 명으로 편성된 팀이었다. 어쨌든 가이드로부터 양질의 서비스를 받아야 할 모두의 권리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커지게 만들었고, 첫 대면부터 분위기가 경색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결국 다음 날 가이드에게는 물론, 팀원 모두에게 돌아다니며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아마도 같이 온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제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그래도 씁쓸함은 내내 가시지 않았다. 외국까지 가서 분노조절장애인인 한국 사람을 봐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홉 명이 같이 온 사람들에게 여행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듯 보였다. 제일 연장자인 칠순이 훨씬 넘은 부부가 더 늙기 전에 모시고 여행을 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로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멤버들이 여행기간 내내 돌아가면서 신경 쓰이는 일들을 일으켰다는 데 있다. 단지 아홉 명 만 왔으면, 서로 기꺼이 감수하면서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패키지 팀의 우리 부부를 포함한 일곱 명의 여행객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건 안내 서비스를 침해당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똑같은 경비를 지불하고 포함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똑같은 서비스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체하거나 이가 아프고, 또 차멀미가 나서 같이 행동하지 못하고 버스에 남아있어야 하는 사람이 생겼다. 전체를 보살펴야 하는 가이드 입장에서는 버스에 남아있는 사람의 안위와 식사 여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번번이 여권과 같은 중요한 것을 챙기지 않아서, 또는 분실했다는 해프닝을 벌여서 여행을 지연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고 참 불편했다. 게다가 개별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자주 만들거나, 가이드가 다시 돌아가 데리고 오는 일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다. 그래도 끝까지 참은 것은 우리의 여행을 위해서였다. 즐거우려고 온 여행이 다른 사람들의 몰상식으로 망가뜨려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가계 어필봉
중국이라는 나라는 땅 덩어리가 넓기도 하지만, 가 볼 만한 곳이 많기도 하다. 장가계는 이전에 가 보았던 백두산 천지의 장엄함에 비견될 만한 곳이었다. 첫날 올라간 천문산 정상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 이럴 바엔 왜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부터는 비는 조금 올지언정 경치를 즐기는 것까지 방해받지는 않았다. 여행일정에 들어있는 곳을 가보면서 느끼는 공통된 생각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자연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안전을 빙자해 관광객들이 불편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시내에서 타고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경로 상에 있는 민가들 바로 위를 지나가게 되어있었다. 자연스럽게 케이블카 경로에 있는 민가들은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을 쉽게 하기 위해 굴을 뚫어 12개의 에스컬레이트를 설치한 것은 상상을 초월했다. 과연 우리 같으면 자연을 훼손해 가면서 무지막지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또 불편하게 했던 것은, 관광 코스마다 공항과 같이 보안검색을 한다는 것이다. 일정을 마치고 창사공항으로 들어설 때, 입구부터 보안검색이 시작되는 것 또한 불편했다. 이 모두가 사회주의 국가로 공산당 중심의 단일당 집권체제를 유지하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외여행은 단순히 일상을 탈출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늘상 보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나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신선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여행기간 내내 장엄하고 웅장한 스케일만 보면서, 아기자기하면서 정감 있던 북한산이 생각나기도 했다. 돌아보면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패키지여행에서의 팀원 상호 간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다. 가슴이 담아두고 불편해할 일은 아니지만. 마냥 즐겁기 만 해야 할 시간이 잠시라도 손상받은 것은'아쉬움으로 남아있다.